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별관청문회 최경환·안종범 증인채택 막후
서별관청문회 최경환·안종범 증인채택 막후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6-08-19 19:54
  • 승인 2016.08.19 19:54
  • 호수 1164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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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컨트롤타워…끊이지 않는 존폐 논란

 

▲ <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거시경제정책협의체)가 주목받고 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의 폭로(“대우조선해양 지원은 서별관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로 음지를 지향하던 서별관회의가 양지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며, 그 비밀주의와 폐쇄성에 대한 공격이 거세다.

또한 여·야가 이를 규명하기 위해 합의한 ‘조선·해운업의 부실화 원인·책임 규명을 위한 청문회’와 관련해 증인 채택 문제로 진통을 빚고 있다. 야당은 최경환(전 경제부총리) 의원과 안종범(전 경제수석)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증인으로 부를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새누리당은 “망신 주기 청문회다”라며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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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서별관회의부터 살펴보자. 서별관회의는 청와대와 정부가 주축인 비공개 경제금융회의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이 모여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1997년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 관련 법 개정과 같은 사안의 쟁점을 조율하기 위해 관련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에서 회의를 열었던 것에서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 때는 사실상 정례회의화 됐다.
서별관은 참석자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다. 청와대 안에 있어 도청 걱정 없이 허심탄회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과 총리도 참석해 도시락을 시켜 먹으며 회의를 하기도 했다.

또한 서별관은 청와대 직원들이 근무하는 비서동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곳에 있어 핵심 관계자 이외엔 회의가 열리는지 알기 쉽지 않다.

책임소재 불분명한 회의

그러나 법적 근거가 없는 비공식 회의다 보니 속기록도 없고 대통령 기록물로도 남지 않는다. 미국도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재무장관이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회의를 하지만, 내용을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무엇보다 서별관 회의에서 내려진 비공식적 결정에 대해서는 책임소재를 물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때문에 ‘밀실회의’라고 지적받는다.

서별관회의는 2002년 10월 국회 대북송금 청문회에서 당시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이 대북자금 지원문제를 비밀리에 논의했던 곳이라고 밝히면서 실체가 알려졌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이 회의에서 대우자동차,제일은행,하이닉스반도체 등 처리방향을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무회의의 주요 안건은 서별관회의에서 미리 조율됐다고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부동산 대책, 신용불량자 문제 등이 이곳에서 협의됐다. 노무현 정부의 당·정·청 핵심 인사 11명이 서별관에 모여 야당과의 연정, 개헌 문제 등 ‘정치적 극비 사항’을 다루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때 서별관회의 참석 멤버들은 매주 화요일 이곳에서 현안을 논의했다. 금융위기 대처 방안, 부동산 정책 등 주요 경제 현안들이 회의 테이블에 올랐다.
20년 가까이 한국 경제 방향타를 결정하는 역할을 했음에도 서별관회의는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있다. 개최 사실 자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렇듯 막중한 권한을 가지면서도 철저한 비밀주의로 일관한 서별관회의에는 항상 ‘관치의 온상’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임명직 공무원 몇 명이 나라 경제 앞날이나 기업의 운명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뒤, 그 뒷감당 없이 밀실 속으로 숨어 버리는 행태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주요 현안마다 서별관회의에서 논의하고 비공개로 하면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은 무용지물이 된다”고 지적했다. 경제관계 장관회의 등 공식적인 정부 협의체가 있는데도 비공식적으로 서별관 회의를 하면 경제정책 컨트롤 타워를 두고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관계자는 “정부 쪽에서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구조다. 이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회의 참석자들은 서별관회의가 협의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정책 ‘결정’이 아닌 ‘협의’를 위한 회의라는 것이다.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회의 중에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위해 회의록을 두지 않는다 것. 한 전직 관료는 하이닉스 반도체 구조조정을 예로 들며 항변했다. 긍정적으로 평가 받은 구조조정도 서별관회의에서 논의된 사안이라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 등은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인 서별관회의를 폐지하거나 아예 다른 공개협의체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의사결정이 계속되는 서별관회의를 폐지하고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되는 공식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서별관 회의는 조선과 해운업계의 구조조정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달 8일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의 발언으로 세간의 이목을 단번에 끌었다.

참석자 사안 공개 이례적

홍 전 산업은행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에 대한 산업은행의 지원, 이것은 청와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이 결정한 것이다.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산업은행에 일방적 지시가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이뤄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000억 원 규모의 공적자금 지원이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라는 것이다.

당시 대우조선은 5조 원대 누적 손실을 숨겨왔던 사실이 드러난 상황이었고, 회생 가능성도 불투명했다. 그런데도 서별관회의에서 무슨 자료를 근거로 구제 결정이 내려졌는지 회의록은 물론 어떤 문서나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혹은 청문회가 규명해야 할 핵심 쟁점이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서별관회의에서) 최 전 부총리와 안 수석 등으로부터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 산은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 측 참석자들은 “홍 전 회장과도 충분한 협의가 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렇게 당사자들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진상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가리려면 서별관회의를 주재한 최 전 부총리와 경제정책 전반에 깊숙이 관여한 안 수석의 증언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야권은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의 출석을 요구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정치 공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재위에서는 기재부 장관과 수출입은행장 등이 나오고, 정무위에서는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이 나와서 있는 대로 밝히면 된다”면서 “해당 상임위에서 해당 증인을 불러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야권은 최 의원 등 서별관 회의 ‘핵심 3인방’을 반드시 증언대에 세우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증인 채택 문제를 풀기 위한 기획재정위원회 여야 간사 간 협의도 무산된 상황에서 야권은 이 문제 해결 없이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 처리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도 굽히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 이용호 원내대변인도 “최 의원과 안 수석 등을 불러 당시 상황을 듣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면서 “증인 채택을 거부하는 것은 ‘종이 청문회’를 만들며 국민과 야당을 우습게 아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기동민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이날 현안브리핑에서 “조선해운업 사태의 주범은 서별관회의다. 최경환, 안종범, 홍기택은 부실과 불법을 용인하며 수조 원의 혈세를 투입하는 밀실 결정을 주도했다”며 “이들이 없는 청문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앙꼬 빠진 찐빵 청문회 우려

이처럼 여야가 청문회의 증인 채택을 놓고 실랑이를 하는 가운데 결국 서별관회의 핵심 멤버들이 빠진 채 금융당국과 국책은행 간부들이 타깃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조선·해운업 부실 청문회는 오는 23~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24~25일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다. 청문회 명목은 조선·해운 구조조정에 대해서지만 사실상 부실화된 대우조선 지원 결정을 내린 ‘서별관회의’ 청문회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산업·수출입은행의 자금 지원 결정 때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정책 방향을 조율했기 때문에 ‘서별관회의 청문회’로 불리는 것이다.
조선·해운사들의 주채권은행이자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임원들은 예정된 청문회를 앞두고 막바지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일부 임직원들은 여름휴가도 반납한 채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산은의 경우 이동걸 회장을 비롯해 구조조정 관련 실무자가 증인으로 배석할 것으로 보인다. 서별관회의 참석자였던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의 증인 채택 여부도 거론된다. 수출입은행 역시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물론 구조조정 관련 임원들이 준비태세에 돌입했다.

산은 관계자는 “아직 증인 채택이 정해지지 않았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담 부서는 비상대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국책은행들만 부실 구조조정에 대한 비난을 정면으로 받게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산은과 수은은 부실 구조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직 쇄신안을 발표한 바 있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사실상 서별관회의 주요 멤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정권 고위직이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으면 국책은행 임직원들이 전면에 나서게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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