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사회 정의를 추구해야 할 판사, 검사, 변호사 이른바 ‘법조 3륜’이 금품과 향응으로 얼룩졌고 사리사욕을 채우다 끝내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국민들은 배신감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다. 누구보다 깨끗하고 공명정대해야 할 사람들의 비리 앞에서 “이제는 누구를 믿어야 하나?”하는 한숨만 나온다. 일요서울에서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스폰서 검사’의 일탈행위를 하나하나 들춰 보고자 한다.
김형준 부장검사 사건은 스폰서 검사 일탈의 ‘종합판’
내부 자정 회의론 가운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대안론
68년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비리 혐의’로 해임된 진경준 전 검사장 사건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검찰에서 대형 사건이 터졌다. 일명 ‘스폰서 검사’ 김형준 부장검사(46·사법연수원 25기) 사건이다. 김형준 부장검사 사건은 ‘스폰서 검사의 종합판’이라 부를 만큼 다양한 일탈행위를 모두 달고 있다. 결국 검찰에서는 특별감찰팀을 꾸려 수사에 나섰다.
30년 된 친구가 스폰서
돈·오피스텔 등 요구
김형준 부장검사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제일 먼저 공개된 것은 김형준 부장검사와 ‘스폰서’ 김희석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있다.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둘이 나눈 대화 내용에는 그동안 있었던 다양한 일들, 즉 일탈행동과 김 부장검사가 스폰서 김씨에게 어떤 것들을 요구했는지 적나라하게 나와 있었다.
김 부장검사는 스폰서 김 씨를 ‘친구’로 불렀다. 이들은 실제 고등학교 동창이다. 학창시절 김 부장검사는 학생회장, 김 씨는 반장을 맡았다.
김 부장검사는 지난 2월 3일 오전 11시 11분에 내연녀로 추정되는 곽모씨의 계좌번호를 김 씨에게 보냈고, 김 씨는 곧바로 “출근해서 바로 보내고 (카카오)톡 줄게”라고 대답했다. 이어 1시간 뒤인 낮 12시 13분에 “5백 보냈다”라며 “내 전용 계좌에서. 입금자는 그냥 회사이름으로 했다.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라고 덧붙였다.
김 부장검사는 약 한 달이 지난 3월 5일에도 곽 씨에게 돈을 주라고 김 씨에게 부탁했다. 그는 “어제 이야기한 대로 내게 빌려주는 걸로 하고 월요일에 보내줘. 마음 완전히 되돌리려고 한다. 도와주라 친구”라고 보냈다.
이어 “송금은 OOO이름으로 내가 마련해 주는거라 했으니 지난번 거 니가 보낸 거 알아서 같은 회사 이름으로 하면 안 되고”라며 구체적으로 방법까지 알려줬다.
김 부장검사는 내연녀에게 ‘생일선물’로 오피스텔을 사줬다. 지난해 11월 17일에 김 부장검사가 “선릉 대림으로 확정…2016년 1월 5일경 입주. 바쁘겠지만 이달말 26일 생일이라니까 계약해주면 선물로 주고 일 안하게 하고 타이밍 좋겠다. 고마우이 친구”라고 보내자 김씨는 다음날 ‘ㅇㅋ’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이어 같은 달 25일에 “친구…아무래도 좀 떨어진 곳이 나을 듯. 광진 자양사거리 OOOOOO 1000만원에 65만원으로 하려고. 강남 괜히 계약하지 말게나”라며 새로운 오피스텔을 제시했다. 김 씨는 “내가 가서 계약할까, 아니면 OO한테 돈을 보내줄까”라고 되물었다.
내연녀에게 보낼 돈을 부탁하고 심지어 생일선물로 오피스텔까지 구매해 달라고 요구하는 김 부장검사의 행동은 사실 일탈의 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하지만 김 부장검사의 일탈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김형준 부장검사의 일탈 행동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것은 비위행위를 저지르는 것 외에 자신의 권한과 정보 등을 바탕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김 부장검사는 스폰서 김씨에게 수사상황을 알려주고 코치까지 했다. 그는 7월 10일 카카오톡 대화를 통해 “조사할 때 너랑 나랑 술 먹은 거만 물어봤어, 아님 2차도 갔느냐고 물어봤어”라고 확인하며 “한OO는 매번 먼저 갔으니 자네와 나 남았을 때 내가 한 30분 마시다가 다음날 아침 회의 있어서 12시 넘으면 갔다고 해야 해”라고 요구하며 위증을 하도록 했다.
또 “검사 사표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고 변호사도 등록 안돼 요즘”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도 했다.
공천 욕심내기도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장인
둘의 대화에서는 김 부장검사가 ‘총선’과 ‘공천’에도 욕심이 있음을 드러냈다. 김 부장검사는 지난해 11월 13일 카카오톡 대화에서 “친구, 이번 진경준 검사장 주식 파동 보면서 나도 농지 문제는 백부로부터 증여받은 거지만 우선적으로 정리해야 할 것 같아”라며, “내역 보내니 한 번 검토해서 매각방안 좀 도와주라. 검사장 승진에도 그렇고 차후 총선에 나가려해도 공천부터 굳이 도움되는 건 아니라서”라고 전했다.
김 부장 검사가 정치권 진출에 욕심을 둔 건 그의 장인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 검사의 장인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으로 검찰 대선배이기도 하다.
전 국회의장 사위라는 타이틀은 김 부장검사 승진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김 부장검사는 검찰 요직을 두루 거쳤고 해외 명문대 유학까지 다녀왔다.
김 부장검사는 2009년 한국 외교부 유엔대표부 법무협력관(참사관)으로 3년간 파견 근무를 갔다. 미국 뉴욕에서 근무하던 중인 2011년 임기를 6개월가량 남겨두고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으로 발령이 났다.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은 검찰 요직 중 하나로 승진 필수코스 자리다. 당시 임기가 남은 상태에서 국내 복귀를 하려 하자 법무부 내에서는 말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명하복문화
승진지상주의 문제
김형준 부장검사의 일탈행위는 앞선 진경준 전 검사장과 비교하면 그 규모나 내용이 지극히 개인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검사들의 일탈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검사 출신의 A씨에 따르면 “과거 선배 검사와 식사를 하고 나면 소위 스폰서가 와서 계산해 주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부 전체 회식을 하거나 할 경우에는 식비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거와 다르다”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스폰서 문화가 실제로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다.
또 A씨는 “사실 대부분의 많은 검사들은 정말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밤낮 구분없이 일에 몰두한다. 스폰서 검사는 극히 일부의 얘기다.”라며 “문제는 검찰 내부의 시스템이다. 상명하복식 서열구조와 승진지상주의 그리고 검사의 잘못된 인성이 빚어 낸 참극이다.”라고 말했다.
검사들의 일탈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허탈한 심정뿐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시로 터지는 ‘스폰서 검사’ 사건을 보면 답답한 마음뿐이다. 더 큰 문제는 검찰 스스로 자정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허울뿐인 개선·예방안만으로는 이미 무너질 데로 무너진 검사들의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