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노력이 화려함 빛낸다
처절한 노력이 화려함 빛낸다
  • 신혜숙 
  • 입력 2007-11-15 13:30
  • 승인 2007.11.15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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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막 뒤에 숨은 배우들의 노력

배우는 주어진 역할에 자신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감정적 표현은 물론 기술적 측면도 갖춰야 한다. 야구선수로 분하려면 야구방망이라도 휘두를 줄 알아야 하고 요리사 역을 맡았다면 폼 나는 칼질 정도는 기본이다. 그래야 연기력을 인정받고 관객들을 몰입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체중변화, 기술연마 등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할과 연기를 위해 무수한 땀과 눈물을 흘린 배우들. 그들의 열정을 살펴본다.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식객>은 최고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요리사 성찬(김강우)과 봉주(임원희)의 대결을 그린다. 허영만 화백의 동명만화가 원작이란 점도 화제였지만 김강우와 임원희의 혹독한 요리수업도 관심을 모았다.

실력 좋은 요리사 역을 맡은 두 배우는 캐스팅 직후부터 강도 높은 요리수업을 받았다. 하루 20개가 넘는 무를 작살내며 화려한 칼질을 익히고 각종 요리의 조리법을 배운 것도 모자라 도축한 소를 부위별로 자르는 소 정형 과정까지 마스터했다.

특히 왼손잡이인 임원희는 “한식 요리사 중엔 왼손잡이가 거의 없다”는 말에 오른손으로 칼질을 배워야하는 어려움까지 겪었다. 손가락을 베이는 아픔과 어깨가 뻐근한 고통을 감내한 이들은 대부분의 요리 장면을 대역 없이 촬영하는 쾌거를 이룩했고 관객들의 호평까지 받고 있다.

김강우와 임원희만이 아니다. 수많은 배우들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 체중변화다. 체중을 감량 혹은 증가시켜 외모에서부터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

이런 체중변화의 최고봉은 단연 설경구다. 175cm에 70kg 초반의 몸무게를 유지하던 설경구는 <역도산>의 ‘역도산’역을 위해 체중을 95kg까지 불렸다. 탄수화물, 튀김 등으로 이뤄진 식단을 하루 대여섯끼씩 먹었고 술도 들이부었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찌운 살을 <공공의 적2> 촬영을 위해 한달 만에 덜어냈다는 점. 극중 검사 ‘강철중’ 역을 맡은 설경구는 날카로운 이미지를 위해 ‘덜 먹고 무조건 뛰는’ 방법으로 살을 뺐고 <그 놈 목소리>에서 아들을 잃은 부정을 표현하기 위해 또 10kg을 감량해 ‘체중변화의 달인’임을 증명했다.

황정민은 연기력뿐 아니라 체중변화에서도 설경구와 막상막하다. <너는 내 운명>의 순박한 시골총각 ‘석중’으로 변신하기 위해 15kg을 찌운 황정민은 촬영 중간 사랑을 잃은 석중의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 12kg을 감량했다. 지독한 프로근성이다.

촉망받는 배우 류덕환도 체중변화엔 일가견이 있다. 50kg 초반이던 류덕환의 몸무게는 <천하장사 마돈나> 준비와 함께 87kg으로 급증했다. 여자가 되고 싶은 뚱뚱한 소년 ‘동구’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류덕환의 ‘몸 불리기’는 필요충분조건이었다. “먹고 또 먹어서 토하기까지 했다”는 류덕환은 촬영 후 금방 살을 빼고 날렵한 모습을 되찾아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유지태도 은근히 고무줄 몸무게다. <올드보이>에서 고난이도 요가신을 선보이며 탄탄한 몸매를 자랑했던 유지태는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촬영을 위해 23kg을 찌웠다. 당시 유지태의 어머니는 아들의 살찐 모습에 눈물까지 흘렸다고.

남자배우만이 아니다.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역을 맡은 김선아는 7kg을 늘려 역할에 자신을 맞췄고 1996년 영화 <코르셋>에 출연한 이혜은은 자기 몸에 16kg의 살을 더하며 연기열정을 불살랐다.


특수분장과 삭발도 OK!

노력으로 안 되겠다 싶을 정도의 몸무게 변화는 특수분장의 도움으로 해결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

전신성형을 통해 뚱녀가 미녀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에서 김아중은 100kg에 육박하는 몸매를 선보여야했다. 실제 체중변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제작진은 할리우드 특수분장 팀을 초빙해 김아중의 몸에 50kg 상당의 라텍스를 붙였다. <칼잡이 오수정>의 오지호 역시 특수분장의 힘으로 183cm에 80kg의 조각몸매에서 150kg의 거구로 변신했다.

특수분장이 체중감량이나 증가보다 쉽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분장을 할 때마다 4~5시간 옴짝달싹 못한 채 의자에 앉아 있어야하고 라텍스를 제거하는 데만도 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김아중의 경우 한 여름에 촬영이 진행돼 찜통더위와도 싸워야 했다. 다행히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김아중은 <미녀는 괴로워>로 안티를 잠재우고 스타덤에 올랐으며 전 여자친구의 자살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른 오지호 역시 7개월 만에 안방극장에 무사 착륙했다.

삭발도 역할을 위해 배우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특히 여성에게 삭발은 엄청난 결단이 없으면 안 되는 일임에도 몇몇 여배우들은 작품을 위해 아낌없이 머리카락을 밀었다.

19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강수연이 시작이었다. 이후 CF에서 백혈병 걸린 친구를 위해 삭발하는 역할을 맡은 명세빈과 MBC 드라마 <해바라기>에서 엉뚱한 정신병자로 분한 김정은이 까까머리로 화면을 누벼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2005년엔 영화 <가발>을 위해 채민서가 삭발을 단행했는데 이로 인해 남자친구와 결별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고.

<홀리데이>의 최민수는 악랄한 교도소장 역을 위해 멀쩡한 앞니를 갈고 그 주변에 금테를 둘러, 여배우들의 삭발 못지않은 어려운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각종 기술 섭렵

배우들이 역할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 중 가장 힘든 건 ‘기술연마’다. 액션스쿨에서 각종 액션을 배우는 건 그나마 양호하다. <식객>의 김강우, 임원희처럼 특정 직업에 맞는 기술을 그것도 단시간에 갖추려면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년 남성들이 잃어버린 밴드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에 출연한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도 예외가 아니었다. 각각 기타, 베이스, 드럼을 맡은 이들은 촬영 전 한달 반 동안 악기연주 수업을 받았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도 시간만 나면 악기를 잡았다. 이준익 감독이 “어려운 장면은 촬영과 편집 기술로 커버해주겠다”고 했지만 배우들은 “자존심 상해 싫다”며 손이 부르트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결국 세 배우는 영화 속 모든 연주장면을 직접 소화했고 각종 방송프로그램과 시사회에서도 라이브 실력을 선보이며 실제 밴드 못지않은 사랑을 받았다.

<타짜>에서 전문도박꾼 타짜 역을 맡은 조승우와 유해진, 도박판 설계자 ‘정마담’으로 분한 김혜수의 노력도 눈물겹다. 영화 촬영 전 고스톱도 칠 줄 몰랐던 세 배우는 과거 최고의 타짜로 이름을 날렸던 장병원씨에게 3개월 간 각종 도박기술을 전수받으며 캐릭터의 틀을 닦았다. 촬영 중에도 주머니에 화투를 넣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했다. 조승우와 김혜수는 손에 물집이 잡혔을 정도.

덕분에 “최동훈 감독이 도박 장면은 CG처리해 준다고 했는데 속았다”며 엄살을 떨었던 조승우는 진짜 타짜 못지않은 화려한 손놀림으로 700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개봉을 앞둔 <무방비도시>에서 국제적인 소매치기 조직의 보스 역을 맡은 손예진 역시 영화사로부터 전직 소매치기범을 소개받아 어둠의 기술을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댄서 역을 맡은 배우들의 고통과 노력도 상상을 초월한다. <댄서의 순정>에 출연한 문근영은 프로 댄서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 6개월 간 하루 10시간 이상 춤 연습을 했다. 그 사이 토슈즈 3켤레가 교체됐고 발톱까지 빠졌다. <바람의 전설>에서 댄서 역을 맡은 이성재 역시 하루 8시간 이상 3개월 간 빡빡한 댄스 수업을 받으며 리얼한 연기를 준비했다.

MBC <하얀거탑>과 SBS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의사로 분한 김명민, 이범수는 의사들을 관찰하고 수술실을 참관했다. 영상으로 수술 장면을 반복해서 공부하고 의학용어도 입에 붙도록 달달 외워 급기야 ‘진짜보다 진짜 같은 의사’로 거듭났다.


운동선수 역할 온 몸에 ‘멍’

다양한 역할 중에서 가장 혹독한 기술 연마가 필요한건 운동선수 역할이다. “몸에서 멍이 가시지 않아야 운동선수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다”는 한 배우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영화 <펀치 레이디>에서 폭력적인 이종격투기 선수 남편에게 맞서는 아내 역을 맡은 도지원은 3개월 간 격투기 트레이닝을 받았다. 연습 도중 손 등 뼈 3곳에 금이 갈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지만 덕분에 “역대 여배우 중 최고의 발차기”라는 평을 듣고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실화를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주연배우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 등은 핸드볼 선수가 다 됐다는 후문이다. 촬영 3개월 전부터 하루 7시간 이상 특훈을 받고 실제 선수처럼 합숙훈련까지 한 탓이다. 배우들은 다리가 굵어지고 몸이 성할 날이 없었지만 경기장면을 실감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색즉시공2>에서 수영선수 역을 맡은 송지효는 두 달간 전 국가대표 수영 상비군 선수들과의 연습을 통해 수영 초짜에서 프로로 거듭난 케이스.

하지원의 경우 다양한 선수 역을 맡아 혹독한 훈련과정을 소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색즉시공>의 에어로빅 선수 역을 위해 3개월 간 지옥훈련과 함께 다이어트를 병행했고, <1번가의 기적>에서는 여자 복서 역을 맡아 실제 권투선수와 똑같은 훈련을 받아 리얼한 권투시합 신을 완성했다. 또 SBS 드라마 <황진이> 촬영을 위해서 하루 12시간 이상 각종 한국무용과 거문고를 배우다 탈진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이들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역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그 눈물겨운 노력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연습 도중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고 시퍼런 멍이 들어도 그들의 열정과 움직임은 멈출 줄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싶고 거짓으로 연기하기 싫기 때문이다. 물론 비슷한 노력을 기울여도 흥행성적은 각기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진짜 연기’를 보여주려는 배우들의 노력은 흥행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박수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신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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