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 성폭력 3년 새 2배↑…또래문화, 호기심 복합 원인
유독 성에만 자기결정권 부여 ‘부당’…‘관계 맺기 교육’ 필요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 18일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학교폭력 유형별 현황’에 따르면 청소년 간 성폭력이 3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폭행·금품 갈취 등 일반 학교폭력 범죄가 줄어든 가운데 나타난 결과를 두고 청소년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실제로도 청소년 성폭력은 우리 주변에서 빈발하고 있다. 지난 5월 전북 김제에서 남자 고등학생들이 친구인 여학생을 술을 먹인 뒤 집단성폭행을 가했고, 6월에는 서울 도봉구에서 고교생 22명이 여중생을 윤간했던 사건이 뒤늦게 밝혀져 충격을 줬다. [일요서울]은 이현숙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청소년 성폭력의 원인, 특징, 대책 등을 들어봤다.
이현숙 대표는 최근 청소년 성폭력 증가 수치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면서도 “청소년 성범죄는 엄연한 사회적 문제”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청소년 성폭력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라며 “이를 위해 학교에서 전문적인 성교육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 최근 경찰청 자료 ‘학교폭력 유형별 현황’을 보면 청소년 간 성폭력 건수가 3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주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 신고가 많이 늘어나서 그럴 수도 있고,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양적으로 증가했는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다만 청소년 성폭력이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청소년 성폭력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 우선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매체 발달로 어린 나이에도 음란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는 성에 대한 그릇된 관념과 판단을 심어주고 성관계의 중요한 의미를 왜곡시킨다. 성관계는 남녀가 서로 애정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는 최고 단계의 행위인데 음란물은 폭력적인 쾌락과 감각만을 보여준다.
또 학생들은 몸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적 호기심으로 인해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른다. 특히 남학생의 경우 ‘내가 성적으로 더 많이 안다. 성적 경험이 있다’는 말은 마치 ‘내가 너희들보다 위’라는 잘못된 권력과시로 이어져 또래들의 압력과 충동을 부추기기도 한다. 학생들이 받는 입시 스트레스도 한 요인이다. 더욱이 가족관계가 약한 아이들은 애착관계의 부재 속에서 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 청소년 성범죄가 가지는 특징이나 특이점이 있다면.
▲ 학생들은 ‘또래 문화’에 의해 혼자서는 하기 힘들지만 남들과 함께하면 쉽게 동참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은 범행 사실이 발각되면 “저 혼자 한 게 아니에요. 쟤도 그랬어요”라며 본인은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여럿이 같이 행동하면 안심하고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2명 이상 모의하면 특수강간죄로 더 큰 처벌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는 잘못된 생각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일부 성인 남성들이 그러는 것처럼 남학생들도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분법’적인 측면이 있다. 엄마, 누나, 여동생 등 나와 관계된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고, 나머지 일반 여성들은 성적 대상으로 여겨 특히 성에 대해 밝히거나 헤프다고 판단되는 여학생들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 ‘걔도 좋아할 거다’, ‘걔는 경험이 있으니 건드려도 돼’라며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지적 장애학생이나 가정폭력에 노출돼 긍정적인 스킨십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성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건강한 관계를 경험한 아이들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는데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아이들은 이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가해자들은 처음부터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예쁘다고 칭찬도 해주고 길들이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이런 학생일수록 취약하다. 그들이 접근하는 진짜 이유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 성에 대한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현재 학교 내 성교육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 학교 선생님들 의지에 따라 다르다. 정말 잘 하는 선생님도 있고, 1년에 주어진 10시간 또는 15시간을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보다 성교육이 많이 확대된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성교육이 생물학적인 수준이나 금욕을 강조하는 교육에 그치는 측면이 있다. 성관계는 다른 사람과 나누기 힘든 둘만의 사적인 최고 친밀 행위인데 결국은 ‘심리적 유대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 감정을 어떻게 키워 가느냐’를 교육해야 한다.
성은 결국 인권에 대한 교육인 것이다. 성은 나의 감각도 중요하지만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관계 속에서 친밀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까지이고, 그 경계를 넘어갔을 때는 동의와 허락을 구하는 게 당연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관계 맺기 교육’이 학교에서 충분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부족하다. 교육청 지침에 의해 성교육 표준안에 따라 성폭력 예방 교육을 진행하지만 선생님들조차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 연출된다. 교육 당국은 지침에만 그칠 게 아니라 교사가 되는 과정에서 관련 성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사회적으로 성폭력을 ‘영혼의 살인’으로 규정한다. 피해 학생들의 후유증이 심각할 것 같은데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 피해 후유증이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옆에서 도와주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 주변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성인·청소년 구분 없이 가해자 70~80%이상이 피해자가 아는 사람인 것이다. 이는 상대방을 믿었거나 선의를 베풀었거나 상대방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렸는데 그 대가가 성폭력으로 나타났을 때 피해자는 큰 충격과 함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이 생긴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편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지지해줘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가해자와의 관계만 깨지는 거고, 나머지 관계에서는 큰 위로와 힘을 얻는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러기에 거길 왜 따라갔냐’‘그 사람 말을 왜 믿었냐’‘순진하게 혹시 네가 빌미를 준 거 아니냐’‘그 정도는 여럿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참고 넘어가라’ 식으로 비난하게 되면 피해자는 사회적으로 고립돼 버린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주변사람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가해자에게는 합당한 처벌과 교화를, 피해자에게는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한 세밀한 노력이 중요하다.
- 청소년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항은.
▲ 우선 문화적으로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시각이나 남성은 성 조절 통제가 불가능하니 마치 여자들만 알아서 조심하라는 등의 그릇된 성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는 지속적인 양질의 학교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
법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성적자기결정권(현행법상 13세부터는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있다고 간주함)’에 대한 문제가 크다. 미성년자의 경우 구직·결혼 등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는 아이가 스스로 결정했어도 이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적자기결정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설령 좋아서 했다고 주장했더라도 이에 대해 아이에게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 어른이 아이들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린 것이기 때문에 어른이 책임져야 마땅하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 아이들의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유독 성에 대해서만 아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예를 들면 술, 담배와 같다. 아이들이 술, 담배를 좋아서 샀다고 해도 판 사람만을 처벌하는 것처럼 성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현 상황은 성에 대해서 자기결정권이 있다며 권리를 옹호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
'탁틴내일'은 어떤 단체? |
여성아동청소년 ‘지킴이’ 탁틴내일은 1995년 3월 1일 설립돼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성과 아동, 청소년을 위한 시민단체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구체적 사업으로는 청소년 성상담 및 성교육 활동, 청소년 문화사업, 학교 폭력예방활동, 우리농산물 학교급식운동, 청소년자원봉사활동, 임산부 기체조 운동, 양성평등 가족 만들기 운동 등이 있다. |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