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노동계의 성과연봉제 반대 연쇄 총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연쇄 총파업으로 노동계는 국민생활과 밀접한 공공부문의 발목을 잡아 거대 노조의 기득권을 보호하려 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안보·정치·사회 현안으로 나라가 어지러운데 때아닌 추투(秋鬪)가 위기를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금융ㆍ공공노조에 이어 철도노조, 금속노조, 화물연대, 현대차 등으로 줄파업이 벌어지면서 경제적 불확실성과 국민적 불안감만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이다.
이번 파업은 나라의 안녕과 질서를 원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높은 보수를 받는 금융기관과 고도의 고용안정을 누리는 공공기관 노조 등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파업하는 것은 해도 너무한 집단 이기주의라는 것. 중소기업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현대차 노조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불매운동까지 검토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쇄 총파업, 명분 없어”
정부와 노동계가 현재 가장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쟁점은 성과연봉제 도입이다. 앞으로 이어질 노동개혁의 전초전인 만큼 서로 한 치도 밀리지 않겠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노동계는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를 내세우고 있으나 국민들은 명분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개인의 능력이나 업무성과와 관계없이 매년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 체계를 고수하겠다는 것은 무한경쟁시대에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임금체계는 현재 호봉제와 성과연봉제로 구성돼 있다. 호봉제는 개인별 업무성과와는 무관하게 근무 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급여가 인상되는 체계다. 이에 비해 성과연봉제는 입사 연도나 직급이 아닌 개인의 능력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성과형 임금체계다.
호봉제와 성과연봉제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호봉제의 경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동적으로 임금도 늘어나는 까닭에 직원들의 안정감이 높을 수 있다. 반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근속연수가 늘어나고 직급이 오르면 임금도 상승해 ‘대충병’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비해 성과연봉제는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일할 동기를 부여한다. 우수한 인재를 키울 수 있으며, 업무효율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져 직원들의 업무 스트레스가 높아질 수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를 확대하려는 것은 정부 조직도 민간 기업처럼 일한 만큼 받게 만들어 효율성을 높이고 국민이 공공기관으로부터 제공받는 공공 서비스의 질도 향상시키자는 취지에서다. 또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속 연차에 따라 자동적으로 월급이 오르는 지금의 호봉제 방식을 바꾸기 위해 성과연봉제 등 직무ㆍ능력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면서 “성과연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이 이뤄져야 노동시장의 효율성과 함께 기업의 신규 채용 여력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연공급 위주의 임금체계를 성과중심으로 개편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 해소, 고용유연화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성과연봉제와 노동 유연성 강화라는 국제적 대세는 총파업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저출산·고령화 속에 경제성장률은 수년째 2%대다. 조선·철강·해운 등 주력 산업에서 대규모 구조조정과 대량실업이 현실화된 상황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1분기 11.3%, 2분기 10.3%로 일본(4.7%), 독일(8.5%)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30대 그룹의 하반기 채용계획마저 전년보다 13.5%나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는 18만2000명으로 17년 만에 최대 규모다.
정부는 일자리 예산을 크게 늘리는 등 청년층 실업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노동조합의 무분별한 파업으로 청년층 실업률은 더욱 급등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반복하는 동안 생산공장과 일자리는 모두 외국으로 나가고 글로벌 빅5 자리도 빼앗겼다.
이번 총파업으로 국민은 되레 노동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절감하게 됐다.
공인회계사 김선일(51) 씨는 “조만간 금융·공공 부문에도 저성장·저성과에 따른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 살리기에 매진해도 시원찮을 판에 총파업이라니 자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노사관계에 대한 해외평가 좋지 않아
노사 간 대립과 반목이 극심하다 보니 국내 노사 관계에 대한 해외의 평가도 좋지 않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노사간 협력부문 순위가 135위로 138개국 가운데 끝에서 넷째였다. 고용 및 해고 관행 113위, 정리해고 비용은 112위에 그쳤다.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과 경직된 임금체계 때문이다.
국제 무대에서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데도 비교적 안정된 신분에 높은 연봉을 받는 금융회사와 공공 기관 노조가 대거 파업에 들어간 것에 대해 국민들은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파업에 나선 금융ㆍ공공부문 노조 대다수는 상위 10% 임금을 받으면서 직장도 안정된 ‘금수저’라는 공통점을 갖기 때문인지 “‘성과퇴출제’ 운운하며 거부하는 건 지금의 편한 직장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궤변일 뿐”이라고 국민들은 비난 일색이다. 직무와 성과에 따른 임금체계는 공정한 배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한 세계적 흐름이라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 공기업 등에서 암묵적으로 이뤄진 경영상의 비효율을 타파하기 위해서도 성과연봉제 도입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필요성을 받아들이고 방법 등에 대한 논의에 나서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지하철 노조의 파업은 3일 만인 29일 공식 종료됐지만 30일 오전 현재 전국철도노조 중 절반에 가까운 수는 아직도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으로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노조 소속 출근대상자 1만7525명 중 7125명이 파업에 참여, 참가율이 40.7%를 기록했다.
누적 파업참가자 7190명 중 65명(0.9%)은 업무에 복귀했다. 이 외 140명(1.9%)은 사측에 의해 직위 해제됐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