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을 앞두고 야권 발 정계개편 가능성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진원지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와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다. 특히 두 사람은 지난 13일 극비회동을 가진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또 20대 총선에서 38석을 거두며 대약진을 거둔 국민의당 역시 최근 약세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뒤집기 한판을 시도하고 있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물론 더민주 소속 현직 광역단체장인 박원순 서울시장에게까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야권이 정계개편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현 더민주 vs 국민의당의 분열된 체제로는 차기 대선에서 정권재창출 가능성이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 ‘킹’, ‘킹메이커’ 극비회동에 야권 발 정계개편 솔솔
- ‘소외’된 국민의당, 손학규·정운찬에 고강도 러브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각자 소속 정당 내에서 대세론을 누리고 있다. 다만 대선 본선에서 필승할 것이라는 점에는 여전히 의문의 꼬리표가 붙어 있다. 더구나 두 사람은 지난 대선에서 감정의 앙금만 남긴 상처뿐인 영광의 단일화를 이뤄냈다. 이 때문에 차기 대선에서 두 사람의 후보단일화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야권 발 정계개편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인 김종인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고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야권의 두 정치거물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야권의 차기 전략은 밑바닥부터 흔들린다. 특히 두 사람이 더민주와 국민의당을 벗어나 제3지대에서 대권을 도모할 경우 야당은 물론 반기문 대망론으로 반전을 노리는 여권에까지 엄청난 충격파를 안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때문에 여의도 안팎에서는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정치적으로 양극단에 위치한 친박·친문세력을 제외한 중도층 주도의 제3세력화가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김 극비회동 왜? 무슨 이야기 나눴나
지난 13일 저녁 서울시내 한 호텔. 김종인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고문이 배석자 없이 두 시간 가량 만났다. 이날 회동은 “얼굴이나 보자”는 김 전 대표의 제안에 손 전 고문이 응하면서 성사된 것. 구체적 대화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반주를 곁들인 만찬회동에서는 다양한 정치현안에 대한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야권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대표와 손 전 고문은 이날 회동에서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 시점과 향후 활동, 경제·안보분야의 각종 난맥상, 차기 대선 상황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손 전 고문은 “나라가 걱정이다. 경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어떻게 하면 해결될지 걱정”이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는 이에 “지방에 틀어박혀서 그런 걱정해봐야 소용없다. 빨리 서울로 오시라”며 손 전 고문의 조속한 정계복귀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인 전 대표는 한 라디오에 출연, “손학규 전 고문이 과거 더민주에서 대선 경선하는 과정에 투표방식 때문에 상당히 좀 노여움을 겪었던 것 같다”며 “그러한 제도가 계속해서 존속하는 한 더민주에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런 생각을 하나 봐요”라고 후일담을 전했다.

김종인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고문의 극비회동은 이른바 정치권의 새판짜기 움직임과 맞물려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전 대표는 내년 대선국면에서 이른바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손 전 고문 역시 정계은퇴 선인 이후 은둔생활을 해왔지만 정계복귀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가 본인의 정치브랜드인 경제민주화를 함께 실천할 최적임자로 손 전 고문을 낙점한 게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도 야권 발 정계개편의 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대박을 거뒀지만 총선 이후 당의 진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안철수 사당화 논란,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파문, 박지원 비대위원장의 권력독점 등 크고작은 내홍이 적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로는 현 단계로는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실상 호남에 국한된 당의 지지세를 확장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국민의당은 최근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의 외연을 확장시켜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새누리당을 친박당, 더민주를 친문당으로 비판하면서 정치권 외곽에서 정중동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유력인사들에게 잇단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 손학규 전 상임고문, 정운찬 국무총리에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도 영입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는 안철수 전 대표 한 사람만으로는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을 반영한 것.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총대를 멨다. 박 위원장은 당 대표직 양보를 거론하며 손학규 전 고문과 정운찬 전 총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박 위원장은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나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당에 들어오면 내가 맡고 있는 비대위원장 자리부터 양보하겠다”며 “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두 분이 우리 당에 오면 그분들이 비대위원장이나 당 대표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분들이 당에 들어와 대선 경선 틀과 룰을 직접 만들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특히 더민주 현역단체장인 박원순 시장을 만나서도 국민의당 대선후보 경선 참여를 제안했을 정도다.
국민의당이 영입에 가장 공을 들이는 인물은 손학규 전 고문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21일 고 박형규 목사의 빈소에서 상주 역할을 자처한 손 전 고문을 찾아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한 때”라며 러브콜을 보냈다. 다만 국민의당 일각에서는 다른 주장도 나온다. 손학규, 정운찬 등 유력 정치인들의 합류가 쉽지 않은 만큼 아예 기득권을 포기하고 제3지대로 나가서 재창당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손학규, 제3지대 ‘저녁이 있는 삶’ 화두로
손학규 전 고문은 20대 총선 이후 차기주자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더민주가 123석을 얻으며 제1당으로 약진하고 국민의당이 교섭단체구성 요건의 두 배 가까이 많은 38석을 획득하며 여의도 정치권에 안착했기 때문. 특히 더민주는 문재인 대세론이,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세론이 득세하면서 손 전 고문이 정치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 총선 이후 손 전 고문이 정계개편을 시사하며 새판짜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것 아니냐”는 혹평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저녁이 있는 삶’이 대표 브랜드인 손 전 고문의 주가는 여전히 상승세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양당에서 끊임없는 러브콜이 이어지는 것은 문재인 대세론과 안철수 대세론이 각각 2% 부족하기 때문. 어느 정당이 손 전 고문의 마음을 얻느냐에 따라 차기 대선경쟁에서 한걸음 앞서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손 전 고문의 상품성은 뛰어나다. 오죽하면 새누리당의 8.9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주영 후보도 손학규 영입론을 주장할 정도였다.
전남 강진에서 칩거 중인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는 사실상 초읽기에 접어든 셈이다.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더민주 잔류 △국민의당 입당 △제3지대 활동 등이다. 다만 더민주 잔류나 국민의당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지다. 손 전 고문의 선택은 결국 제3지대에서 독자행보에 나서는 것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이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 선진평화연대 구축에 나섰던 것과 유사한 흐름이다. 내년 대선 도전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손 전 고문의 입장에서는 정치생명을 건 승부수다. 제3지대에서 독자세력을 구축한 뒤 더민주·국민의당 대선후보와 단일화에 나서거나 통합 대선후보 경선을 치르는 게 유일한 길이다.
‘경제민주화’든 김종인 선택지는
야권의 권력지형도에서 김종인 전 대표의 선택도 관심사다. 김 전 대표는 4.13 총선을 전후로 여론의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생의 일등공신인 경제민주화의 전도사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구원투수로 등장했기 때문. 그의 활약은 말그대로 눈부셨다. 야권분열로 새누리당의 180석 대망론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최악의 환경에서 더민주의 구원투수를 맡아 123석이라는 제1당의 위업을 달성한 것.
특히 김 전 대표가 더민주에 합류하면서 친노 강경파가 주도하는 운동권 정당의 이미지도 많이 씻어냈다.
김 전 대표는 더민주 전대를 끝으로 자유인이 됐다. 앞으로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진 것. 김 전 대표는 퇴임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경제민주화를 위한 역할을 맡겠다”고 말했다. 이는 본인의 역할을 더 이상 더민주의 범주로 가두지 않겠다는 것. 7개월 동안 구원투수로 활약하며 당을 반석 위에 올렸지만 당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본인의 전공과목인 경제민주화에 보다 집중하겠다는 것.
이는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서라면 더민주 안팎의 인사들과 두루 만날 수 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더민주 마지막 의원총회장에서도 “당신들의 지적인 만족을 위해 정당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며 정체성 논쟁을 주도한 더민주 강경파를 향해 일침을 가했다.
김 전 대표는 퇴임을 앞두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우에 따라 친박, 친문을 떼어내고 중간지대에서 정계개편이 일어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김 전 대표의 역할론은 야권의 정권교체를 위한 킹메이커다. 김 전 대표는 최근 손 전 고문과의 극비회동 이전에도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남경필 경기지사, 김부겸 더민주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 여야의 잠룡들을 두루 만났다.
다만 김 전 대표가 단순히 킹메이커로만 머물지 않고 직접 선수로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전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활약해온 박용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종인 대표에게는 골잡이의 가능성과 지휘자, 주장 역할의 가능성 모두 열려있다”고 말했다. 더민주 전대 이후 김 전 대표를 행보를 놓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은 가운데 킹메이커가 아닌 킹으로서 직접 나설 수도 있다는 점을 평가한 것이다.
<김희민 언론인>
김희민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