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법조 3륜' 중 앞바퀴에 해당하는 판사들의 해이해진 기강도 검사와 변호사 뺨친다. 현직 부장판사가 억대의 부정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참담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2006년 이후 10년 만에 발생한 부장판사 구속 사건으로 법원 수장인 대법원장은 대 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비리 근절을 위한 대책도 내놓았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비위 혐의로 구속된 장본인은 인천지법 김수천 부장판사(57). 김 판사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51) 명의의 수표를 가족 계좌로 받고, 다시 외제차 대금을 돌려받는 등 모두 1억8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김 판사가 지난 2014년 정 전 대표가 몰던 고급 외제차 레인지로버를 산 뒤 차 값을 되돌려 받았다는 것. 이 사건에는 성형외과 의사 이모 씨도 얽혀 있는데, 검찰은 구매 대금 5천만 원을 김 판사에게 되돌려주었다는 이 씨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장판사·정운호 전 대표, 함께 여행한 이유는?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원석 부장검사)에 따르면 김 판사는 또 정 전 대표와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면서 여행비를 정 전 대표 측에 부담시키는 등 수차례에 걸쳐 금전적 이익을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특히 김 판사가 정 전 대표 측으로부터 도박사건 선처와 가짜 네이처리퍼블릭 화장품 유통 사범 엄벌과 관련해 부정한 부탁을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 판사는 검찰 수사 초기에는 자신의 결백을 강하게 주장했으나 다시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뢰 혐의를 대체로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판사는 영장 실질심사도 포기했다.
김 판사의 구속 소식에 사법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해 최민호 전 판사가 사채업체로부터 청탁과 함께 2억7천여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후 또 다시 법관의 금품 수수 사건이 터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 2006년에는 조관행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조 브로커 김홍수 씨로부터 사건 청탁 대가로 1억2천여만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국민들도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김수천 부장판사 구속 기사 댓글을 통해 “법복을 입은 판사들이 어떻게 돈을 받고 재판을 할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앞으로 판사의 판결을 신뢰하기 힘들어졌다” 는 등의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네티즌들은 최근 법관들의 비위 사건이 부장판사 이상의 고위급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김수천 부장판사 비위시건 발생 전인 지난달 2일에는 서울 수서경찰서의 단속 현장에서 법원행정처 소속 부장판사가 성 매매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판사의 비위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판사 10명이 각종 비위로 인해 징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1명, 2012년 4명, 2013년 2명, 2014년 2명, 지난해 1명이 징계를 받았는데, 이들 중 6명이 부장판사였고, 후배 법조인을 양성하는 사법연수원 소속도 있었다. 징계사유는 품위유지의무위반이 8건으로 가장 많았다. 금품이나 향응수수도 2건이 있었으나 최대 정직 1년을 받는 데 그쳤고 해임된 경우는 아예 없었다. 사실상 ‘솜사탕’ 징계였다.
국민에게 사과하고 후속 대책 내놓았으나
법관들의 비위가 잇따라 터지면서 여론이 심상치 않게 흐르자 양승태 대법원장이 6일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양 대법원장은 ‘국민과 법관들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현직 부장판사의 금품수수 사건과 관련해 실망하고 상처를 받은 국민에게 사법부를 대표해 깊이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양 대법원장은 이어 “법관이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직업윤리와 기본자세를 저버린 사실이 드러났다”며 “그 사람이 법관 조직의 중추적 위치에 있는 중견 법관이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느끼는 당혹감은 실로 참담하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또 “이런 일이 상식을 벗어난 극히 일부 법관의 일탈행위에 불과하다고 치부해서는 안되고 우리가 받은 충격과 상처만을 한탄하고 벗어나려 해서도 안 된다”면서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일지언정 이 일이 법관 사회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 자체로 먼저 국민께 머리 숙여 사과하고 깊은 자성과 절도 있는 자세로 법관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 발표는 법조 비리로 국한할 경우, 지난 1995년 윤관 전 원장의 ‘인천지법 집달관 비리 사건’ 관련 사과, 2006년 이용훈 전 원장의 ‘조관행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법조 브로커 금품 수수 혐의 구속’ 관련 사과에 이어 이 번이 세 번째다.
양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 후 대법원은 뇌물수수로 징계를 받은 법관에게 불이익을 주는 내용을 담은 후속 대책을 마련했다. 대법원은 법관 윤리의식 제고와 법관비리 재발방지대책 등을 놓고 장시간 논의한 끝에 비위법관에 대해 연임을 제외하고, 공무원 연금을 감액, 징계부가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또 연임심사에 오른 법관의 재산이 눈에 띄게 불어났을 경우 이를 집중 검토 대상자로 선정해 조사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린 사실이 드러나면 연임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법관 징계법을 개정해 현직 법관이 부정한 금품을 받아 징계를 받을 경우 받은 금액의 5배까지 징계부가금을 물리고 뇌물을 수수해 정직 6개월이 넘는 징계를 받으면 공무원연금 수령에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이 같은 사법부의 대책에 대해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징계과징금을 늘려 비리를 근절하는 것은 언 밭에 오줌 누기”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지금은 징계제도가 없어서 부장판사가 자기 친척 명의로 억대의 돈을 송금 받는 간 큰 짓을 하겠느냐”며 “근본적인 대수술, 대혁신이 필요하다. 비리 혐의가 있으면 제대로 검찰이 수사하고, 죄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원은 또 “검사들이 셀프 수사를 통해 수사 면죄부를 받고 감찰을 빠져나가는 것에 기초해서 결국 사후적인 사법적 통제기관인 판사들의 비리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는 연결구조가 있다”고 지적하고 “그런 측면에서 검찰의 개혁 즉,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그 기관을 통해서 검사들의 비리가 늘 관찰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검사들 역시 조심할 것이고 검사들 역시 판사들의 비리의혹을 보게 되는 선순환적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