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의 합종연횡 흐름 속에서 각종 대선 시나리오가 춤을 추고 있다. 절대 강자가 없는 현 구도에서 대선판의 유동성이 커지고 있는 것. 물론 반기문 대세론이나 문재인 대세론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는 과거 막강했던 이회창 대세론과 비교해보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여의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치권의 이합집산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대선 시나리오들이 쏟아지고 있다. 굵직굵직한 것만 해도 대략 5개 안팎이다. 자잘한 것까지 포함하면 10개 정도의 대선 시나리오들이 여의도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 반기문·문재인·안철수 대선 3자구도 유력
- 文安단일화 여부 따라 3자·양자구도 결정

현 대선구도는 1위부터 3위까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순서로 이른바 ‘빅3 구도’다. 지난 4월 13일 20대 총선 이후 무려 이러한 구조가 사실상 고정화되고 있는 것. 빅3 후보의 구도가 고정화되면서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의 대선후보는 각각 반기문, 문재인, 안철수로 결정된 게 아닌가라는 착시현상마저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내년 대선은 ‘반기문 vs 문재인 vs 안철수’의 3자 대결구도가 가장 유력하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30%대 중후반을 기록하면서 대선판 전체에서 압도적인 대세론을 구가하는 인물은 없다. 반기문 총장 20%대 중후반, 문재인 전 대표 10% 중후반, 안철수 전 대표는 10%대 안팎 등 빅 3후보들의 지지율 합계는 5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대선지형의 유동성이 여전한 것. 나머지 여야 차기주자들이 막판 뒤집기를 노리거나 제3지대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한동안 불씨가 사그라가졌던 개헌론이 본격화할 경우 이른바 권력분점을 매개로 설(說)에만 그치던 각종 합종연횡 시나리오보다 정교한 형태로 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文·安 단일화 불가능 여당 후보 ‘호재’
현 구도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시나리오는 3자 구도다. 반기문 총장이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각각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대선후보로 나선다는 전망이다. 20대 총선 이후 떠오른 대진표다.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로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기존 유력 주자들이 대거 몰락했기 때문. 여권이 마땅히 내세울 만한 차기 주자가 없다는 평가 속에서 반 총장이 구세주로 떠올랐다.
특히 당내 주류 세력인 친박계가 반 총장에 대한 강력한 러브콜을 보내면서 여권의 확실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반 총장은 지난 5월 제주포럼 방한 당시 차기 주자로서의 행보를 확실히 했다. 또 추석연휴 기간에는 정세균 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담에서는 내년 1월 귀국설을 흘리면서 본인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울러 차기 대선 3자구도는 역대 대선에서 야권의 히든카드였던 후보 단일화가 불가능하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야권후보 단일화 없이 대선 본선을 각자 완주한다는 것. 안 전 대표는 지난 9월 제주 방문에서 “내년 대선에서 양극단 세력과의 단일화는 절대 없을 것이다. 양극단 기득권 세력들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 우리나라는 다시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단일화 불가 방침을 밝혔다.
문 전 대표 측에서는 더 이상 단일화에 매몰되지 않고 3자구도 필승론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20대 총선 당시 야권분열에도 수도권 압승을 거둔 성적표를 고려할 때 차기 대선 역시 비슷한 구도로 흘러갈 수 있다는 기대 섞인 관측이다.
반vs문·안 단일후보…여야 ‘해볼 만…’

새누리당 대선후보 vs 야권 단일후보 구도도 있다. 이는 야권에서 연대나 후보단일화 없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 87년 체제 이후 야권은 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두 번 승리했다.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김종필을 손을 잡은 DJP연대가 성사되면서 이회창 대세론을 무너뜨렸다. 2002년 대선 역시 노무현은 월드컵 4강 신화를 바탕으로 국민적 인기가 높았던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거쳐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2012년 대선 당시 불완전한 단일화에 따른 패배를 교훈 삼아서 어떻게든 아름다운 단일화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것.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10년의 피로감 때문에 정권교체의 분위기는 높지만 문재인·안철수의 분열은 여권에 어부지리를 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대선 막판 전통적 지지층의 재결집과 시너지 효과를 위해 단일화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일화 없이 대선 승리는 없다는 야권의 절박한 인식이 담긴 시나리오다. 다만 문재인, 안철수 중 누가 야권단일후보로 나설지, 시기와 방식을 놓고 극심한 진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폐기처분해야 할 시나리오라는 평가도 있다.
아울러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야권의 모든 유력주자들이 모여서 한 번에 대선후보를 선출하자는 원샷 통합경선론도 있다. 정당별로 대선후보를 선출하고 단일화에 나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합의가 어려운 만큼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문재인, 안철수, 손학규는 물론 대권에 도전할 모든 야권주자들이 참여해서 한 번에 결정하자는 것이다.
문vs반·안 단일후보…逆단일화론
정치권 일각에서는 역단일화론도 나온다. 한마디로 문재인 포위전략이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시각에서 반기문 총장과 안철수 전 대표가 손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는 97년 대선에서 이념적으로 이질적인 김대중·김종필이 손을 잡은 DJP연대와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역단일화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안 전 대표의 강력 부인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있는 시나리오다.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의 지지율 정체를 고려할 때 독자집권이 힘든 현실을 반영하는 것. 현실화되면 영남(새누리당), 충청(반기문), 호남(국민의당+이정현), 수도권(안철수)을 잇는 환상적인 정치공학이 탄생한다.
특히 안철수 전 대표는 오는 25일 김종필 전 총리와 만찬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지난달 9일 이른바 ‘냉면오찬’이 연기된 것에 따른 것. 정치적 의미는 상당하다. 김 전 총리는 반 총장의 대권행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 이 때문에 한동안 사그라 들었던 반기문·안철수 연대 시나리오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더구나 김 전 총리는 국내 정치권을 대표하는 내각제 개헌론자인 만큼 개헌을 매개로 두 사람의 연대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안 전 대표의 지지층이 이를 용인하겠느냐는 것이다.
무소속 반기문+與 대선후보 ‘보수단일화’
새누리당 안팎에서 돌고 있는 설이다. 현행 대선에서는 새누리당의 단독집권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개헌으로 일단 정치판 자체를 뒤흔들자는 것. 특히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반기문 총장이 외치를 책임지는 대통령, 국내 사정을 잘 아는 친박에서 내치를 담당하는 총리를 노린다는 것. 분권형 대통령제를 전제로 한 것이다.
친박 중진인 홍문종 의원이 반기문 대망론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다만 개헌이 친박계의 바람대로 실제로 이뤄질지도 미지수인데 다가 권력구조 개편 여론은 대통령 4년 중임제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친박계의 희망사항으로만 그칠 수도 있다.
여권 안팎에서는 반 총장의 무소속 대선후보설도 나온다. 반 총장이 곧바로 새누리당에 입당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 인기가 떨어진 새누리당을 선택하기보다는 무소속 대선후보로 나서 중도층을 최대한 공략한 뒤 대선 막판 새누리당 대선후보와의 보수후보 단일화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실제 여야의 일부 전략가들은 반 총장의 무소속 대선후보도전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체 없는 제3지대론… 국민의당, 김종인 구상

제3지대론은 20대 총선 이후 줄기차게 제기됐다. 새누리당, 민주당, 국민의당 등 여야 3당의 지형이 허약하다는 판단 탓이다. 특정 정당이 독자적으로 대권 쟁취가 불가능한 만큼 다양한 세력이 연대하는 합종연횡이 불가피하다는 것.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와 극단적 대결의 여야구조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협치와 연정이 시대적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주목받고 있는 시나리오다.
제3지대론은 크게 국민의당 중심론과 김종인 중심론으로 나눠진다. 우선 국민의당의 중심론이다. 친박·친문 패권주의에 반발하는 여야 모든 정치세력의 연합이 기본 골격이다. 더민주 비주류나 새누리당 비박계가 추가 이탈할 경우 국민의당이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는 것. 안 전 대표를 중심으로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이나 정운찬 전 국무총리,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이 힘을 합칠 경우 집권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종인 전 더민주 비대위 대표 중심의 제3지대론도 있다. 김 전 대표는 정치9단으로 불리는 고수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며 지난 총선에서 더민주의 구원투수로 맹활약했다.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가 개헌론을 매개로 킹으로 직접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이른바 킹메이커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또다른 제3지대론의 설계자가 될 것이라는 구상이다. 김 전 대표는 최근 비패권지대론을 꺼내들면서 독자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역대 대선에서 대세론은 성공한 적이 드물다. 이회창 대세론, 이인제 대세론, 고건 대세론 역대 대세론은 필패로 이어졌다. 오만한 대세론은 설 자리가 없는 만큼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의 기적처럼 예상치 못한 후발주자들이 탄생한다는 전망이다. 특히 여야 모두 대선후보 경선에서 기존주자인 반기문, 문재인, 안철수를 밀어내고 예측불허의 결과가 나오면 국민적 관심과 흥행 고조로 본선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여권에서는 반기문 총장의 대항마로 유승민 전 원대대표와 남경필 경기지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보수혁신의 브랜드를 바탕으로, 남 지사는 대한민국 리빌딩을 화두로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들이 반 총장을 제치고 새누리당의 최종 대선후보가 된다면 이는 보수의 혁명적인 변화다. 20대 총선에서 뿔뿔이 흩어진 여권 지지층을 재결집시킬 수 있는 히든카드 중 하나다.
야권에서는 김부겸 더민주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이 거론된다. 김부겸 의원은 대구에서 당선되면서 지역주의 타파라는 정치적 브랜드를 자산으로 갖췄다. 안희정 지사는 이른바 문재인 페이스메이커론을 벗어던지고 대선 완주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내부경선 흥행 카드로 여겨졌던 이재명 시장 역시 박근혜 대통령과 연일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본인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김희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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