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다녀온 이해찬 전국무총리의 주가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본인과 청와대는 개인 차원에서 이뤄진 방북이라고 설명했지만 대통령 정무특보라는 또 다른 직함은 양측 ‘사전 교감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
범여권에선 이참에 이 전총리를 대선 주자군으로 재편입시키려는 시도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한 때 잠룡으로 분류됐던 이 전총리는 ‘황제골프’ 파문으로 낙마하며 큰 꿈에서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최근 부상한 정운찬 전서울대 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정 전총장을 부담스러워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다양한 의도로 이 전총리 띄워주기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독불장군이지만 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내는 사람이다.”
열린우리당뿐 아니라 한나라당에서도 이 전총리에 대한 평가는 비슷하다. 더욱이 그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 대통령 당선 당시 선거기획을 총괄 지휘했던 재사로서도 평판이 높다.
총리 재임시 대정부 질문에서도 한나라당 의원들과 서슴없이 설전을 벌였던 이 전총리는 여권 인사들 중 가장 공격적인 대선 주자로 평가받았다.
그런 그가 잠룡 그룹에서 멀어진 계기는 3·1절 골프 파문이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목소리를 낮춰왔던 이 전총리는 지난해 대통령 정무특보로 임명되며 서서히 날개를 펴기 시작하더니 지난 방북을 통해 또 다시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방북’은 정운찬 견제용(?)
대통령 정무특보를 맡고 있는 이 전총리의 방북은 자연스럽게 대통령 특사설로 이어졌다. 북한의 2인자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
측 인사들과 만나 독대를 나누며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 현안에 대해 깊숙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한 유력한 소식통은 “이 전총리가 김 위원장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모종의 친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해 이 편지의 주인공이 김대중 전대통령이냐, 노 대통령이냐를 놓고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전총리의 방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인적 방북’에 무게 추가 기울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성사 조건 및 시기 등 굵직한 사안이 화제가 됐지만 청와대의 의중이 직접적으로 담긴 것과는 일정 부분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이 전총리 방북 과정을 함께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북미 대화와 6자 회담이 먼저고 남북 관계는 그 다음이라고 이미 지난해 입장 정리를 했다”면서 “올 초 한반도 화해 무드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인 방북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청와대는 이 전총리의 특사설에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이 뒤늦게 이 전총리의 방북보고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도 고민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초 청와대 내부에선 “이 전총리를 특사로 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청와대가 공식 보고 받을 일이 없다”며 “받더라도 통일부를 통해 보고받으면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총리의 면담 요청이 결국 수용된 것은 이 전총리의 정치적 무게를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승용 홍보수석은 이에 대해 “대통령 정무특보이며 전임 총리이기도 한 데다 방문 결과에 대해 말할 게 있다고 하니 만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해찬 대망론 실체
이 전총리의 방북은 현재 범여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선 정국에도 영향력을 미칠 전망이다.
일단 이 전총리 개인은 이번 과정을 통해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다지는 계기가 됐다. 노 대통령으로서도 자신이 신임하는 이 전총리가 잠룡 그룹에 복귀한다면 결코 손해보는 일이 아니다.
범 여권에선 한명숙 전총리의 당 복귀, 정 전총장에 대한 구애가 이어지면서 잠룡그룹을 확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분주했다. 여기에 이 전총리까지 가세한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상당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왔다.
충청권 출신인 이 전총리의 ‘부활’이 정 전총장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탈당파가 정 전총장 영입에 목을 맨 상황에서 이 전총리의 등장은 정 전총장의 발걸음을 무겁게 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과 정 전총장의 불편한 관계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 전총장은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뿐만 아니라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퍼부어 왔다. 교육부총리와 총리를 역임했고 노 대통령의 철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전총리는 이런 정 전총장의 맞상대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카드다.
정봉주 의원 등 통합 신당에 적극적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 전총리의 정무특보 사퇴 주장을 들고 나온 것도 이 같은 움직임을 노 대통령의 정치 개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범여권 상황에 대해 “대선 주자가 적어도 세 그룹은 있는 것 같다”며 “정동영 김근태라는 1군이 신통치 않자 한명숙 정운찬이라는 2군이 뜨고 있다. 또 다른 3군 후보들도 준비돼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방북 이후 외연을 확대해 가는 이 전총리가 정 전총장과 어떤 관계를 설정해 나갈지 범여권 대선 구도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송파 신도시는 이해찬 작품(?)
국정브리핑을 통해 ‘부동산 정책’을 홍보하고 있는 국정홍보처가 송파신도시 건설과 관련, 이해찬 전총리의 작품이라고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2005년 8·31 부동산정책 발표 당시 건교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을 지냈던 권도엽 전실장은 “시장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손에 잡히는 공급계획을 가시화시킬 필요가 있었다”며 “과거 대책발표 때는 공급과 관련해 대략적인 방향만 제시하는 게 기본이었지만 8·31 정책 때는 신도시 건설 후보지로 송파를 딱 꼬집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따르면 송파신도시가 새로운 신도시 후보지로 확정된 것은 8·31 정책 발표를 불과 1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회의를 주관했던 이 전총리가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군 당국자를 설득하기 위해 전방위로 뛰어다니는 등 동분서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국정브리핑의 설명이다.
한편 국정브리핑은 지난달 ‘부동산 정책’ 시리즈에서 이명박 전서울시장에게 ‘아파트 폭등 책임론’을 제기한 바 있다.
김승현 okkdol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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