[개헌 특집] 짝짓기 개헌, 탄력 받는 ‘제3지대’
[개헌 특집] 짝짓기 개헌, 탄력 받는 ‘제3지대’
  • 고정현 기자
  • 입력 2016-10-28 14:54
  • 승인 2016.10.28 14:54
  • 호수 1174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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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빼고 헤쳐 모여? 가능한 얘기”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한 여야의 손익계산이 분주하다. 여야 비주류 세력과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대표를 비롯해 ‘제3지대’ 인사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개헌을 ‘터닝 포인트’로 대선 판세를 뒤집으려는 의중에서다. 반면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개헌에 반대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세론’과 ‘제3지대론’에 불이 붙은 상황이다.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모두 개헌이라는 숙제를 굳이 지금 받아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대선이 일 년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다. ‘개헌 쓰나미’를 마주한 여야 대권주자들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정대웅 기자> phoyo@ilyoseoul.co.kr

- “‘반(反)개헌주의자’ 낙인찍히면 대권 힘들다”
- 허 찔린 민주당… 개헌 온도 차 감지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내 개헌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개헌에 대한 국민적 열의도 고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제안하면서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단점을 강조했다. 개헌 논의가 권력 구조 개편에 쏠릴 것임을 예견케 하는 대목이다.

비록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청와대의 개헌 추진력이 약화된 모습이지만 여야 정치권과 국민 상당수가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MBN이 지난 24일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개헌 찬성 여론이 41.8%로 우세했다. 반대는 38.8%였다. 권력구조에 대해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33.5%, 분권형 대통령제 28.3%였고 의원내각제를 지지하는 사람은 14.2%에 그쳤다.

정치권에서도 개헌에 찬성하는 기류가 강하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박 대통령 시정연설 직후 “이 정권 출범 이후 제일 기쁜 날”이라며 “개헌은 지금이 적기”라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개헌 논의를 하자는 박 대통령 제안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비文(문재인)계인 박영선 의원도 자신의 트위터에 “개헌, 올 것이 왔다. 예상보다 당겨진 느낌”이라며 “1인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시대는 바꿔야 하기에 개헌은 시대적 과제”라는 글을 올렸다. 대표적 ‘개헌론자’이자 ‘제3지대론자’인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역시 “개헌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전반적 장래가 좋지 않다”며 “최순실 문제는 그대로 처리하게 두고, 개헌은 개헌대로 별개의 사안”이라고 말했다.

특히 ‘6공화국의 종언’을 선언하며 민주당을 탈당, 정계 복귀 신호탄을 쏜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도 20일 “대한민국은 정치와 경제를 완전히 새롭게 바꿔야 한다”며 “정치와 경제의 새판 짜기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개헌 의지를 내비쳤다.

다만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만큼은 ‘개헌론’에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며 시큰둥한 모양새다. ‘최순실 게이트’에 날을 세우는 동안 개헌 이슈에는 관망세를 유지하면서 개헌이 본인들의 대선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판을 굴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민주당은 최순실 의혹이 터지기 전 당내에 개헌연구자문회의를 구성하고 ‘개헌대토론회’를 준비하는 등 ‘개헌’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출신 정세균 국회의장 역시 의장 직속의 개헌 준비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문 전 대표는 개헌 논의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만 표명한 뒤 정부 비난에만 몰두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개헌’을 언급해 이슈를 키우기보다 주변 정리는 그의 ‘호위무사’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경제와 민생 행보에 주력해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속내엔 ‘문재인 대세론’ 엎어질까 우려…”

이에 정치권의 비난의 화살은 일제히 문 전 대표를 향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문 전 대표 입장에선 개헌론에 불이 붙어 개헌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활발해지고, 그 결과 야권 개헌파가 뭉치고 친문은 고립되는 야권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는 듯하다”며 “문 전 대표가 표면적으로는 ‘최순실 게이트’ 해명이 우선이란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속내에는 ‘문재인 대세론’이 자칫 뒤바뀔 수 있다는 걱정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비문의 결집뿐만 아니라 개헌을 고리로 여당과 국민의당 등이 손을 잡을 가능성도 강하게 경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 역시 “문 전 대표가 개헌 추진에 반대하는 데는 개헌을 고리로 한 ‘비문 세력의 결집’과 ‘여당·국민의당의 동조’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문 전 대표는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 오로지 최순실 사태에 날을 세우는 데만 여념이 없는 듯하다”고 쏘아댔다.

실제로 문 전 대표는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한 주자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 쓰나미’를 마주하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다. 안 전 대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손학규 전 대표와의 연대가 성사되기 직전인 데다 반기문 총장과의 연대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시점이다. 안 전 대표에게 드디어 기회의 문이 열리는 시점에 굳이 개헌이라는 숙제를 떠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 내 개헌을 추진하자는 쪽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를 제외하고 손학규 김종인 등 ‘제3지대’ 세력의 합종연횡을 구상하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제3지대, 중도 층에서 개헌을 연결고리로 모이게 되면 문재인 전 대표가 고립되는 형국이 되는 것 아니냐’는 앵커의 질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라며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항하는 정치그룹, 새누리당의 이른바 비박 그리고 국민의당 이렇게 연대할 수 있다. ‘연대의 정치’는 약자들이 나아갈 수 있는 돌파구의 하나로서 본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 역시 “친문 진영이 의도적으로 ‘박근혜 개헌’에 대한 찬반 프레임을 형성해 개헌을 무산시킬 경우,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제3지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쏠릴 수 있다”고 밝혔다.

개헌 ‘블랙홀’ 아닌 ‘용광로’ 될 수도…

한편 정치권은 야권의 두 유력주자가 박 대통령의 개헌 카드에 대해 계속해서 부정적인 입장만을 고수한다면 되레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박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꺼내 든 의도를 의심하는 눈초리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헌’에 대해 국민적 찬성 여론이 높은 데다 개헌 관련 논의 기구도 이미 마련돼 있는 상황이다. 즉 개헌이 ‘블랙홀’이 아닌 국가가 당면한 문제점들을 한 번에 녹여줄 ‘용광로’가 될 수도 있는 기회 라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을 껴안아야 하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자칫 개헌 반대 입장을 고수하다가 ‘반(反)개헌주의자’로 낙인찍히게 되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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