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광주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7일 국고보조금인 장기요양급여와 노령연금 수억 원을 가로챈 혐의 등(횡령·사기)으로 요양원 대표 이모(52·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특히 6개월 이상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입원시킨 뒤 장기요양급여를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이씨가 가짜로 발급해 준 실습확인서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 낸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최모(51)씨 등 4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는 지난 2012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요양원의 노인들에게 지원되는 노령연금 3200만원을 가로챈 혐의다.
또 직원 수와 근무시간을 부풀려 2년 동안 3억7000여만 원을 받아 낸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기족이 없거나 연락이 잘 되지 않는 노인들의 노령연금 통장을 자신이 관리하면서 마음대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노인들의 노령연금을 요양원 의료기기 구입에 사용했다며 가짜 영수증을 제출하기도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지자체가 월 1회 시설 점검을 나올 때는 명의만 등록해 둔 직원들을 잠시 근무하도록 하면서 단속을 피해왔다.
이씨는 또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필요한 현장실습확인서를 최씨 등에게 가짜로 발급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은 사회복지시설에서 120시간 이상의 현장 실습을 해야만 발급받을 수 있다.
경찰은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사회복지사협회가 자격증 신청자의 현장실습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 권한과 방법이 없다는 점을 이씨가 노렸다고 설명했다.
최씨 등이 다니고 있는 대학과 지도교수 역시 실습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지도·감독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재현 광주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대부분 치매가 있거나 가족이 없는 노인들을 범행에 이용했다"며 "공단이나 지자체가 월 1회 점검을 나가지만 대부분 미리 점검 날짜를 통보하기 때문에 제대로 감독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부정하게 타낸 장기요양급여 등을 회수 조치하고 관계기관에 철저한 관리·감독을 당부했다"며 "이 같은 범죄를 막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건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요양원과 요양병원 대이동 필요
조선일보가 지난 13일 건강보험공단의 요양병원 입원 환자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작년 말 요양병원 입원 환자 51만여 명 가운데 장기 입원보다 단순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는 16만여 명으로 추산됐다.
요양병원은 장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며 요양원은 치료보다는 돌봄 위주로 운영된다. 그러나 요양원의 간병 비용이 요양병원에 비해 절반가량 저렴해 노인환자 사이에도 자녀나 본인의 재정능력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에 차이가 생긴다.
실제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 17만 명은 요양원으로, 요양원에 입원한 4만 명은 요양병원으로 이동해야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 여건이 되는 자녀들은 간병비가 비싸더라도 의사가 있는 요양병원으로 부모를 입원시키며 위안을 삼는 반면에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자녀들은 간병비 걱정에 좀처럼 병원으로 부모를 옮길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혼선을 정리하기 위해선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을 평가하는 기준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영건 차의과대 교수는 “요양병원의 입원 환자 중 의료적 처치가 꼭 필요한 사람들도 있으니 이들을 선별할 수 있는 기준과 제도부터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만 서울대 교수는 “장기 입원을 막기 위해선 본인부담금을 조정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요양원 입소자 중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들은 병원에 입원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필요하단 지적이다.
현재는 요양병원의 간병비로 입원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아 요양병원 측은 정부가 간병비를 지원하면 요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겨올 환자들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