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차기 잠룡인 남경필 경기지사가 연일 광폭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현존하는 여야 차기 주자 중 가장 발빠르다. 남 지사는 더 이상 대선무대의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뛰어올랐다. 최근 남 지사의 대외일정은 숨 돌릴 틈 없이 빽빽하다. 거의 매일 언론 인터뷰는 물론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출연, 대학특강 등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원희룡 제주지사와 더불어 새누리당을 대표하는 차차기 주자로 여겨졌던 남 지사가 최근에는 차기 주자로서의 위상을 보다 확고히 했다. 남 지사의 ‘대선 조기등판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 수도이전·모병제 대선이슈 선점 ‘조기등판론’ 대두
- 미약한 지지율과 당내 기반확보는 대권가도 숙제
남경필 경기지사의 대선행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남 지사가 화두로 던져온 이슈들은 적잖은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경기지사 재직 시절 대표적인 정치브랜드인 연정과 협치는 20대 총선 이후 여소야대 지형의 3당체제가 시작되며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더구나 수도이전, 모병제 도입, 핵무장 준비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남 지사가 내놓은 이슈들은 찬반이 분명한 파급력이 매우 큰 사안들이다. 언론과 여론의 주목 속에 사회적 공론화에도 어느 정도 성공한 것. 이제 공식적인 대권도전 선언만이 남았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인 남경필의 대권도전이 사실상 초읽기에 접어든 셈이다.
수도이전·모병제·전작권 환수…이슈파이팅
사실 따져보면 남 지사의 차기 대권도전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남 지사는 20대 총선 직전까지만 해도 가능성 있는 차세대 젊은 리더군의 한 명 정도로 여겨졌다. 1965년생으로 만 50세의,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는 물론 현역 광역단체장이라는 신분도 대권 도전의 걸림돌이었다. 특히 야권 분열에 따른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 가능성이 커지면서 남 지사의 역할은 사실 없었다. 호남을 텃밭으로 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총선 직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면서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을 얻으며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불거진 것.
그러나 ‘유승민 찍어내기’로 상징되는 새누리당의 공천파동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과반 붕괴로 상징되는 충격적인 총선 참패로 여권의 차기 지형이 급변한 것.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장 이전만 해도 여권 차기경쟁의 한 축이었던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이 때문에 미완의 대기로 불리던 차차기 주자인 남 지사와 원 지사에 대한 조기 등판론까지 불거졌다.
남 지사는 여권 안팎의 조기등판론에 꾸준히 화답했다. 남 지사는 ‘대한민국 리빌딩’이라는 거대 담론 하에서 시의적절하게 대선 화두를 던져왔다.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고치자는 주장이다. 반기문 총장이 충청대망론을 바탕으로 대선판의 상수로 떠오를 때는 개헌을 통한 수도이전을 주장하며 존재감을 높였다.
특히 수도이전 이슈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권의 유력주자들이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이어 모병제 공론화 이슈도 공세적으로 제기하면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논쟁도 벌였다. 남북분단의 현실과 북한의 제5차 핵실험이라는 미증유의 안보위기 속에서 시기상조라는 비판론이 적지 않았지만 정예강군 육성을 위해 모병제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
나아가 모병제 공론화 과정에서 ‘월급 200만 원 수준의 9급 공무원 대우’라는 파격적이지만 너무나 당연한 주장은 젊은층의 주목을 끌었다. 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7월에는 “사드배치는 어느 지역으로 결정되든 받아들여야 한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혀 주목을 끌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대개 우파가 주장하는 핵무장 준비와 좌파가 강조해온 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환수라는 파격적이고 이질적인 주장을 내놓은 것. 남 지사는 이에 “핵무장을 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핵무장 준비를 어느 시점에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모병제도, 핵무장 준비도 우리 스스로 국방을 지키는 제대로 된 준비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대선 동향을 검토해볼 때 미국의 대한반도 핵우산 정책이 변화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담은 전략적 고려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없이 핵무장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에는 “다음 정부 초기에 미국하고 다시 환수 문제를 협상해야 한다. 핵보유 선언은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전작권 환수 문제는 우리가 의지를 가지면 미국도 동의할 문제”라고 말했다.
윤여준 영입하면서 대선캠프도 조기 구성
남 지사의 현란한 이슈파이팅이 대선 도전의 내용이라면 대선캠프는 이를 뒷받침할 든든한 지원군이다. 남 지사는 차근차근 대선캠프를 구성하고 있는데 최근 어느 정도 윤곽이 마무리됐다.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았을 뿐 대권도전을 위한 매머드급 조직을 사실상 마무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여야를 넘나드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영입이다. 과거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정치적 멘토로 유명했고 2012년 대선 과정에서는 문재인 야권 단일후보를 지원했던 윤 전 장관이 차기 대선을 앞두고 남 지사를 선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윤 전 장관은 남 지사의 자문·정책·측근 그룹을 총괄하면서 대선전략의 큰 그림을 그리거나 주요 정치적 순간마다 방향타를 잡아줄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시의원 출신의 박재성 특보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부산시의원 출신으로 16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개혁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에서 남 지사와 인연을 맺은 박 특보는 대권전략을 총괄하면서 대선캠프의 좌장 역할을 할 예정이다.
정책그룹으로 활동할 학계인사로는 이영조 경희대 교수와 김태준 동덕여대 교수가 중심점이다. 이 교수는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사무엘 헌팅턴 교수의 수제자로 한국을 대표하는 엘리트 정치학자다. 김태준 동덕여대 교수 역시 남 지사와 경복고 선후배 사이로 공부모임에서 인연을 맺은 이후 경제전반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측근그룹으로는 경윤호 경기신용보증재단 상근감사와 이승철·한규택 전 경기도 의원이 핵심이다.
경윤호 감사는 남 지사의 재선 의원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보좌관 출신으로 직언도 할 수 있는 핵심 측근이다. 이 전 의원은 남 지사의 경기도정 브랜드인 ‘여야 연정’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이 밖에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 출신인 김우석 정무실장과 이태영 정무특보도 남 지사를 지키는 핵심 인력이다.
반기문 낙마 가능성 대비…오픈카드
남 지사가 지나치게 대권에 올인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뛰고 있는 것은 혹시 모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낙마를 대비한 측면이 크다. 반기문 총장은 유엔의 수장으로 국내 정치와는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지지율 1위를 달리면서 여여를 압도하는 차기주자다. 지난 5월 제주포럼 참석차 방한했을 당시 언행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았다.
추석연휴 기간에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3당 원내대표와의 회담에서는 내년 1월 귀국설을 흘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다만 여권 안팎에서는 반기문 대망론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상존한다. 만일 반 총장이 정치입문과 대선도전을 공식화하더라도 이른바 검증국면에서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 반 총장을 대체재로 거론되는 인사는 현재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승민 전 원내대표, 남경필 지사 정도다.
이 때문에 남 지사의 광폭행보는 반 총장의 낙마사태에 대비한 측면이 없다고 볼 수 없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남 지사를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더불어 새누리당의 가장 강력한 차기 주자로 거론한 바 있다. 김 교수는 “남경필과 유승민이 반기문보다 1000배 세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악몽이지만 만일 반 총장의 낙마가 현실이 되면 그에 앞서 대안 마련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남 지사를 히든카드의 하나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어려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어려운 난관은 남 지사의 미약한 지지율이다. 반 총장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반 총장은 지난 5월 제주포럼 참석차 국내에 방한한 이후 20%대 중후반의 지지율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차기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지지율 마지노선은 평균 5% 수준인데 남 지사는 여전히 밑바닥 수준이다. 라이벌들과의 경쟁도 부담이다.
김무성 전 대표는 반 총장을 제외하면 새누리당 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과 지지기반을 갖추고 있다. 총선과 복당 이후 정중동 행보를 거듭해온 유 전 원내대표 역시 적잖은 파괴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남 지사로서는 부담이다. 오 전 시장 역시 남 지사와 과거 새누리당 개혁운동을 함께 해온 동지이지만 정치적 이미지가 겹친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대결이 불가피하다.
남 지사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대권도전은 초읽기에 접어들었다. 사실상 본인의 최종 결심만이 남은 셈이다. 다만 현역 광역단체장이라는 신분을 감안할 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권출마를 조기에 공식화하면 경기도정에는 소홀한 채 대권에만 몰두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 수 있기 때문. 정치권 안팎에서는 남 지사의 대권출마 선언을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남 지사가 대선출마에서 회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지금까지 달려온 페이스를 고려할 때 출마는 거의 기정사실이다. 어느 시점에 어떤 수순과 모양새를 거쳐 대권 도전에 나설 것인지에 대한 결정만이 남은 셈이다.
지난 10월 5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는 대권주자로서 남 지사의 위상이 드러났다. 여야 의원들의 질문이 남 지사의 대권행보에 초점을 맞춘 것. 가장 많은 질문은 대권출마 선언 여부였다. 여러 의원들이 “대선에 출마하느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남 지사는 대권출마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내년 초 결정할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교과서적인 답변이지만 여야의 유동적인 정치지형을 고려할 때 예상 밖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남 지사가 넘어야 할 산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도 있다. 새누리당의 차기 대선 경쟁에서 대세론을 누리고 있는 반 총장을 꺾는다면 야권이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차기주자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숨겨 있다. 새누리당 대선후보 남경필이 실현된다면 이는 새누리당의 혁명적 변화를 견인하는 세대교체가 될 전망이다.
<김희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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