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먹는 하마” vs “여론수렴 통한 민주주의 실천”

정진석 “지구당 부활 정당법 개정 고심…지금 애로사항 많아”
국회 정치발전특위 선거제도개혁소위, 공식의제 상정
[일요서울|송승환 기자] 정당의 지역 하부조직인 지구당 제도가 폐지 12년 만에 부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정치발전특별위원회 산하 선거제도개혁소위는 지난 17일 이런 내용을 담은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의 개정안을 공식 의제로 다루기로 결정했다. 다음달 1일에는 정치학회와 공동으로 공청회를 열어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소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당은 당원의 참여로 운영돼야 하는데, 현실 제도는 이와 너무 맞지 않는다”면서 “지구당이라는 구조가 있을 때 현장에 밀착한 여론 수렴을 통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지구당과 정당후원회 부활 등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과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원외 당협위원장 회의에서 “지금의 선거법·정당법 체제에서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여러가지 애로가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법적으로 당협사무실을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이상한 이름을 대 편법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문제를 명실상부하게 정상화할 방법을 고심하겠다”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달 말 관련법 개정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어서 지난 2004년 이른바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관계법 통과와 함께 도입된 당원협의회 체제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구당 제도를 다시 도입할 경우 가장 큰 변화는 현재의 선거구에 합법적인 지역 정당사무실을 둘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현역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시·군·구 의원 합동사무실’을 운영하고, 원외 당협위원장의 경우 변호사라면 변호사 사무실을 내놓고 사실상 지역 사무실로 사용하는 등 각종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법 위반이 일반화돼 있다.
지금까지는 지구당 부활에 부정적 시각이 팽배해 정치권이 선뜻 법 개정 착수에 나서지 못했으나 거의 모든 당협이 편법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법과 현실의 괴리를 해소하고, 현역의원과 원외 위원장의 기득권 차이로 인한 진입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또 정치자금법이 엄격해지고 사회 분위기가 성숙하면서 과거와 같은 ‘돈 정치’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지구당을 부활해도 큰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전국 253개 지역선거구에 지구당 사무실이 생기면 현재보다는 법망의 감시가 어려워지고, 유력 정치인에게는 줄을 대기 위해 또다시 돈이 몰리면서 ‘사당화’(私黨化)의 빌미를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지구당의 수입·지출 회계보고를 의무화하고, 이를 인터넷에 실시간 공개하는 내용을 정치관계법에 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 지구당의 후원금 모집은 금지하는 대신 중앙선관위의 관리 감독을 받는 중앙당의 후원금 모금을 허용함으로써 중앙당이 직접 지구당을 지원하는 간접 지원 방식도 거론된다.
이밖에 지구당 위원장은 해당 지역에서 비밀투표 방식으로 경선하고, 지구당 위원장이 총선을 포함한 공직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1년 전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의 신설도 검토 중이다.
지난해 정개특위 공청회
“정당활성화 위해 지구당 부활해야”
한편,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해 6월 4일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한 공청회에서는 지구당 부활이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진술인들은 대체로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주범으로 지목돼 폐지됐던 지구당에 대해선 정당정치 활성화와 현역 의원·정치신인간 공정한 경쟁을 위해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지구당 폐지, 형평성 문제”, “구·시·군당 허용해야”
중앙선관위 윤석근 선거정책실장은 “지구당 허용 당시에는 현역과 비현역의 지역단위 정치활동의 형평성 측면에서의 제도적 불평등은 그리 크지 않았다”며 현직에게 유리하고 정치적 경쟁의 기회균등과 공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현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구·시·군당 허용’을 제안했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는 “문제가 있다고 해도 지구당 폐지는 잘못이며 운영 방식을 개선하도록 하면 된다”며 “현역 의원들이 의원 사무실을 두고 상시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구당 폐지는 정치적 경쟁자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대 임성학 교수도 “지구당이 폐지돼 정치자금의 수요는 줄어들었지만, 정당정치의 뿌리가 사라졌고 유권자의 정치인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 민의 수렴과 전달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한신대 조성대 교수는 “현재 폐지돼 임의기구로 존재하는 지구당을 부활시켜 당원을 확충해 부족한 정당 재원을 당비를 통해 보충하고 지역정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인태 의원은 “‘돈 먹는 하마’처럼 여겨졌던 지구당이 사라진 뒤 총선이 깨끗이 치러졌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법과 제도가 현실화돼야 한다”며 지구당 부활을 주장했고, 같은당 김상희 의원도 “지구당의 부활로 정당정치가 발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가세했다. 다만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은 “일반 국민의 정치불신 등을 감안할 때 예전처럼 돌아가는 데 대한 비판적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백재현 의원은 “10년 전에 만든 이 법이 고칠 때 의미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지구당을 부활하기보다 지금의 시·도당이 당비를 받아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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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기자 songwi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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