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 김영삼 의원은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대통령에 출마할 것을 천명했다. 김영삼 의원이 내세운 ‘40대 기수론’의 근거는 두 가지였다.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을 막지 못해 무기력증에 빠진 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새 인물’이 필요하다, 당시 야당 지도자들의 고령과 노쇠로 이승만 정권을 교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젊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김영삼 의원의 ‘40대 기수론’은 김대중, 이철승 후보가 가세하면서 돌풍의 진원지가 되었다. 물론 이들의 도전은 박정희 집권을 막지 못했고 유신체제로 이어지면서 좌절했다. 생물학적 젊음으로의 교체라는 접근법으로 한계는 있었지만 30여 년이 흐른 뒤에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된 것을 생각한다면 거대한 반향의 씨앗은 이때 뿌려졌다.
‘40대 기수론’ 버전2가 2017년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을 서서히 달구고 있다. ‘50대 기수론’이 그것이다.
주목받는 50대 정치인들을 살펴보면 여권에서는 ‘남경필․원희룡․정병국’ 그룹을 위시해 유승민, 나경원, 오세훈, 이혜훈, 이정현, 정진석 의원 등이, 야권에서는 ‘86그룹’으로 지칭되는 김부겸, 김영춘, 안희정, 우상호, 추미애, 박영선 의원, 이재명 시장 등과 안철수 의원이 있다.
특히 이들이 주목받는 것은 대통령과 서울시장 등 차세대 리더십의 주요 후보군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먼저 차기 대선 후보로 관심 인물은 남경필, 유승민, 안희정, 김부겸, 안철수 등이다. 대권을 향한 관문에 해당하는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는 나경원, 추미애, 박영선 의원과 이재명 시장 등이 거명되면서 불꽃튀는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현재 활동하고 있는 50대 정치인들의 면면을 보면 전문성과 실력, 경험 면에서 자기 성과를 갖고 있고 대중적 인지도도 만만찮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인터넷, SNS 등 IT기기 사용에 적극적이어서 대중과의 소통에 능하며 언론매체에 나서는 것에도 두려움이 없어 이미지 정치에도 잘 적응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온몸으로 체득한 세대로 사회 변혁에 대한 자신감도 있다.
물론 그들의 젊은 시절이 독재정권과 맞부딪히면서 고뇌로 가득 찼고 그래서 아팠고 고통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핵심 지도자로 서있는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자랑이고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우리 사회의 ‘50대’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저성장과 불황의 늪에서 빠져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그늘 아래 50대의 삶은 ‘팍팍함’ 그 자체이다.
직장에서는 명퇴의 끝자락에 내몰려 있는데 아직 아이들의 교육은 끝나지 않았다. 부모 봉양 역시 눈앞의 과제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3~40년의 기나긴 시간을 '인생 2모작‘이라는 이름으로 준비해야 하지만 일자리는 마땅치 않다.
우리 사회의 허리 세대라고 하기에는 그 짐이 너무 버겁다. 때문에 과거 선배들이 내질렀던 ‘40대 기수론’의 패기와 열정이 ‘50대 기수론’에는 베어있지 않은 느낌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풀어내야 한다는 묵직함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래서인지 과거 ‘40대 기수론(젊은 지도자론)’에 대해 선배 정치인들이 ‘구상유취(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는 뜻으로 어리다는 의미)’라고 질타했다는 것이 나름 이해되기도 한다.
즉 지금의 ‘50대 기수론’에는 연령과 신체 등 생물학적 젊음으로서의 ‘세대 교체’, ‘신구 교체’란 의미가 다소 적게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특히 ‘아버지 세대가 아들 세대 일자리를 뺏는다’는 논리가 횡횡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세대 교체’란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다’라는 말과도 같게 들려서 ‘50대 기수론’에 적용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이미 다양한 사회정책 조사에서 2030세대와 5060세대의 생각이 반대로 엇갈려서 나타나는 ‘세대 차(Generation Gap)'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할 중요 과제가 된지 오래다.
그리고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올 여름 영국의 ‘EU 탈퇴’ 투표시 아들 세대가 아버지 세대를 향해 ‘당신들이 우리의 미래를 망쳐놓았다’고 비난한 사례는 대표적이다.
그래서 ‘50대 기수론’은 ‘세대 교체’를 뛰어넘는 ‘시대적 과제’의 기점을 만드는 슬로건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2017년 대선의 핵심 키워드인 ‘시대 정신’과도 연결된다.
과거 노태우 대통령의 ‘보통 사람 시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 개혁’, 김대중 대통령의 ‘준비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원칙과 상식의 시대’ 등은 당시의 ‘시대 정신’과 이를 구현할 인물의 살아온 인생 이력서가 일치되어서 선택받은 ‘시대 정신’의 집약어들이다.
그럼 2017년의 ‘시대 정신’은 무엇일까?
새누리당 전 윤리위원장이었던 인명진 목사는 ‘정의’와 ‘평화’란 단어를 제시했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뛰어넘는 뉴 패러다임을 ‘시대 정신’으로 언급했다. 대선 후보들을 인터뷰한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경제 정책에서 보수와 진보의 수렴’, ‘사회 불평등에 대한 해법’, ‘대외정책에서의 차별화’라고 ‘시대 정신’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럼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예비 후보들은 ‘시대 정신’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경우, ‘협치’와 ‘공유적 시장경제’를 제안했고 정책 과제로 ‘수도 이전’과 ‘모병제’를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지난 22일 관훈토론에서 ‘세대 교체가 아닌 시대 교체’를 말했으며 그 내용적 의미로 ‘20세기의 진보 보수 이념적 대결 구도’와 ‘힘을 기반으로 한 정치’가 공존과 조화의 철학에 기반한 새로운 리더십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방분권을 포함한 9개의 입법과제도 함께 제시했다.
앞으로도 대선 예비 주자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시대 정신’, ‘시대 과제’를 국민들께 선보이고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30여년 전 정치 선배들이 꺼내 들었던 ‘세대 교체에 기반한 40대 기수론’을 뛰어넘어 세대 통합의 징검다리를 놓을 사람이 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다른 새로운 접근법을 도전적으로 제시하는 사람이 그 키워드를 손에 쥘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이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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