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노’ 깃발아래 함께 뭉치나
‘반노’ 깃발아래 함께 뭉치나
  • 박봉균 
  • 입력 2004-02-05 09:00
  • 승인 2004.02.0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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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이후 정가에 개헌론과 청문회 논란이 확산되면서 총선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중심이 된 개헌론과 민주당에서 불거진 청문회 개최에 대해 양당이 ‘원칙적 동조’ 입장을 보이고 있어 정가에서는 ‘한나라-민주 총선 연대전선’이 구축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자칫 총선 정국이 친노(親盧)-반노(反盧) 구도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개헌론과 청문회 논란은 설 전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잇따라 터져나왔다. 일각에서는 ‘신당’ 돌풍을 차단하기 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간 밀약설이 돌고 있다. 최병렬 대표가 최근 한 사석에서 “민주당의 정치적 역할은 분명히 남아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분권형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골자로 한 개헌론에 한나라당이 앞서 불을 지피는 것은 총선 전후의 정계개편 논의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재통합 같은 제2차 정계개편을 막아보자는 속내도 숨어 있다. 지난해 말 개헌 공론화의 주역이었던 홍사덕 총무는 개헌론에 힘을 싣고 있다.홍 총무는 “최 대표가 분권형 개헌 담론을 다시 말했는데 매우 적절하고 합당한 말”이라며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며 쌍수를 들었다. 홍 총무는 이어 “분권 담론은 앞으로 4년 동안을 지난 1년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이끌고 가도록 내버려 둘 것인지 아니면 권한 일부를 제약, 나라의 위태로움을 덜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며 한 걸음 더 나갔다.‘돈 안 드는 대선’ 등 여러 명분을 내세웠지만 한나라당에서 나오는 개헌론은 실제로는 반노세력의 결집이라는 총선전략과 맥이 닿아있다.

여권이 구상하고 있는 ‘한나라당 대 반 한나라당’의 총선 구도를 개헌을 매개로 ‘친노 대 반노’로 바꿔보자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을 통해서도 드러난다.지난해 11월 전당대회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추진을 당헌에 명문화한 민주당의 첫 반응은 “반대할 이유는 없다”였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만 갖고도 개헌선을 훨씬 넘는다”며 “노 대통령의 리더십에 불안이 느껴지면 개헌을 통해 내각제를 하자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다분히 총선 이후의 정국을 상정한 사전포석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정치에 대한 심판은 선거”라고 전제한 뒤 “통합신당이 개헌저지선 확보(재적의원 3분의 1)에 실패한다면 노무현 정부는 존립 근거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운태 사무총장은 아예 “총선 공약으로 분권형 대통령제와 개헌을 내걸 수도 있다”고 나섰다.

민주당이 불씨를 지피고 불쏘시개까지 갖다 댄 청문회 논란도 한나라당과 사전 공조 의혹이 짙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청문회 개최를 제안한 직후 양당은 세부사항에 전격 합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문회는 정권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야당의 강력한 견제구로 보인다. 양당은 내달중 임시국회를 열어 불법 대선자금과 노무현 대통령 관련 비리의혹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결국 청문회는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에 이어 총선 정국에 새로운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아직 청문회의 구체적인 일정이나 증인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TV로 생중계될 청문회에서 쏟아질 온갖 의혹과 폭로는 적잖은 폭발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민주당이 먼저 한나라당 대선자금 문제를 포함한 청문회를 제안하고 한나라당이 수용하는 형식을 취했다. 한나라당은 대선자금 수사를 검찰에 맡긴 채 그저 끌려갈 수만은 없는 처지이고 민주당은 최근 열린우리당의 상승세에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청문회 출석 증인으로 노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씨와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이기명 이원호 이명로씨, 썬앤문 그룹 문병욱 회장과 김성래 부회장 등이 유력하다.

한나라당쪽에선 김영일 최돈웅 의원과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 등이 증언대에 서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한나라당이 ‘차떼기 정당’의 이미지가 재부각될 우려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에 합의한 이면에는 검찰수사를 통해 한나라당 대선자금 문제는 터질만큼 터진 상태여서 잃을 게 많지 않다는 인식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민 공조’에 따른 역풍을 감안,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을 청문회 대상에 포함시켜 관철시킨 민주당으로서는 손해볼 게 없는 ‘남는 장사’를 하게 됐다.그러나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진행 중이고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이 막 시작된 마당에 청문회를 강행하는 데 대한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구속 중인 사람들을 줄줄이 청문회 증인으로 부르는 것은 수사 방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또 우리당이 청문회를 ‘야권의 총선용 책략’이라며 실력저지할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않고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김부겸 우리당 원내부대표는 “청문회를 하자는 것은 총선을 앞두고 나라를 거덜내려는 정치 공세”라면서 “양당 공조 전략은 유권자의 냉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강운태 사무총장은 “설 연휴가 끝난뒤 법사위 등 관련 상임위에서 청문회 개최를 의결하고, 증인 출석 요구서를 발송할 예정’이라고 말해 사전 준비기간을 거쳐 내달 초순께부터 청문회를 열 것임을 시사했다. 현재 가파른 총선정국에서 두 야당이 던진 개헌론과 청문회 카드는 일단 시선을 끌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고리는 여전히 헐겁고 그 공조는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다. 당내 의견마저 분분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개헌론의 경우 한나라당 내에서도 반대의견이 뚜렷하고 민주당 내에서도 ‘권력탈취를 위한 공조’로 비칠 것을 우려한 신중한 반응이 쏟아진다. 한나라당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개헌론을 공론화하려면 총선후에 하는 것이 맞다”며 “그러나 대통령이 밉고 무능하고 못났다고 해서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자는 발상에서 나온 개헌 주장에는 반대한다”며 개헌론과 거리를 뒀다. 총선 이후에도 어렵사리 당선된 17대 의원들이 남은 임기를 포기하면서 개헌에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이를 수용할리는 만무하다. 현구도가 더욱 공고화될수록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게 청와대측의 판단이다. 어떤 형태로든 판이 흐트러질수록 현정국 구도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양자 대결 구도가 무너지고, 그렇게 될수록 열린우리당의 입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봉균  pjong@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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