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심상치가 않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그 양상이 집단자살로 흐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한 달 새 3건의 집단자살 사건이 발생, 12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 왜 집단일까? 막을 방법은 없을까? 적극적 대응이 시급한 시점이다.
지난 3일 전남 광양시의 한 펜션에서 남녀 4명이 숨졌다. 사망자는 20대 2명, 30대 2명으로 지역과 직업이 각각 달랐다. 서로 연고도 없다. 경찰은 그래서 이들이 ‘동반자살’을 목적으로 만나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떻게 동반자살하나
경찰의 추정 논리는 이렇다. 이들의 휴대전화 트위터 계정에서 ‘자살, 동반자살’이라는 단어가 나온 점을 들어 이를 토대로 이들이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이 지난 1일에 이미 한 차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들이 집단으로 목숨을 버렸다는 증거는 또 있다. 유서였다. 여기에는 ‘가족에게 미안하다’ ‘빚 때문에 힘들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집단자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로부터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났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지난달 28일 경남 통영시내의 한 펜션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성 4명이 발견됐다. 이들 역시 서로 사는 곳이 달랐다. 경남·전북·전남 등 제각각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8월27일 오후 남자 4명이 펜션에 투숙했는데 모텔 주인이 다음날 오전까지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방문을 열고 확인해 보니 모두 숨져 있었다. 자살한 방법도 통영 사건과 비슷했다.
생존자가 없어 정확한 자살 경위를 파악할 수는 없으나 경찰은 이들도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행 중 한 남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지 때문. 여기에 “미안하다, 바다에 뿌려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기도 안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9월5일 안산시 단원구의 한 사무실에서 남자 3명과 여자 1명 등 4명이 숨져 있는 것을 수색 중이던 경찰이 발견했다. 이들의 지역과 직업, 나이 등도 서로 달랐다. 경찰이 집단 동반자살로 보는 이유다.
경찰이 이들을 수색하게 된 것은 이들 일행 중 한 명의 가족으로부터 미귀가 신고가 접수됐기 때문. 이에 경찰은 귀가하지 않은 사람의 위치를 추적했고, 해당 사무실에서 미귀가 신고된 사람을 포함한 4명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집단자살의 원인과 대책은?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나 연고가 없는 곳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동반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동반자살을 하는 걸까?
인터넷 자살사이트가 주범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자살하려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상당히 힘들다”며 “그런데 자살 직전 자살 정보 사이트들이 사고자에게 자살을 부추긴다”고 입을 모은다.
홍창형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빚을 지거나 실연, 실직, 청년백수와 같은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져 자실하려는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실제로 자살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그러나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쉽게 자살할 수 있는 방법이 상세하게 나와 있고, 또 자살사이트는 자살할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결해줘 대범한 생각을 가지게끔 한다”고 말했다.
홍 센터장은 동반자살을 하는 이유에 대해 “동질의식이 느껴지는 사람들끼리 함께 협력해서 자살을 꾀하면 공포감을 망각하게 해주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집단자살이 횡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당국은 인터넷 카페, 포털 사이트, SNS 등에 자살에 관한 정보가 올라오면 삭제할 것을 요청하고, 인터넷에서 자살 검색어를 실시간 모니터링해 자살 방지 프로그램으로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작동하고 있다. 또한 ‘자살유해정보 모니터링단’을 결성해 교육한 후 신고했을 시 보건복지부상을 수여하고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사법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방도 필요하지만 법으로 자살 사이트 운영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인 이유에 대해 홍 센터장은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으로 우울증 치료율이 낮은 점을 들었다. 또 높은 노인자살률도 빼놓을 수 없다고 홍 센터장은 말했다. 전세계에서 65세 이상 자살률이 성인자살률보다 높은 나라는 몇 개국 되지 않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나라인 것.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은 성인 자살률과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다.
홍 센터장은 자살과 관련한 언론들의 보도행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2008년 최진실 씨 자살사망 이후 언론의 과도한 보도경쟁으로 두 달 사이에 자살률이 전 년과 비교하여 70%나 증가한 모방자살현상이 나타났다는 것.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지키지 않은 기사가 자살률을 높이고 있다고 홍 센터장은 진단했다. 연예인 자살에서 자살의 수단이 전국에 보도되는 현상이 결국 시청자들에게 자살 방법을 학습화시키는 매우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고도 했다.
홍 센터장은 이 같은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누구든지 평소와 달리 갑자기 우울한 모습과 행동을 보이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어려운 점을 들어주되, 심하면 병·의원으로 연계해야 한다는 것.
자살 사망자 10명 중 9명은 자살하기 전에 경고 증상을 표현했지만 유가족 10명 중 8명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노인의 정신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홍 센터장은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10년 뒤에는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 사회에 돌입하는데 노인의 정신건강문제를 전문으로 해결하는 정신건강센터가 전국에 1개밖에 없다”며 “노인 우울증을 비롯한 모든 노인 관련 문제를 원스톱으로 해결해주는 기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