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품, 자본주의 틀 속에서 市場이 가치 결정
고미술품, 자본주의 틀 속에서 市場이 가치 결정
  • 장휘경 기자
  • 입력 2016-09-09 21:33
  • 승인 2016.09.09 21:33
  • 호수 1167
  • 2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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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市場, 침체기 넘어 위기에 봉착…정체성에 맞게 전통문화 살리는 정책 시급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미술사학과 이태호 교수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한국 고미술 시장이 침체기를 넘어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2000년대 초, 우리 미술계가 상당한 호황을 누릴 때도 고미술 시장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고미술계의 수집가 세대가 세상을 떠나면서 후속 세대에게 수집 취향이나 정서가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미술사학과 이태호 교수(사진)를 만나 전통문화의 근간인 고미술 시장을 살리는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사회에 자본주의 세태가 강화되면서 고미술계 흐름을 시장이 완전히 장악했다. 1970~80년대는 평론가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고, 1990년대는 미술사가 부상해 고미술품이 진위 문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미술이 시장에 좌지우지되며 평가받게 됐다. 사고 팔리는 가격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 가운데 서양미술이나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고미술품은 상대적으로 시장 가치가 떨어져 가격이 바닥권을 형성, 극심한 불황에 빠졌다.

우리 문화의 중요한 유산

이태호 교수는 “전통작품이 이어지지 않고 몰살되어가는 것이 문제다”며 “외국의 몇 백년 전 작가들의 작품이 수백, 수십억의 가치로 평가되는데 우리나라 고미술의 대표적 작가들, 심지어는 6대가를 비롯한 근대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현존하는 중견작가의 가격에도 훨씬 못 미치니 잘못돼도 아주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미술 시장을 살리려면 고미술의 정체성에 맞도록 전통문화를 살리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문화계 인사의 발언에 따르면 우리민족의 얼, 우리의 역사를 대변하는 고미술은 우리 문화의 중요한 유산인 만큼 고미술이 빈약하면 문화후진국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이 교수는 “문화예술의 뿌리가 없는 민족이 어떻게 선진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겠느냐”며 “이는 국가 경쟁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우리 고미술계는 정부와 국민들의 이해와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고미술계가 고사하면 우리 전통문화는 뿌리를 잃는다는 것.

이 교수는 “절박한 위기상황에 놓인 고미술의 전통문화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임에도 정부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정부기관에서 문화재를 구입해줘야 하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구입비 예산’을 갖고는 1년에 문화재 한 점 구입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연 관람객은 350만 명이 넘지만 올해 유물구입비는 39억8700만 원에 불과하다.

턱없이 부족한 유물구입비 때문에 국보·보물급 문화재가 경매에 부쳐져도 손쓸 도리가 없다는 것.

다른 국립박물관·미술관도 마찬가지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 유물구입비 예산은 53억 원이고 국립민속박물관은 26억 원, 국립고궁박물관은 7억 원에 불과했다.

지방 국립박물관은 더욱 열악하다. 유물구입비가 별도로 편성되지 않아 필요하다고 요구할 경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물을 구입해 보내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우리 문화유물의 확보를 위해 유물구입비의 증액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견해다.

이 외에도 이 교수는 “문화재는 돈 많은 사람이나 특수계층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곳에서 먼저 솔선수범해 고미술품 전시를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술업계에 의하면 미술정부기관의 임무 중 하나가 외국박물관과의 국제교류 및 국제 홍보다. 일본이나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해외전시가 훨씬 활발하다. 해외전시를 통해 외국인들에게 문화의 나라라고 각인시켜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우린 한류와 스마트폰 외엔 문화적으로 알려진 게 거의 없다. 한류가 확산되고 관심이 집중되는 지금, 그걸 전통문화와 연결시키는 게 중요하다”면서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해외전시는 차치하더라도 국내에서조차 전통회화 전시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리고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전통회화 전시가 30년 동안 4~6%밖에 진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해는 전통회화 전시가 전혀 없었던 때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게다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에 현대미술 전공자가 임명되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현대미술전시가 더 활발히 진행되고 고미술계 전시는 점점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이어 “앞으로 우리 고미술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하에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고미술품 전시회를 많이 열 것을 권장한다”면서 “사실 지금은 어느 분야에 있든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 우리나라를 정확히 알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고미술 가치 재평가돼야

이 교수는 또한 고미술 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준이 확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미술품이 컬렉터(수집가)에게 가치를 부여해야 하고, 시장의 투명성을 확립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전통문화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미술품을 구입하는 여유계층은 거의 외국유학 특히 미국유학을 갔다 온 사람들이 많아 대다수 서양미술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미국대학에는 교양과목으로 미술사 강의를 많이 듣는 만큼 좋은 서양미술사 강의가 많다”며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에는 좋은 미술사 강의가 거의 없고 미술사를 교양과목으로 채택하는 학생들도 매우 적어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어 “게다가 전통적인 것보다 서양적ㆍ현대적 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고미술에 대한 관심은 고사 직전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고미술에 대한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며 “현재 교육에 필요한 자료 활용 능력이 부족하고 관심도 소홀한 만큼 고미술 교육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화 학예연구관에 따르면 한국화 교육이 교육내용으로 교과서에 등장하더라도 초등학교의 경우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사 실태 조사 결과 미술을 가르치는 70명의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 전통미술의 필요성을 81% 정도는 인식하고 있으나, 한국화 표현의 재료 및 기법을 자신있게 알고 있는 교사는 4%에 불과하고 기법 및 용구 사용법을 ‘전혀 모른다’가 83% 그리고 한국화 표현에 관한 ‘연수를 받은 적이 없다’가 83%로 연수의 기회가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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