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앞서 송광수 검찰총장은 지난 11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에서 김경재 민주당 의원이 “최근 삼성그룹의 비자금 저수지가 발견된 것으로 안다”고 묻자 송 총장은 “지금 사채시장에서 상당한 양의 채권을 발견했으나. 그 채권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에 대해 수사중이며 삼성 것이라는 확신은 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그러나 하루만에 검찰은 이 돈이 삼성측이 한나라당에 건넨 채권이라는 사실을 전격 발표한 것. 검찰은 또 이 채권 외에 “삼성이 한나라당측에 50억원을 별도로 제공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지난 대선 한나라당에 올인?’
이날 검찰의 발표로 현재까지 삼성이 한나라당에 건넨 비자금은 총 372억원에 이른다. 그동안 정치권과 재계에서 떠돌던 ‘한나라당이 삼성에 300억원의 대선자금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측은 삼성에서 받은 채권의 일부는 돌려줬다고 주장하며 검찰 발표를 반박했다. 한나라당 법률지원단 심규철 의원과 김용균 의원은 지난 13일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중인 서정우 변호사, 김영일 의원, 이재현 전재정국장 등을 면회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서 변호사로부터 삼성으로부터 282억원의 채권을 받았다는 내용을 확인했다”며 “최돈웅 의원을 통해 받은 것으로 알려진 현금 40억원을 합하면 삼성으로부터 받은 자금은 총 322억원이다”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또 “서 변호사가 받은 채권 282억원 중 한나라당으로 전달한 채권은 200억원이고, 당에서는 그 중 채권 62억원을 현금화(50억원 가량)해 사용하고, 나머지 채권 138억원은 대선직후 돌려 받아 삼성에 그대로 반환했다”는 서 변호사와의 면담 내용을 전했다.서 변호사는 “채권 282억원 가운데 당에 전달하지 않은 82억원은 그 중 45억∼50억원을 직접 현금화해 당에 전달하고 나머지 32억∼37억원은 삼성에 반환했다”고 심 의원은 전했다.즉 ‘현금 50억원’은 서 변호사가 당에 전달하지 않고 보관하던 채권 82억원을 현금화해 당에 전달한 돈을 검찰이 ‘이중계산’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검찰은 서 변호사로부터 “‘삼성에 반환했다’는 진술은 받은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한나라당이 “중복계산 됐다”고 주장한 추가로 발견된 현금 50억원에 대해서도 검찰은 별도의 자금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건희 검찰 출두 임박
비자금 당사자인 삼성측은 충격 속에 휩싸였다. 책으로 위장한 채권 뭉치들과 현금 150억원을 한나라당에 전달한 데 이어 170억원의 채권뭉치와 현금 50억원 추가 지원 혐의가 터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검찰수사의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측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검찰수사를 관망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룹 내부에선 “우리가 검찰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검찰은 추가로 발견된 채권 170억원의 조사를 위해 김인주 구조조정본부 사장과 이학수 부회장을 소환조사키로 했다. 또 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에 대한 조사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삼성이 한나라당에 건넨 372억원은 그룹 회장의 지시 없이는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거액이라는 점에 이 회장의 소환 조사를 신중히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 정치권에선 이건희 회장에 대한 처벌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추미애 민주당 상임중앙위원은 15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조사 결과 삼성이 거액의 불법자금을 한나라당에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검찰은 당장 이건희 삼성 회장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 위원은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은 명백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돼야 할 사안인데도, 검찰은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고 있다”며 “정치인이 불법 정치자금을 요구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으며, 이와 함께 검은 돈으로 권력을 사려는 기업인 역시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검찰 조사뿐만 아니라 이 회장에 대한 검찰의 형사처벌을 촉구한 것. 이에 대해 삼성측은 “추 위원의 주장은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다”며 “문제의 자금은 회사돈이 아니고, 개인 대주주 돈이라는 점을 지난달 이학수 부회장이 명백하게 밝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삼성이 대선을 5개월이나 앞둔 2002년 7월부터 대선 직전까지 주기적으로 비자금을 준 것으로 볼 때 한나라당에 ‘올인 전략’을 쓴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또 평소 기업의 도덕성과 투명성을 강조해온 삼성이 야당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전달한 것은 어떤 대가를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4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과의 대담에서 “검찰 수사가 기업인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로 바로 진행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며 “기업인들에게까지 과거를 다 묻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국민들에게도 부담스럽고 경제에도 부담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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