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또다시 야권의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등장했다. 추미애호 더불어민주당이 ‘안보’ 대신 ‘경제’에 방점을 맞춘 모양새다. 김종인 전 대표를 향해 “분열을 선동하는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빨리 끝냈어야 했다”며 날을 세운 추 대표가 김종인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인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이 같은 ‘궤도수정’은 내년 대선을 앞에 둔 ‘전략적인 움직임’이라는 평가다. 김종인-제3세력, 추미애-문재인 두 세력이 ‘경제 민주화’를 두고 겉으로는 뜻을 같이하는 듯하나 뒤로는 친문 대 비문 본격 기싸움이 이루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더욱이 ‘경제 민주화’는 선진국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정책이라는 비난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경제 민주화’ 정책 실체 들여다보니…
- “반(反) 시장적 ‘경제 포퓰리즘’과 ‘경제 민주화’에 경도돼 있어”
김종인·추미애 두 킹메이커 간 벼랑 끝 대결의 1차 승부처는 ‘경제 민주화’인 듯하다. 김 전 대표와 추 대표 둘 다 ‘경제민주화’로 당내 주도권을 잡으려는 모양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당 밖에서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추석 직전인 9월 둘째 주에만 3개의 강연을 잡았다. 소상공인과 호남 등 계층·지역별 소외계층과 진보성향 정치인들에게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나아가 김 전 대표는 정치인 중심이 아니라 교수와 전문가들이 두루 참여하는 독자적인 조직 구성에 나섰다. 이는 그간 여야를 넘나들면서 잠룡들을 만나온 김 전 대표가 내년 대선을 겨냥해 정치권 외부의 학자와 전문가, 실물경제인을 아우르는 ‘외곽조직’을 만드는 것으로 해석돼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김 전 대표는 지난달 18일에는 국회에서 일반인과 당직자를 대상으로, 지난달 22일에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원사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경제 민주화가 경제 활성화다'라는 제목으로 각각 강연한 바 있다. 그는 ‘경제민주화’ 이슈를 끌고 나갈 조직도 정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추미애 더민주 대표 역시 “바통을 이어받겠다”며 ‘경제 민주화’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김종인 전 대표가 ‘경제 프레임’으로 총선 승리를 견인한 만큼 ‘경제 민주화’ 슬로건이 내년 대선까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계산이 실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추 대표가 집권을 위해선 미우나 고우나 김 전 대표를 예우하고 경제 민주화를 적극 실천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오월동주와 다를 바 없는 現 대표와 前 대표
당초 추 대표는 “당원들의 가장 큰 불만이 야당이 야당답지 않다는 것” 이라며 “김종인 대표께서 당의 전통과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김 전 대표를 향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뿐만 아니라 “사드 반대와 재검토를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며 전대 전 지도부 전체와 대립각을 세웠던 추 대표다.
그러나 최근 추 대표는 돌연 태도를 바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책임을 김 전 대표에게 물은 것에 대해 “그간 잘되자고 한 이야기가 정돈이 안 된 채로 흘러갔다면 (김 전 대표께서) 이해를 좀 해달라”고 화해의 손길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물론 정치권 관계자 누구도 이 둘이 정말 ‘경제 민주화’로 끝까지 뜻을 같이할 것이라 보지 않는 실정이다. 이 둘의 관계가 ‘오월동주(吳越同舟)’ 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제3세력의 ‘킹메이커’를 자처한 김 전 대표와, 친문(親文)의 핵심인 추미애 대표가 함께 대선 완주를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설상가상으로 일각에선 더민주가 앞으로의 정치적 공간 확보를 위해 ‘경제 민주화’를 악용하려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치권에선 추 대표가 경제 민주화를 대선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게 완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은 2일 “反 포퓰리즘 연대라도 필요한 건 아닌지”라며 추 대표를 직접 겨냥하기에 이르렀다. 이날 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제민주화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경제 민주화는 포퓰리즘에 다를 바 없다. 재정여건은 외면한 채 무조건 퍼주자고만 하는 정치인이 넘쳐나고 있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실제로 김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설계했지만 강한 반발에 무산됐던 경험이 있다. 그가 더민주에서 여러 차례 “경제민주화를 입으로만 외치지 말고 이에 헌신하는 인상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그럼에도 김 전 대표와 추 대표는 경제 민주화의 방법론에 있어서부터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추 대표의 첫 번째 교섭단체 연설 중 법인세 강조점은 김 전 대표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앞서 김 전 대표는 고별강연에서 법인세 인상 필요성에는 동감하면서도 소득 재분배 효과가 크지 않으며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추 대표는 법인세 인상을 골자로 하는 조세체계 개편을 가처분소득 확대의 일환으로 접근했다.
한편 이 같은 김 전 대표와 추 대표의 법인세 인상은 전 세계 인하 경쟁 추세에 어긋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가부도를 맞은 그리스와 위기를 겪은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도 법인세만큼은 되레 인하했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 경쟁국이 앞다퉈 법인세율을 인하 중이다”며 우려를 피력했다.
朴 ‘경제 민주화’ 부작용에 ‘경제 활성화’ 정책으로 급선회
실제로 재계는 과거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강하게 유감을 표한 바 있다. 당시 재계인사들은 “과도한 경제민주화는 경제를 위축시키고, 투자의지도 꺾는다. 일자리가 더욱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다”며 경제민주화가 반(反) 시장 반(反) 기업정책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 경제민주화는 대선공약이라며 초기에 핵심 정책들을 도입했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했다.
대선공약을 지키고자 했던 박 대통령은 결국 임기 중반이 돼서야 경제민주화에 현실적 문제를 느끼고, 규제혁파와 경제 활성화로 노선을 급선회했다. 상황이 이러한데 추 대표의 연설을 지켜본 정치권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이목이 집중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추 대표가 현란한 말들을 했지만, 정작 실행방법에선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모조리 부인하고 있다”며 “사드 배치 등 안보정책도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실사구시 민생정치를 외치고 있어도,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좌파적 반시장적 경제 포퓰리즘과 경제민주화에 경도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쏘아붙였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 역시 “추 대표는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에서 서민과 중산층이 없다고 했지만 전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규제개혁과 경제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예산편성을 보면 서민과 중산층 생활안정과 소득증대, 세제감면에 집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추 대표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경제 민주화’란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빈부격차를 보다 평등하게 조정하자는 취지의 용어이다. 우리나라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반면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1항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2항은 그로 인한 부(부)의 편중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국가가 개입할 여지를 둔 조항이다.
‘경제 민주화’ 유권자 현혹위한 정책
현재 야권에서는 바로 이 2항을 내세우며 소득분배와 재벌규제를 허용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으나 오히려 폐단이 더 크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야권이 지난 대선과 총선의 화두였던 경제 민주화를 다시 꺼내 드는 것은 내용이야 어찌 됐든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데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 이라며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세계 어디에도 없고, 실체가 없는 허상임이 드러난 지 오래다”며 쏘아댔다.
그는 또 “우리나라에 경제민주화가 침투하기 시작한 시점이 1980년대 후반이다. 공정거래법을 포함해 많은 법에 경제민주화가 포함되었으며 그 효과는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경제성장률이 계속 하락해 이제는 2%대까지 떨어졌다”며 “경제민주화 정책들은 폐해가 크기 때문에 폐지되곤 한다. 하지만 정치논리에 힘입어 다시 살아나면서 또다시 실패를 반복한다.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았던 출자총액 제한 규제, 중소기업 고유업종과 적합업종 규제 등이 대표적”이라며 비판했다.
이 같은 우려가 정재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자 새누리당 김종석·유민봉·강효상 의원은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미국 경제민주화 실패의 교훈- 트럼프 현상의 뿌리와 한국 경제의 대안’ 세미나를 열고 경제민주화 관련 대야(對野) 공세를 점화했다.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석 의원은 이날 “야당의 일방향적인 재벌 통제만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거둘 수 없다”고 밝혔다. 야당의 경제민주화로는 민생을 해결할 수 없고 그동안 여당이 주장해온 규제완화와 노동개혁 등을 포함한 ‘경제권력 민주화’만이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진짜 경제민주화라고 강조한 것이다 .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