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계검사기구 없는 결산권은 ‘종이 호랑이’
- 결산심사가 행정부 견제 기능의 시작 명심해야
“제가 예결위원만 7번째 하고 있는데 의원들은 예산심의하고 결산심사할 때 정치현안 얘기만 한다”, “국회 70년 됐지만 행태나 의식 정말 문제가 많다. 국회 실정이 어떤지 국민 대표가 모든 행태를 지켜본다면 국민 여러분들은 아마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 것이고 망치로 국회를 깨고 싶을 것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대표경선 캠페인 기간 중에 한 말이다.
시간·전문성 부족 결산무용론 대두
정기국회에서의 내년도 예산심사와 국정감사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결산심사가 부실하게 이루어진다는 정당 대표들의 지적이다. 정기국회 이전까지 결산심사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심사기간이 짧다는 점과 정치권이 국회 결산 심사를 현안 관련 정쟁의 장으로 몰아가면서 ‘결산 무용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방대한 결산서를 비전문가인 의원들이 꼼꼼히 따지기에 역부족이라는 전문성 부족과 물리적 시간 부족이 겹쳐 부실로 흐르고 요식행위에 그치고 만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결산심사에서도 정치현안만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으로 비춰졌다.
국회가 국회법에 결산안의 정부제출일을 5월 31일까지로 하고 국회의 결산심사 완료일을 정기회 개회 전으로 명시한 건 2003년이었다. 그러나 결산안 제출 직후인 6월에는 예산부수법률안이 아닌 법률안 심의를 목적으로 임시회가 열리기 때문에 국회의 본격적인 결산안 심의는 임시회가 종료된 이후에야 시작된다.
7월 초·중순에 임시회가 종료되면 7-8월에 걸쳐 소관 상임위는 결산심사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국정감사 계획 결정, 국정감사에 출석시킬 증인 채택 등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결산이 뒷전에 처지게 된다.
전문성도 문제다. 국회의원 한 명당 보좌진 7명이 있지만 공인회계사와 같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채용한 경우는 드물다. 방대한 분량의 결산서를 짧은 기간에 읽고 문제점을 지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국회는 기관차원의 입법지원기구로 예산정책처를 두고 있다. 예산처는 ‘회계연도 결산 국회 시정요구 사항에 대한 정부조치 결과 분석'과 같은 보고서를 발간하지만 인력의 한계로 방대한 예산결산안 속에 숨은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드러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국회의 사정이 이러다 보니 정부의 대응도 느슨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다. 예산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회가 결산심사 과정에서 제기한 총 1,812건의 시정요구 중 188건(10.3%)에 대해 정부가 조치를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전체 시정요구 가운데 200건(11%)은 지난 3년 사이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이었고, 이 중 62건은 3년 연속 시정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시정요구가 이뤄지는 이유는 정부가 기존 시정요구에 대해 조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거나 조치가 미흡했다는 얘기다. 시정요구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가는 것도 문제다. 작년 결산에서의 시정요구가 1,812건이었는데 정부는 시정요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시정요구 해마다 늘고, 조치는 갈수록 부실

영국이나 미국의 의회는, 각각 산하기구인 회계검사국(NAO : National Audit Office)과 회계검사원(GAO :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을 통해 재정집행과정에서 상시적인 회계검사를 수행하여 의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경우 결산위원회는 회기 중 매주 2일 정례회의를 개최하며 수시로 NAO로부터 감사보고서를 제출받음으로써 상시적으로 예산 집행에 대한 회계검사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 고려할 때 우리 국회도 회계검사 및 결산권 수행방식을 현재의 ‘사후적 결산심사 체제’에서 ‘의회 소속의 회계감사기구를 통한 상시적이고 동시적인 회계검사 체제’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아울러 결산 심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결산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할 필요성이 있다. 예산심의와 결산심의 기능을 동일 위원회가 수행하는 현체제에서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결산심의에 대해서는 관심을 적게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결산위원회는 야당을 위원장으로 하여 상시적으로 회계검사원의 보고를 통해 강력한 회계검사 및 결산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결산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있다.
끝으로 결산심사 결과 시정요구사항을 지체 없이 처리하여 보고하고, 결산심사에서 시정·주의 요구를 일정 횟수 이상 반복하여 받거나 시정요구사항을 정부가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다음 연도 해당기관의 예산을 삭감하는 등 패널티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수백조 원의 국민세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는 정부의 예산편성권과 국회의 심의·확정권을 통해 결정되고 국회의 결산심사와 국정감사를 통해 집행의 타당성을 검증받게 된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거나 무능해진다. 최근의 행정부처들이 수조, 수십조 단위의 재정사고를 발생시키는 데는 국회의 견제기능 오작동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서두에 두 정당의 대표가 지적한 바와 같이 결산심사가 행정부 견제기능의 시작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복더위에 의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이현출 정치평론가>
일요서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