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 9월 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었다. 하지만 5일 전이었던 9월 5일 안산의 한 상가건물에서 남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동반자살로 알려진 당시 사건은 기타 사회 이슈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일요서울에서는 당시 사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 자살의 위험성, 문제점, 예방대책 등을 알아보고자 한다.
경제난 심해지면서 개인자살보다 동반자살 늘어
자살 도구, 모임 등에 관한 정보 온라인에 넘쳐나
경찰 발표에 따르면 경기도 안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남녀 4명 중 3명은 자살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사이인 것으로 확인됐다.
A(26·여)씨 등 4명(남성 3명 포함)은 지난 5일 오전 8시 22분경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의 한 선불폰 개통업체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이들은 비닐봉지를 쓴 채로 숨져 있었으며, 이들이 누워 있던 사무실 내에서는 질소통 2개가 발견됐다.
숨진 이들 가운데 B(34)씨 주머니에서 메모지 형태의 유서 4장이 발견됐지만 유서에 자살 동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가족과 지인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해당 사무실은 함께 숨진 이들 중 C(31·귀화 중국동포)씨가 인근의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근무하면서 연고가 있었으며, 임차인으로부터 지난 1일 사무실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이날 숨지기에 앞서 지난달 22일에도 인천에서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출동한 경찰에게 발견돼 화를 면했었다.
첫 번째는 막았지만
두 번째는 못 막아
하지만 이들의 자살 시도는 다시 이어졌다. 지난 1일부터 경찰에 미귀가 신고된 이들에 대해 수사를 벌이던 경찰은 A씨의 행적 조사를 벌이던 중 이날 숨져있는 이들을 발견했다.
앞서 2일 오후 10시경 A씨의 가족은 충북 제천경찰서에 “서울로 직장을 구하러 간 딸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실종신고를 했다. 나머지 3명에 대해서도 지난 1~3일 사이 인천 연수경찰서, 분당경찰서, 양주경찰서 등에 각각 신고됐다.
A씨의 휴대전화를 추적하던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가 끊긴 지점 인근을 수색하던 중 지난 1일 오후 1시경 이들 4명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CCTV로 포착했다. 이후 동선을 역추적하던 경찰은 이날 해당 사무실 인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 4층 건물의 2층 해당 사무실로 강제 진입, 숨져있는 A씨 등 4명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들이 지난 1일 오후 10시 52분께 숨진 일행 중 한 명이 사무실로 들어간 이후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 CCTV에 촬영되지 않은 것으로 미뤄 이 시점부터 이날 발견됐던 시점 사이에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질소 가스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 이들의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의뢰할 예정”이라며 “자살사이트로 만나지 않은 1명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 및 통화 기록 등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자살만남 사이트 운영자 등 자살을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이버 수사를 통해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자살시도자
재시도률 높아 ‘주의’
4명의 자살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이들의 죽음이 더욱더 안타까운 점은 아무도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4명 중 3명은 이미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재시도를 막기 위해 가족과 정부기관의 관리가 시급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14년 기준 10만 명당 27.3명이다. OECD 국가 중 1위다. 2003년 이후 12년 연속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OECD 국가 평균이 12.1명인 것이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최근에는 개인자살보다 동반자살이 늘어나는 추세다.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가족 동반자살과 온라인 등을 통한 집단 자살이 늘고 있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자살을 실행하기 전에 주변의 가족, 친구, 지인 등에게 구조요청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의 구조요청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문제는 과거에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재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2013년 보건복지부가 전국 17개 병원의 응급실을 방문한 자살시도자 1천359명을 대상으로 자살실태를 심층 조사했다. 그 결과 자살시도자들 가운데 과거 자살시도 경험자의 비율이 31.8%였다. 재시도율이 매우 높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안산 동반자살 사건에서 보듯 아무도 이들을 막지 못했다. 따뜻한 관심도 정부기관의 시스템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살 관련 정보
규제·처벌 제도 시급
자살을 시도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지만 이들의 자살을 막을 대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201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응급실을 기반으로 한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사업’이 효과를 내고 있다. 현재 병원에서 퇴원한 자살 시도자들은 자살예방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국에 10곳밖에 되지 않는다.
동반자살 등 온라인상에서 자살 모임을 찾거나 자살 도구를 구매하는 과정이 너무 쉽다는 것도 문제다. 안산 자살사건에서는 질소가 자살도구로 사용됐는데 시중 공업사에서는 아무런 확인절차 없이 질소를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자살사이트 문제도 심각하다. 정부가 2000년 자살을 조장하거나 미화하는 내용의 웹사이트를 폐쇄시키고 관련 사업자를 규제하기로 했지만 법적인 제재조치까지 이뤄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자살 방법, 도구 등에 관련된 글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떠돌아 다니고 있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