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사자 간 합의면 ‘끝’
사전사후 검증·관리 시급…이웃의 적극 신고 절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6살 딸아이가 양부모에 학대당한 것도 모자라 살해된 시신은 불에 타 버려진 ‘초엽기’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민간 입양’ 제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번 사건의 양부는 전과 10범으로 수차례 입건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민간 입양은 사실상 당사자 간 합의만으로 입양이 가능해 비정상적인 부모를 걸러내는 ‘필터’ 과정이 전혀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전문기관의 입양처럼 민간 입양도 사전 검증 및 사후 관리·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6살 A양은 2014년에 양부 B씨(47)와 양모 C씨(30)에 입양됐다. 친모 D(37)씨는 이들과 이웃사촌으로 평소 이혼으로 힘들어하고 있던 차에 아이도 이들을 잘 따르고, 이들도 아이를 예뻐해 잠시 맡길 요량으로 입양시켰다.
하지만 D씨에게 돌아온 건 자신이 믿고 맡긴 양부모의 ‘엽기 살해’ 소식이었다. 양부모는 A양이 말을 잘 안 듣고 식탐이 많다는 이유로 지난달 28일 밤 11시쯤 ‘벌 준다’며 A양의 온 몸을 투명테이프로 감아 17시간 방치 끝에 숨지게 했다. 이들과 함께 살던 동거녀 E양(19)도 학대 살인에 동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기막힌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0일 밤 11시쯤 A양의 시신을 포천의 한 야산에서 태운 뒤 유골을 흐트러뜨리는 등 유실시키고 훼손했다. 다음날 1일에는 사람이 많은 인천 소래포구 축제에 가서 경찰에 거짓 실종 신고를 하며 ‘완전 범죄’를 꾸미려 했다. 또 양모 C씨는 친모 D씨에게 “언니, 인천 소래포구 축제장에서 OO이(딸)를 잃어버렸어”라고 태연히 전화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경찰은 신고를 받은 뒤 CCTV 분석을 통해 애초에 A양의 흔적이 없음을 알고 추궁해 이들의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폭력, 절도, 도로교통법 위반 등 10건의 입건 전력이 드러났고, C씨도 1건의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입건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E양은 B씨 친구의 딸로, 거짓 실종 신고를 위해 사람 많은 축제 장소를 알아보는 등 양부모와 함께 행동했음이 드러났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자녀 셋을 키우고 있는 전모(32)씨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짐승만도 못한 XXX”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2살 딸아이를 가진 주부 양모(36)씨는“아이가 먹으면 뭘 얼마나 먹겠냐”며 “죽은 아이가 너무 가엾다”고 울먹였다.
민간입양 ‘허점투성이’
A양이 학대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은 ‘입양’에서 비롯됐다. 사실 입양 가정이 아이를 학대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중앙아동전문기관의 ‘2015년 전국아동학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학대 피해 아동 중 입양 가정·가정 위탁 등 대리 양육의 의한 학대는 전체 1.9%에 불과했다.
최근 5년간을 봐도 2011년 3.5%, 2012년 2.8%, 2013년 5.9%, 2014년 2.7%로 13년도를 제외하면 감소세를 보인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일반적으로 입양 가정은 사랑과 애정으로 조심스럽게 아이를 입양을 하기 때문에 아동 학대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며 “이번 사건은 사적 입양 형태로 이뤄진 ‘인면수심’의 특수 학대 사건”이라고 밝혔다.
민간 입양은 사실상 당사자 간 합의만으로 가능해 ‘허점투성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기관을 통한 ‘기관 입양’은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서류 접수부터 초기 상담, 양부모 교육, 가정법원 신청 등 모두 10단계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또 범죄나 수사기록 증명서, 건강진단서, 재산증빙서류 등 20가지가 넘는 서류를 제출하고 1년에 4번의 불시 방문도 받는다. 사전 심사부터 사후 관리까지 정상적인 부모인지 아닌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같은 민간 입양은 이런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 친부모와 양부모가 합의하고 가정법원이 간단한 절차를 거쳐 입양을 허가하면 끝이다. 이후 사후 관리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양부 B씨는 전과 10범의 위험인물이었지만 A양을 입양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런 가운데 부처 간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도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민간 입양은 당사자 간 합의를 가정법원이 승인하는 식이어서 법무부 소관이라는 입장이고, 법무부는 민간 입양 실태를 따로 관리할 법적 의무는 없다는 식이다. 김외선 한국입양가족상담센터 센터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간 입양의 경우 민법의 영역이어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가 책임 의식을 가지고 사적 합의 입양도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고, 입양 후 상담·방문 등 사후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학대 발견해도 ‘나몰라라’
이번 사건에서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주위 이웃들이 학대 정황을 파악하고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웃 주민들은 사건 이후에 경찰 조사에서 “밤에 우는 소리가 들리고 평상시에는 밝고 인사도 잘했는데 어느 날 보면 눈치를 보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밖에서 활동하는 모습 거의 보지 못했다”, “혼내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등의 얘기를 했지만 아무도 의심 신고를 하지 않았다. 여전히 적극적인 신고 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아동학대 신고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지만 전국 ‘피해아동 발견율’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피해아동 발견율은 1.32%인데 반해 호주는 8.0%, 미국은 9.4%로 월등히 높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에 대한 주위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이명숙 변호사(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부회장)은 “예전에는 남의 가정사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겼지만 학대 대부분이 가정 내 부모에게서 발생하는 것이 현실인 이상,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수사기관이나 아동학대 관련 기관에 적극적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며 “주위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아동학대를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