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유명 치약 제품 속에도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화학물질이 들어갔다"는 소식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떠올리며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문제가 된 성분은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와 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라는 화학물질로, 일부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도 들어간 것이 확인돼 유해성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이 물질을 코로 들이마셔도 “폐 손상 우려가 있다”는데 양치질한 뒤에도 다 헹궈내지 못한 치약 잔류물을 삼킨다면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가습기 살균제에 이어 치약에도 첨가돼 문제가 된 성분은 CMIT/MIT라는 물질이다. 이 물질은 살균제와 샴푸·린스 등과 같은 씻어내는 화장품류와 가글액과 같은 의약외품까지 광범위한 제품에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치약에는 넣으면 안 되는 미허가 물질인데 아모레퍼시픽이 만든 치약 제품 11종에 CMIT/MIT가 쓰인 게 확인돼 회수 조처가 내려졌다.
미국·유럽에선 치약 만들 때 쓰는 물질이다. 실질적으로 이 물질은 화장품을 오래 두고 쓰면 생기는 곰팡이를 억제하는 ‘보존제’ 용도로도 쓰이고, 가습기 살균제처럼 ‘살균’ 용도로도 쓰인다.
업계 관계자는 “보존제로 쓰일 땐 해당 제품 속 미생물 번식만 막으면 되니까 살균제로 쓰일 때보다 CMIT/MIT 함량이 훨씬 적게 들어간다”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식의 설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습기 살균제에는 살균제 성분으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나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를 쓴 제품이 있었고, CMIT/MIT를 쓴 제품도 있었다. 2011년 11월 질병관리본부는 동물실험에서 PHMG와 PGH를 쓴 제품에선 ‘폐 손상이 확인됐다’고 했지만, CMIT/MIT를 쓴 제품에선 ‘유의미한 폐 손상이 확인 안 됐다’고 결론 냈다. 그러나 문제가 없다던 CMIT/MIT가 든 가습기 살균제를 쓴 경우에도 폐 질환을 앓는 경우가 잇따라 나왔고, 이후 환경부는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유해성을 인정하기도 해 소비자들은 실험 결과를 믿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로 들이마시면 위험할 수 있는 물질이니 삼켜도 위험한 게 아닐까하는 우려가 대다수의 소비자들의 걱정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에 “소화기를 통해 들어가더라도 체내에 흡수된 뒤 전신 순환 과정을 거쳐 폐 손상에 이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고 말했다. 그러나 “흡입하는 것과 삼키는 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전신에 영향을 끼치는 독성 물질이 아니라면 흡입 독성 물질을 삼켰을 때 똑같은 폐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는 전문가(홍윤철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등)가 많았다. 이에 일정 기준치 이하로는 광범위한 화학제품에서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피부에 닿는 화장품류의 경우에도 나중에 물로 씻어내는 샴푸·린스, 염색제 등과 같은 물질에선 CMIT/MIT를 기준치(15PPM) 아래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에 CMIT/MIT 성분이 들어가 회수 조치가 내려진 아모레퍼시픽의 치약 제품에는 문제의 성분이 0.0044PPM 정도 든 것으로 파악됐다. 환경 당국의 독성 전문가는 “동물실험에서의 치사량 기준에 맞춰 단순 계산해보니, 몸무게 60㎏인 성인이 이 치약을 1432톤가량 먹어야 치사량에 이를 정도”라고 말했다. 극미량 들어 있어서 통상적인 치약 사용으로는 별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식약처는 아모레퍼시픽 외에도 CMIT/MIT가 든 원료를 납품받은 화장품·의약외품 제조사 10곳이 더 있다고 파악하고, 해당 물질이 든 원료 물질을 실제 썼는지, 썼다면 기준치를 넘겨 썼는지 등을 현장 조사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CMIT/MIT를 납품받은 곳 중에 가글액, 탈모 방지제, 염색약과 같은 의약외품 제조사에선 문제의 원료 성분을 쓰지 않은 것으로 잠정 확인했으며, 화장품류를 만들 땐 얼마나 썼는지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애경은 “샴푸 제품 중 일부에만 사용했지만 기준치(15PPM)보다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했고, 코리아나화장품도 “일부 제품에 기준치 이하로만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8일 오전 9시부터 CMIT/MIT가 들어간 메디안 등 11개 치약에 대한 교환·환불을 실시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심상배 사장은 지난 27일 ‘고객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내고 “원료 매입 단계부터 철저히 관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적절한 원료를 사용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심 사장은 “당사는 최근 원료사로부터 납품받은 소듐라우릴설페이트(SLS) 내에 CMIT/MIT 성분이 극미량 포함되었음을 확인했다”며 “인지한 즉시 관련 제품에 대한 회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회수 품목은 아모레퍼시픽의 ▲메디안 후레쉬 포레스트 치약 ▲메디안 후레쉬 마린 치약 ▲메디안 바이탈 에너지 치약 ▲본초연구 잇몸치약 ▲송염본소금 잇몸 시린이 치약 ▲그린티스트치약 ▲송염 청아단 치약 플러스 등 총 11가지 제품이다.
메디안 제품을 구매해 사용했던 소비자 김모씨(29‧남)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 옥시의 안이한 대처를 봐온 선례가 있음에도 치사량이 아니니 문제없다는 식의 이야기는 책임 없는 태도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라며 실망을 금치 못했다. 또 그는 “메디안 제품을 여러 개 한꺼번에 구비해뒀는데 당장 모두 버려야하는 불편함까지 감수하게 됐다. 앞으로 아모레퍼시픽 제품을 믿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불안감을 내비쳤다.
김판기 한국환경보건학회장(용인대 산업환경보건학과 교수)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문제 된 제품은 건강에 위해한 수준이 아니지만 어린이·노인, 임신부 등 취약층이 쓰는 화학제품에 대해선 제품군별로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