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상이변 잡는 레이더 설치 계획…전자파 논란·주민 소통 전무
기상청, “안전 이상 무” 강조…이해 당사자 간 협의·공유 시급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기상청이 이상기후를 감지하기 위한 기상관측 레이더를 서울 아파트촌에 설치하려다 발각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 레이더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같은 주파수 대역으로 알려져 ‘제 2의 사드’ 논란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서울 도심에 설치할 것이란 계획이 알려지면서 불거진 이번 논란은 현재도 집회, 1인시위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설치 예정 지점 주변이 주거밀집 지역인 데다 학교가 많아 주민들은 결사반대를 외치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를 도입하면서 어떠한 소통의 기회도 없었다. 이에 주민들은 물론, 지자체, 지방 의회까지 규탄하고 있다.
기상청은 수도권 기상이변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해 미국 업체가 제작한 레이더 3대를 48억 원에 3년간 임차해 운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최초 후보지가 경기 안산시와 인천, 김포시였는데 이 중 안산, 김포 2곳이 각각 동작구 기상청 본청 옥상과 강원도 평창군으로 바뀌면서 마찰이 생겼다.
기상청은 이를 공개하지 않다가 지난 9일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났고, 레이더가 사드 주파수와 동일한 주파수를 사용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제2의 사드’ 사태로 번질 기미다.
주민들은 지난달 28일 1000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 데 이어 지난 14일에도 1인시위, 반대 홍보물 배포를 통한 시위에 나서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유복엽 주민공동대표는 “주거 밀집 지역에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레이더 설치는 있을 수 없다”며 “동작구민은 실험용 쥐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종수 주민공동대표도 “자체 조사 결과 도심 한복판에 레이더를 설치하는 곳은 전 세계 유례가 없었다”며 “한 군데라도 나오면 반대 시위를 포기하겠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레이더 반경 1km 내에는 초·중·고등학교 포함 4개 학교, 병원, 공원 등 생활밀착시설이 들어서 있다. 국내에 기상 레이더가 주거 밀집 지역에 설치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상청은 “해당 레이더는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인체·환경 유해성 검증이 확보되지 않은 시설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주민들은 기상청이 레이더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 간 소통이 전무했다고 지적한다. 심 공동대표는 “설치를 두고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전혀 없었다”며 “주민들을 배제한 기상청의 태도에 실망스럽다”고 했다.
국회에 허위 보고해 질타
또 기상청이 국회에 ‘거짓 보고’를 한 사실도 도마에 올랐다. 기상청은 지난해 9월과 올해 4월 후보지 변경을 했지만 올 6월 국회 보고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 지난달에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뒤통수’를 맞은 국회의원들은 지난달 3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기상청 국정감사에서 이를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고윤화 기상청장은 “주민들에게 사전에 알리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주민설명회를 갖겠다”며 “주민들이 이해할 때까지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설득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정가에서도 반대 움직임에 나섰다. 최근 동작구의회는 기상청 X-밴드 레이더 관측망 구축 철회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김재열 구의원은 “공원을 짓더라도 주민의 의사를 물어봐야 한다. 이번 일은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며 “현재 기상청의 의지가 완강해 다툼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 문제 없다” 자신
기상청에 따르면 X밴드 레이더는 반경 50~60㎞, 고도 1㎞ 이하의 기상상태를 정밀 분석할 수 있다. 국지성 호우, 폭우 등 기상이변을 선제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안전거리는 레이더 주 탐지방향에서 71m 이상, 레이더 아래에서 7m 이상이다. 기상청 레이더 관계자는 “기상청 본청 옥상에 설치될 레이더는 87~90m로 고도가 높아 이보다 낮은 고도에 위치한 아파트는 전자파 위험이 없다”며 “동작구에 있는 고층 아파트도 기상청과 71m 밖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적 전자파 노출이 없다”고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드 레이더에 비해 전력 소모량이 매우 낮은 소형 장비여서 문제가 없을 거라면서도 옥상 철탑의 레이더가 -5도 아래로 틀어지면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기상청 관계자는 “수십년 동안 레이더가 0도 이하로 내려가는 걸 관측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우려를 일축했다.
설치 부지 변경 이유에 대해서는 “초창기 분석은 수직선상(안산-인천-김포)이었으나 보완 조사해보니 수평선상(인천-동작-평창)이 더 효율적이라 판단했다”며 “최근 5년간 강수량 분석 결과 수도권 동쪽에 이상 국지성 호우 등이 더 많아 수평선상의 레이더로 잡고, 수도권 서쪽은 인천 지역 레이더와 함께 영종도 왕산 지역 레이더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기상이변에 대응한다는 명분도 있다”도 덧붙였다.
지난 9일에는 기상청 X밴드 레이더가 올해 수도권에서 시작해 2021년까지 전국적으로 배치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해당 자료는 사업 초기 활용 계획에 따른 초안이라 구체화 되지 않은 것”이라며 “현재 수도권에 3대 배치 방침 외엔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레이더 설치를 두고 주민공청회 등 의견수렴이 전혀 없었던 것에 대해 관계자는 “관련 의무 규정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논란이 될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 했다”며 “주민들과 동작구 이해당사자 간 소통을 강화에 나가겠다”고 밝혔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현재 이들과의 대책 회의에 대해 정해진 날짜는 없다”며 “검토해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