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사태로 본 기업 공시위반 백태
한미약품 사태로 본 기업 공시위반 백태
  • 신현호 기자
  • 입력 2016-10-07 19:54
  • 승인 2016.10.07 19:54
  • 호수 1171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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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양치기·뻥튀기 공시…‘개미지옥’ 만든다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 사태를 계기로 공시 시한을 앞당기고 허위·부실공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불성실공시로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어서다. 최근 4년간 지분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아 적발된 건수가 1800건에 달했지만, 금융당국은 관련 기업에 주의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기관이나 외국인투자자보다 정보력이 부족한 개미(개인투자자)들은 억울한 심사를 감출 길이 없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로 투자자들은 피해를 봤지만 공시시간만 놓고 보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당국이 늑장 공시와 관련해 고의성이나 내부자 거래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 혐의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다.

개미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기업들의 무책임한 공시 때문에 기관이나 외국인보다 상대적으로 정보가 적은 개인투자자만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다. 기업들의 불성실공시는 ‘늑장 공시’, 장마감 후 악재를 내놓는 ‘올빼미 공시’, 알기 어려운 내용만 공개하는 ‘깜깜이 공시’, 아니면 말고식 ‘양치기 공시’, 수익률을 부풀리는 ‘뻥튀기 공시’ 등이 있다.

최근 4년여간 지분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아 적발된 건수가 1800건에 육박하지만 금융당국은 위반 기관의 99% 이상에 주의 등의 경징계 조치를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지분공시 제도가 불공정거래를 감시하는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정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주요 지분공시 위반에 대한 적발 및 제재 내역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 9월까지 총 1799건이 적발됐다. 이 중 99.2%에 달하는 1785건은 주의·경고 등의 경징계가 내려졌다.

나머지 14건은 수사기관에 통보한 사례로 검찰에 고발한 건은 없었다. 유형별로는 ‘임원·주요주주 특정증권 등 소유상황보고’ 위반이 1176건으로 65%에 달했다. 임원과 대주주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회사의 중요정보에 접근하기가 용이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김 의원은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증권시장 상황은 많은 투자자에게 광범위하게 손실을 입히며 특히 상대적으로 정보가 취약한 소위 개미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게 된다”면서 “지분공시제도를 점검해 소액주주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절반이 위반

특히 지난 3월 대기업 계열사 중 절반 가까이가 공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60개 대기업집단 소속 397개 회사를 대상으로 공시이행 여부를 점검한 결과 172개사(43.3%)가 총 413건의 공시규정을 위반, 이들 회사에 8억1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경고조치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60개 집단 397개 회사 중 44개 집단 143개 회사(36%)가 316건을 위반했다. 위반 유형은 누락공시(253건, 80.1%)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어 지연공시(39건, 12.3%)와 허위공시(20건, 6.3%), 미공시(4건, 1.3%) 등 순이었다. 공시항목 중에선 이사회 등 운영현황(165건, 52.2%), 계열사 간 거래현황(72건, 22.8%) 등과 관련된 공시 위반이 많았다.

기업별로 보면 위반건수가 가장 많은 곳은 롯데그룹으로 총 55건의 공시를 위반(기업집단, 비상장사 모두 포함)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롯데푸드 등 총 16개 계열사가 공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1억355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롯데에 이어 SK그룹(12개 회사)이 33건의 공시를 위반(과태료 9264만 원)했고, GS(10개 회사)가 30건으로 뒤를 이었다. LG(28건)와 대성(25건), 현대중공업(20건), 포스코(19건), 현대자동차(14건) 등 순으로 나타났다.

“공시 규정 개선해야”

대부분의 기업들이 공시 규정을 어긴 것으로 드러나면서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금융국장은 “호재성 정보는 당국이 관리하지 않아도 기업이 알아서 신속하게 공시할 것”이라며 “악재성 정보와 정정사항에 대한 공시는 늑장 대응하지 못하도록 공시 규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시 규정을 위반했을 때 받는 제재금은 거래소 기업이 최대 2억 원, 코스닥 기업은 1억 원에 불과하다.

미공개정보 이용과 시세조종 등 증권사범에 대한 사법당국 처벌도 관대한 편이다. 양형기준이 낮은 건 아니지만 법원 판결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미공개정보 등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거두거나 손실을 회피하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이익의 1배에서 3배에 이르는 벌금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2014년 미공개정보 이용, 시세조종 등 ‘자본시장의 공정성 침해 범죄’ 10건 중 7건은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공시 위반, 허위 재무제표 공시, 회계정보 조작 등 ‘자본시장의 투명성 침해 범죄’ 부문에서는 집행유예가 88.9%에 달했다.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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