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26일 새벽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한 강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부회장의 시신은 이날 오전 7시 11분경 서종면 문호리의 한 호텔 뒤 야산 산책로에서 발견됐다. 이 부회장은 산책로에 심겨 있는 가로수에 넥타이와 스카프를 연결해 목을 맸지만, 넥타이가 끊어지면서 바닥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을 지나던 마을 주민이 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사체에서 롯데그룹 부회장의 명함과 신분증을 확인, 지문을 채취해 신원 파악에 나섰고 이 부회장임을 확인했다.
롯데그룹은 패닉에 빠졌다. 이날 오전 이 부회장 자살에 대한 사실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당시 확인을 미처 못한 롯데그룹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사실을 확인한 롯데그룹은 “롯데그룹은 평생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롯데의 기틀을 마련하신 이인원 부회장님이 고인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황각규(61)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소진세(66)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총괄사장)과 함께 신 회장의 최측근 3인방으로 꼽힌다. 이들 중 황 사장은 전날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날 오전 9시 30분 황 사장에 이어 이 부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이 같은 혐의에 대해 집중 추궁하고, 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도 추궁할 예정이었다.
검찰과 재계는 이 부회장이 검찰 출석도 한 적이 없는 상태인 데다, 자신이 구속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검찰은 상기(上記)의 혐의와 롯데건설 비자금 300억 원 조성 등의 과정에 이 부회장이 어느 정도 관여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날 검찰에 출석할 것을 통보했었다. 지난 두 달여간 수사를 진행하는 동안 이 부회장의 개인적 비리가 포착되지 않아 순수하게 롯데그룹 2인자로서 불법 행위에 얼마나 가담했는지를 조사하려던 것이었다.
검찰은 그룹차원에서 이뤄진 모든 범법 행위의 핵심은 신격호 총괄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가 필요해서 소환 통보를 했지만 구속 등의 신병처리 계획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너 일가에 비해 이 부회장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사실은 변호인을 통해 검찰과 소환일정 등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 역시 자신의 혐의를 소명하기 위해 그동안 관련 자료를 검찰에 꾸준히 제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정황만 살펴보면 이 부회장이 수사 관련 압박감만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가정사가 거론된다.
이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기도 양평에는 그의 별장이 있다. 이 부회장은 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아 10년간 그곳에서 병간호를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부인은 종양 제거 수술을 했으며, 수술 후 이 부회장은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혼자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차 안에서는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그는 유서에서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 “롯데그룹 비자금은 없었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본인의 개인사와 검찰 수사가 복잡하게 맞물려서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싶다”면서 “유서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를 자세히 파악하게 되면 왜 그런 안타까운 선택을 했는지도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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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