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두산그룹 구조조정의 마지막 퍼즐인 두산밥캣 상장이 연기됨에 따라 올 초 그룹 회장에 취임한 박정원 회장은 씁쓸한 속내를 달래야 했다. 임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경영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첫 단추가 원치 않는 결과로 나타나서다. 박 회장은 올해 안에 밥캣 상장을 완료하면 신사업을 순탄하게 주도해 나갈 포부를 안고 있었다.
지난 3월 취임한 박정원 회장은 우리나라 재계 최초의 4세 경영자로 그룹 총수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룹 재무구조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등판한 박 회장은 우선적으로 4세 경영 체제 안정화와 함께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재무구조 개선의 핵심 열쇠는 두산밥캣의 상장이었다. 두산그룹은 두산밥캣을 코스피에 상장해 최대 2조4000억 원이 넘는 유동성을 확보한 뒤 필요한 곳에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시가총액이 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던 두산밥캣이 성공적으로 증시에 입성한다면 최대주주인 두산인프라코어를 비롯해 두산중공업, 두산 등 그룹 전반적으로 유동성 개선 효과가 확대될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경영 정상화의 첫 단추 격인 밥캣상장은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지난 10일 두산밥캣의 상장 연기를 공식화하면서다. 수요예측에서 기대했던 공모가보다 낮은 수준에 기관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린 결과다.
밥캣상장 연기 소식이 전해지면서 증권시장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일부에서는 그룹 신용도 하락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길호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이날 “두산밥캣 상장은 두산그룹의 신용도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변수였는데 상장을 연기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며 “최종 상장을 지켜보면서 두산그룹에 대한 신용도를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두산밥캣이 상장을 연기하면서 두산그룹이 그동안 추진해온 구조조정 효과가 당분간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그룹 전반의 재무리스크가 재차 부각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당장 내년 3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3200억 원가량의 회사채를 갚아야 하는데 이를 상환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11월 재상장 ‘이목 집중’
신용평가기관들이 ‘BBB(안정적)’의 신용등급을 받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가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를 자체적으로 상환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신용등급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실제 등급 하향 조정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신용평가사의 설명이다.
올해 안에 밥캣상장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겠다던 박 회장은 씁쓸한 입맛을 다셔야 했다. 그룹 경영자로서 임직원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경영능력을 인정받을 무대였지만, 이번 상장 연기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두산은 어떻게든 올해 안에 상장을 이뤄내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연기 직후인 지난 13일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은 각각 이사회를 열고 다음 달 18일 두산밥캣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기로 했다. 두산은 공모 희망가를 처음보다 30% 줄인 1주당 2만9000~3만3000원으로 제시했으며, 공모 물량도 당초보다 40% 줄인 전체 발행 주식(약 1억주)의 30%로 정했다. 다만 밥캣 상장으로 기대됐던 2조원가량의 유동성 확보는 1조원 안팎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번 상장 연기로 박 회장의 경영능력을 평가하기에는 성급하다는 의견도 있다. 면세점 안착과 두산건설 재무개선 등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지켜봐야 할 단계라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은 지난해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 그 마무리가 두산밥캣 상장”이라면서 “시장에서는 다소 실망한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이번 상장 연기로 박 회장의 경영능력 자체를 평가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연료전지 성과 기대감”
두산그룹은 그룹계열사들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인원감축과 보유주식 매각, 일부 사업부 매각 등에 속도를 냈다.
박 회장은 그룹 수장에 오른 직후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두산DST(현 한화디펜스) 지분 매각(6950억 원), 두산인프라코어의 공작기계사업부 매각(1조1300억 원) 등을 통해 2조 원이 넘는 유동성을 확보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산그룹은 여전히 과도한 재무부담을 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두산그룹은 순차입금 등을 포함한 실질재무부담이 모두 12조1686억 원(6월 말 기준)에 달한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재무부담이 1조5693억 원 줄어들었지만 1년 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성차입금의 비중이 54%에 달해 단기상환부담이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다.
두산건설의 경우 실질재무부담이 9793억 원이지만 이 가운데 단기성차입금의 비중이 80%가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두산인프라코어도 내년 6월까지 1조1774억 원에 이르는 회사채를 갚아야 하는 등 단기상환자금을 마련하는 데 부담이 큰 상황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만 있는 건 아니다. 박 회장이 지난 2014년부터 주목하고 있는 새 먹거리 사업인 연료전지의 경우, 현재 기술적인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의 전기화학반응을 통해 공해 없이 전기를 생산하는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다. 두산은 2014년 미국 클리어엣지파워와 국내 업체 퓨얼셀파워를 인수하며 연료전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해당 사업 부문 실적은 2014년 매출 222억 원, 영업손실 166억 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매출 1684억 원, 영업이익 55억 원 등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두산은 지난해 5875억 원 규모의 연료전지 수주를 달성했다. 올해는 국내 공장 신설 및 증설 등으로 수주 8000억 원, 매출 4080억 원, 영업이익 400억 원 등의 목표를 세운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산이 연료전지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여기에 두산 주요 계열사의 3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돌고 있다. 일단 연내 두산밥캣의 상장 결과와 면세점사업 등의 성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