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태영호 공사 망명이 증명하듯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이 가속화 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을 탈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처럼 동시다발적인 탈북은 이례적이다.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도 북한 내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심상치 않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듯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공포정치로 체제안정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온 북한의 세습왕조는 점차 그 힘을 잃고 있는 모양새다.
‘자세불량’ ‘졸음’ 때문에 처형당하는 북한 간부들
“불안 속에서도 기득권 잡기 위해 김정은에게 충성”
지난 5월 뉴욕 타임스가 세계 전·현직 독재자 12명의 별명을 퀴즈형식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1위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차지했고 9~11위에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나란히 올랐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별명이다. 뉴욕 타임즈는 김일성을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을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은을 ‘위대한 계승자’라고 표현했다.
요즘 ‘위대한 계승자’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망명이 치명적이었다. 유럽의 여러 북한 대사관 직원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업무를 수행했던 태 공사의 망명은 북한체제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사건이었다.
잦은 숙청·처형
“실세 따로 없다”
김정은은 태 공사 망명 이후 또다시 공포정치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김정은 체제에서 처형당한 고위급 간부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00여 명으로 알려졌다.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권력 상층부까지 지속적인 숙청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이는 김정은 체제의 내부 균열이 가속화하는 조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에는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게 혁명화 교육을 명령하고 김용진 교육 부총리를 처형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 통전부장은 ‘고압적인 태도’ 김 교육 부총리는 ‘자세 불량’ 로 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혁명화 교육은 고위 간부를 지방 농장이나 공장 등으로 보내는 처벌이다.
김 통전부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대남정책 실세다. 그는 우리 정부에서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하고 있는 사람이다.
군부 대남통인 그는 김정은이 후계자 시절인 2009년 대남공작 총책인 정찰총국장을 맡았다. 이후 지난해 12월 사망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후임을 맡아 대남정책을 주도하는 등 김정은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에 대한 혁명화 교육은 결국 북한 수뇌부의 권력변동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김 통전부장의 인사 조치가 북한 내부 권력 간 암투과정에서 나온 결과라고도 말하고 있다. 또 태 공사 가족 망명을 계기로 북한 엘리트 계층의 동요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김 부총리의 처형은 다소 충격적이다. 그는 지난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회의 때 ‘자세가 불량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안전보위부 조사를 받았고, 조사 결과 김 부총리는 ‘반당반혁명분자’ ‘현대판 종파’로 낙인찍혀 지난 7월 총살이 집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에는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이 참가한 훈련일꾼 대회 주석단에서 졸다 적발돼 고사포로 처형당하기도 했다
충성파조차 탈북
“체제 불안 극에 달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오며 ‘세습왕조’로 불리는 북한 체제는 항상 붕괴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김정은 체제로 이어오며 내부 균열은 더 커진 분위기다. 김정은의 지속적인 ‘공포정치’에도 불구하고 엘리트층의 탈북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태 공사를 비롯해 북한의 엘리트층은 체제의 중심을 이루는 뼈대다. ‘백두혈통’ ‘빨치산혈맹’이라 불리는 북한 최고의 충성파들이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체제불안이 극에 달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지속적인 공포정치는 북한 내부의 고위급 간부들에게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탈북과 반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김정은 체제에서 공포정치 외에는 체제 안정을 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결국 김정은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남한을 비롯한 미국, 중국, 일본 등을 대상으로 각종 군사무기를 내세워 평화를 위협하며 내부 체제를 단속하는 방법밖에 없다.
김정은 체제가 완성된 2010년 이후 북한은 2번의 핵실험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까지 쏘아 올렸다. 해외에서는 이를 두고 ‘불꽃놀이’라며 애써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하지만 이해 당사자들은 그냥 웃어 넘길 수만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주요 인사들까지 탈북과 외국 망명이 이어지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면서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북한체제가 불안정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가 얼마나 유지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공포정치에도 북한 내 기득권 세력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김정은에게 충성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의 세습왕조는 부패와 권력다툼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힘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게다가 북한 주민들의 불만도 언젠 가는 터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어 김정은 체제의 운명이 더 단축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