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폭파·남북정상회담·천안함’ 대선 뒤흔든 北風
‘KAL기 폭파·남북정상회담·천안함’ 대선 뒤흔든 北風
  • 김희민 언론인
  • 입력 2016-10-21 19:11
  • 승인 2016.10.21 19:11
  • 호수 1173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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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전 북풍은 ‘상수’로 작용

역대 선거에서 북풍은 주요 변수였다. 특히 87년 대선 이후 북한 문제는 한국 정치의 상수로 작용해왔다. 북풍의 파괴력에 따라 선거 결과가 요동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여야는 북풍 이슈의 유불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퉜다. 다만 선거 때마다 북풍 논란이 재현되고 2000년 이후 전면적인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약발은 다소 떨어지는 추세다. 역대 주요 선거에서 북풍 이슈를 정리해봤다.

■ 1987년 대선 KAL기 폭파 사건…
노태우 민정당 후보 승리
북풍의 가장 대표적 사례는 1987년 대선 직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이다. 대선을 불과 18일 앞둔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항항공 888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되면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특히 폭파범 김현희가 서울로 압송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되면서 대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1노3김 구도로 치러진 대선은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대통령 당선이 유력했던 김영삼과 김대중은 후보 단일화 실패에다 KAL기 폭파 사건의 여파로 분루를 삼키고 말았다.

■ 1992년 대선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김영삼 승리 김대중 패배
92년 대선은 한국 정치의 거목인 김영삼 vs 김대중의 맞대결 승부였다. 87년 대선에서 단일화 실패로 대권 문턱에서 좌절한 두 사람이 리턴매치를 벌인 것. 대선을 두 달여 앞두고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 적발됐다. 10월초 국가안전기획부가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면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을 발표했다. 대선 정국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결국 대선은 김영삼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대선에서 패한 김대중은 정계은퇴를 선택했다.

■ 1997년 대선 총풍 사건…
소문 무성하던 북풍공작 확인
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측 관계자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 측에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총풍사건으로 불리는 추악한 북풍 공작이다. 실제로 무력시위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대선 때마다 안보 불안을 자극해 여당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북풍 공작의 실체가 확인된 사건으로 대선 정국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 2000년 16대 총선,
남북정상회담 발표로 여권에 역풍
2000년 4월 16대 총선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메가톤급 소식이 알려졌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여당의 호재로 여겨졌다. 특히 총선 직전에 김대중 정부가 전격적으로 발표하면서 오히려 역풍이 불었다. 당시 위기감을 느낀 한나라당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선거결과가 뒤집어진 것. 이 사건을 계기로 주요 선거에서 북풍변수의 영향력을 점차 약화돼왔다. 2007년 10월 대선 국면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선거 결과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 2010년 6월 지방선거,
천안함 폭침사건에도 야권 승리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폭침 사건이 불거졌다.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피격당한 것. 당시 이명박 정부는 5.24 조치라는 강력한 제재 대책을 발표하면서 남북관계는 급랭했다. 이후 천안함 사건의 여파로 지방선거에서는 여당의 우세가 예상됐다. 그러나 전쟁 vs 평화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야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 2012년 대선,
NLL 포기 논란으로 여야 뜨거운 공방
2012년 대선은 박근혜 vs 문재인의 치열한 맞대결이 펼쳐졌다. 여야의 대치가 팽팽한 가운데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논란이 불거졌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단독회담에서 NLL을 사실상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한 것.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진위 여부를 놓고 여야는 대선 기간 내내 치열하게 맞섰다. 다만 대선 이후 공개된 대화록에는 NLL을 포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희민 언론인>

 

김희민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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