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8월 전대를 거치면서 친박, 친문 지도부가 들어섰다. ‘반기문.문재인 대세론’이 형성된 가운데 전대가 끝나자 여의도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잠룡군이 대권 도전 의지를 밝히면서 대선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제3지대에 머물고 있는 잠룡군과 비주류 진영은 친박, 친문 독식에 대선 경선룰마저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야권에서는 안철수, 손학규, 정운찬 여권에서는 김무성 등 ‘문재인 대세론’과 ‘반기문 대세론’에 맞서 제3지대에서 ‘헤쳐모여 식’ 정계개편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비주류 정의화·박형준 ‘제3지대론’ 긍정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나와도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 한 당직자의 한탄이다. 이번 8월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친문 일색으로 지도부가 꾸려지면서 천하의 반기문 총장도 문재인 전 대표와 더민주당에서 경선을 하면 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더민주당은 문 전 대표가 지지한 추미애 대표가 당선됐고 지역별 뽑은 최고위원 역시 친문 인사들이 싹쓸이 했다. 8.27 전당대회를 통해 확실하게 친노·친문 세력이 결집해 힘을 보여줬고 향후 대선 경선룰을 결정할 때에도 문 전 대표가 우위에 설 공산이 높아졌다.
손학규·정운찬, “들러리 설 생각 없다”
전대 이후 ‘문재인 대세론’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더민주당 내 야권 주자들의 행보는 본격화되고 있다. ‘영남텃밭’ 대구에서 당선된 김부겸 의원을 비롯해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앞다퉈 대권 도전 의지를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새로운 시대를 열자”며 대권 도전 의사를 시사하고 있지만 문재인, 김부겸, 안희정 등과 비교할 때 확실한 의사 표명은 하지 않은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3지대에서 더민주당과 함께할지, 독자세력화를 추진할지를 두고 고민하는 야권 잠룡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인사가 손학규 더민주당 고문과 정운찬 전 총리다. 두 인사는 여야를 넘나들며 ‘러브콜’을 받고 있다. 모두 중도합리적인 인사들로 여권보다는 야권행이 점쳐지는 인사들이다.
특히 손 전 고문의 경우 10월에 정계복귀설이 유력한 상황이다. ‘국가 대개조 방안’을 주제로 한 책을 출판하면서 정계복귀를 선언할 예정이다. 손 전 고문의 선택은 제3지대에서 독자 세력화를 추진할 공산이 높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세론이 전당대회를 통해서 확인된 이상 ‘더이상 불쏘시개 역할은 안하겠다’는 입장으로 탈당할 공산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국민의당에 입당해 안철수 전 대표와 예선전을 치루고 향후 야권 단일화를 통해 문재인 전 대표와 예비본선을 거쳐 여권 후보와 일전을 치룰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여의도에 횡행했다.
하지만 손학규 캠프에서 근무했던 한 측근은 “손 전 고문이 문재인 전 대표와 경선을 치를 생각은 없다”며 “제3지대에서 독자세력화를 통해 야권 통합의 길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단 더민주와 새누리당 나아가 국민의당까지 배제한 채 反반기문·反문재인 연대를 통해 창당 수준의 정치 세력화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이다.
손 전 고문과 마찬가지로 더민주당에 입당할 것으로 알려진 정운찬 전 총리 역시 ‘장고’에 들어갔다. 지난 4.13총선에서 비례대표를 받고 더민주당에 입당할 계획이었지만 무산되면서 제3지대에 머물고 있다. 충청도 출신에 이명박 정권 당시 총리까지 지낸 정운찬 전 총리는 세종시 이전 문제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와 척지면서 여권보다는 야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 9월7일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향해 공개 ‘러브콜'을 보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배숙 의원이 주최한 ‘위기의 한국경제와 동반성장-정운찬 전 총리 초청 특별강연'에 참석했다.
안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축사를 통해 한국경제의 위기 등에 대해 설명하며 “정 전 총리 같은 분의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 전 총리께서 선도적으로 주창하는 동반성장과 국민의당의 공정성장은 함께하는 부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전 총리가) 우리가 꼭 가야 할 변화의 길에 지도와 나침반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손학규, 정운찬 ‘헤쳐모여’
하지만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특강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안 전 대표가 동반성장과 공정성장의 접점이 있다고 했다'는 질문에 “동반성장과 공정성장의 차이는 이미 신문에서 다 말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안 전 대표가) 같이 해보자고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뭘 같이 하느냐"며 사실상 거절 의사를 밝혔다. 정 전 총리는 “내가 국민의당에 입당을 하라고?"라며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서 원할 때도 강의를 했었다. 제가 여기에 왔다고 해서 당에 가입을 하는, 그런 기대는 말라"고 일축했다.
그는 다만 대권 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 나라가 너무 혼란스럽고 경제가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라 나라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며 “생애 궁극적 목적이 동반성장 사회 건설이다. 그걸 위해선 제가 여러 번 말했지만 무엇이든 할 용의가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제3지대에서 활동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제3지대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길을 열어놓고 동반성장을 위해 더 매진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정 전 총리의 한 지인은 “국민의당 입당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 분”이라며 “오히려 두 번의 더민주당에 입당할 기회가 있었지만 현재로선 모든 것이 제로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지난 더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친노·친문의 독식을 목도하면서 “새누리당도 친박 지도부가 들어섰지만 비주류 강석호 최고위원이 당선이 됐다”며 “그러나 더민주당에서는 단 한 명도 비주류가 당선되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향후 거취를 묻는 질문에 이 인사는 “사실 전당대회가 끝나면 거취를 결정하려고 했는데 올해 11월까지는 더 두고 볼 예정”이라면서 “차라리 신당 창당을 위한 창준위를 꾸리자는 의견도 있다”고 말해 독자적으로 정치 세력화를 도모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럴 경우 여야 주류 세력간 대결 구도 속에 ‘제3세력’發 정계개편이 내년 대선의 최대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게 됐다. 제3지대에서 손학규, 정운찬 등 비주류 정치세력과 안철수 국민의당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경선을 치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안 전 대표는 평상시 국민의당을 대선 플랫폼 정당이라며 여야 잠재적 대권 인사들에게 문호를 개방한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이나 정 전 총리가 특정한 당을 선택하지 않고 제3지대에 머물 경우 안 전 대표 역시 입당보다는 합당을 통해 ‘헤쳐모여식 신당’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친문 독주에 ‘들러리’를 서기보다는 향후 안철수, 손학규, 정운찬 3인이 중도합리적 정당을 만들어 경선을 통해 문재인, 반기문 등과 3자 대결을 펼칠 경우 해볼 만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세론’에 맞서 김부겸, 안희정,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대선 경선 참여를 선언했지만 흥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정치권의 시각이다.
한편 새누리당 역시 친박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반기문 대망론’이 급속히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다. 이정현 대표체제에 청와대에서 밀고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각종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야권 1위 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를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리고 있다. 특히 반 총장은 아직 정치권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여당 비주류 잠룡군들의 고민이 뭍어 있다.
현재 비주류 잠룡군으로 분류되는 인사로는 김무성, 유승민, 남경필, 오세훈, 원희룡, 김문수 등이 있다. 하지만 반 총장의 대세론에 비견할 때 조족지혈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뜨지 않고 있다. 비주류 측에서는 ‘반기문 대망론은 레임덕 방지용’이라며 출마를 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반 총장이 여론조사에 고공행진을 보이고 대선 출마 선언을 실제로 한다면 비주류 6인이 모두 힘을 합쳐도 당내 경선을 뚫기는 쉽지 않다.
이에 비주류 출신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당 밖에서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모색 중이다. 친이계 좌장 역할을 해온 이재오 전 의원도 중도개혁신당 ‘늘푸른한국당’을 출범시켰다. 새누리당 주류 세력이 노골적으로 반 총장을 밀 경우 비주류 세력의 일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특히 새누리당을 탈당한 잠룡급 인사들이 안철수, 손학규, 정운찬 3인방과 제3지대에서 함께할 경우 문재인, 반기문 대세론이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더민주와 새누리당 가교 역할은 김종인 전 대표가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전 대표는 차기 대선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하고 있고 문 전 대표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여야를 넘나들 수 있는 김 전 대표까지 제3지대에 참여한다면 내년 대선판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 변수도 있다. 박 시장은 최근 “내년 대선이 정말 중요하다”며 “어지럽고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답”이라고 말했다. 북미를 순방 중인 박 시장은 9월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한인회관에서 열린 교민·유학생 간담회에서 내년 대선 출마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 상황에 대해 “시대를 교체하고, 미래를 교체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진단한 뒤 “한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권교체가 답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 시장은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말이 이어지자 “왜 고민이 없겠느냐”면서도 “더 얘기하면 서울에 있는 신문 1면에 톱으로 나올 수 있다”면서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2018년 6월까지인 서울시장 임기를 채울 생각이냐는 질문에도 명쾌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 박 시장은 “서울시장의 직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출마를 위해서는) 개인의 결단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시대의 요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대권 도전 가능성을 열어뒀다.
제3지대 정계개편 박원순 서울시장도?
일단 박 시장은 서울시장 3선연임과 대권 도전 사이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친문 진영에서는 박 시장도 경선에 참여하길 내심 바라고 있다. 시장직을 던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경선에 참여할 경우 문 전 대표와 각을 세울 수밖에 없고 밖의 안철수 전 대표와도 껄끄러운 관계로 남을 수 있다.
박 시장이 3선 시장에 도전할 경우 당선이 녹록지 않다. 차기 대권을 거머진 대통령이 자기 입맛에 맞는 서울 시장 후보를 내세울 게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 역시 ‘흥행’을 위해 경선 참여를 원하고 있는데 박 시장이 3선 도전을 할 경우 주류 세력들이 차기 서울시장 경선에서 박 시장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이번에 주류 세력을 등에 업고 당 대표에 오른 추미애 의원의 경우 차기 서울시장직을 노리고 있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에 박 시장이 안철수 전 대표와 함께 제3지대에 참여할 경우 야권 발 정계개편은 내년 대선에서 최대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