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평소 지병이 있는 정신지체 장애인 여성의 사망이 단순 변사로 처리됐으나 뒤늦게 사망보험금을 노린 남편의 사기극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던 것으로 알려져 경찰이 뭇매를 맞고 있다.
아내 명의 11개 보험 가입, 보험금 3억6300만 원 챙겨
종종 들러 음식과 술만 줄 뿐 보살피지 않고 방치해
지난 4일 서울 강서경찰서는 조모(53) 씨를 사기·유기치사 혐의로 구속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조 씨는 2011년 1월 정신적 장애와 알콜성 간질환 등 질병을 앓아 위독한 상태였던 부인 송모(44)씨를 방치하고 사망보험금 3억 원과 각종 보험 보상금 6300만 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두 달 살고 집 나와
병간호도 안 해줘
조 씨는 2009년 지인 소개로 송 씨를 만났다. 조 씨는 송 씨가 의사 표현이 어렵고 정신지체에 알콜성 간질환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사실을 알게 됐으나 송 씨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조 씨는 처음 송 씨를 만나면서부터 보험사기를 계획했다. 완벽한 사기를 위해 내연녀 주모(38)씨와 함께 범행을 계획했다. 이후 조 씨는 1년 동안 송 씨 명의를 도용해 전화 통화로만 가입이 가능한 11개 보험을 들었다.
조 씨는 2010년 8월 송 씨와 결혼했다. 결혼을 하고 두 달 동안 같이 살았지만 이후에 송 씨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다.
종종 음식과 술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제대로 된 간호를 받지 못하던 송 씨는 지병이 악화돼 2011년 1월 안산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보험금은 수익자인 조 씨 몫으로 돌아갔다.
송 씨의 사망 사건을 접수한 경기 안산 단원경찰서는 조 씨가 부검을 원하지 않고 송 씨의 죽음에 의심스러운 점이 없는 점, 병원 진단서 등을 근거로 단순 변사로 사건을 처리했다.
보험사 제보로 재수사
과거 유사 범죄 전력도
그러나 2012년 3월 조 씨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보험사의 제보로 서울 강서경찰서가 재수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5년 7개월 만에 조 씨의 범행이 밝혀졌다.
경찰 조사결과 조 씨는 과거 두 차례 정신지체 장애인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한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송 씨가 앞니가 없고 말을 더듬어 전화로 보험을 들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조 씨를 추궁해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내연녀인 주 씨도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보호 못 받는
정신지체 장애인들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각종 범죄에 노출될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더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관리·보호시스템 부재로 각종 범죄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송 씨 사건 외에도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자주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적장애 여고생 성폭행 사건’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여고생 A양이 통학을 위해 타고 다니던 버스의 기사 3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다.
가해자 한모씨 등 3명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차례에 걸쳐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이자 당시 미성년자였던 A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 2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장애인위계 등 간음)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직 버스기사 한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4년, 노모씨에게 징역 3년, 최모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장애인 인권정책 ‘피해예방’으로 전환한 정부 |
공공·교육기관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의무화 최근 발달장애인을 노예나 가축처럼 부리며 노역을 강요해온 사건들이 잇따라 밝혀지자 정부가 장애인 인권정책을 사후지원에서 피해예방으로 전환하는 등 감시체계를 대폭 강화키로 했다. 발달장애, 정신지체 장애인은 인지·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해 학대를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지 못해 범죄에도 취약하다. 지난달 1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등록 장애인은 2014년 기준 273만 명으로 추산되며 거의 대부분인 약 97.0%인 265만 명이 시설이 아닌 개인 집에서 거주하고 있다. 특히 재가장애인중 지적장애 18만명, 정신장애 11만 명, 자폐성장애 2만 명 등 약 30만 명은 인권침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실제로 정부와 사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인권침해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 7월 청주의 한 축사에서 지적 장애인이 19년간 강제노역에 시달린 것이나 지난달 12일에도 같은 지역에서 40대 지적장애인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며 상습 구타는 물론 기초생활수급비까지 가로채는 악행을 저지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복지부는 전국 지자체와 합동으로 내달 21일까지 한 달간 재가 장애인의 인권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1차 실태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그동안 거주시설 장애인을 중심으로 추진해온 인권 실태조사를 재가 장애인으로 확대하고 피해자를 사후 지원하는 데서 벗어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피해 여부를 발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는 셈이다. 이와 함께 법·제도 정비도 진행 중이다. 장애인 학대의 조기 발견을 위해 ‘장애인 학대 및 장애인 대상 성범죄 신고의무직군’을 장애인복지시설 종사자 1개 직군에서 의료인, 교사 등 21개 직군으로 확대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금지행위를 추가하고 벌칙조항을 신설했으며 공공기관과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하고 ‘장애 인식개선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등 사회적 인식도 바꿔나가고 있다. |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