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조합의 대선 드림팀 출격이 가시권에 접어들고 있다. 20대 총선 이후 불투명한 차기 대선 전망 속에서 울상이던 여권에 희망의 싹이 움튼 것. 사실 20대 총선 참패 이후 여야의 차기 지형은 극과 극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우세 속에서 새누리당 차기 주자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 특히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차기 행보는 총선참패 및 공천파동으로 빛이 바랬다. 오죽하면 현역 광역단체장인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의 조기등판론이 거론될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졌다.

- 영남·호남·충청 엮는 대선 3각 꼭지점
- ‘야권단일화’ 무산 시 ‘어부지리’ 효과도
박근혜, 반기문, 이정현 조합은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는 영남, 충청, 호남 등 한국정치의 주요 3각 지점을 전략적으로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박 대통령의 강력한 정치적 기반인 대구·경북(TK)이 이른바 충청대망론의 상징인 반기문 총장을 차기 대선후보로 밀고 호남 출신의 이정현 대표가 이를 마무리한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을 거둘 경우 세 사람 모두 윈윈이다. 박 대통령은 임기말 안정적인 국정 마무리는 물론 퇴임 이후 안전판을 마련할 수 있다. 반 총장은 유엔 최고직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금의환향하게 된다. 이 대표 역시 독자적인 대중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물론 영·호남과 충청을 잇는 지역결합의 정치공학이 대선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권으로서는 최소한 현재와 같은 차기 대선의 암울한 전망에서 벗어날 계기를 마련한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호남을 주요 기반으로 둔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의 분열이 대선 막판까지 지속된다면 박근혜·반기문·이정현의 환상조합은 차기 대선의 승리 가능성을 더욱 커지게 한다.
반 총장을 내세워 박 대통령이 끌고 이 대표가 밀어주면 여권의 숙원인 정권재창출이 장밋빛 환상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여권 안팎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충청, 역대 대선 캐스팅보트 ‘1위’ 반기문
87년 체제 이후 역대 대선에서 충청표심은 늘 캐스팅보트였다. 충청민심을 얻지 않고서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충청권 맹주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경우 본인이 직접 대권을 쟁취하지 못했지만 충청표심을 바탕으로 킹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과거 3당합당과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를 통해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 적잖게 기여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맞붙었던 2002년 대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청 출신의 이회창 후보가 나섰지만 충청 유권자들은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메가톤급 공약을 내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승부의 추를 돌렸다. 다시 말해 충청이 지지하면 대통령 당선의 8부 능선은 넘는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 역시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대전(49.95% vs 49.70%), 충남(56.66% vs 42.79%), 충북(56.22% vs 42.36%)에서 모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를 앞섰다. 더민주 일각에서 반 총장을 여권후보로 상정하고 대항마로 안희정 충남지사를 거론하는 것은 충청의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역대 대선에서 충청권의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반기문 총장은 대선구도상 매우 유리한 출발점에 서 있다. 실제 여야 차기 주자 중 반 총장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압도적이다. 적수가 없다는 편이 어울릴 정도다. 지난 5월 제주포럼 참석 등을 이유로 5박 6일 동안 방한한 것을 제외하고는 국내외에서 별다른 정치적 언행이 없다는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반 총장의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과 권력의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가 지난 5월 방한 당시 김종필 전 총리와 극비리에 회동한 것은 물론 주로 대구·경북(TK) 지역을 둘러봤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차기 대권주자로서 반 총장의 강점은 폭넓은 인지도와 지지율이다. 지난 18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실시해 공개한 8월 차기 주자 가상대결(표본오차 95% 신뢰도 ±3.0%p)에서 반 총장은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반기문·문재인·안철수 3자 대결은 물론 반기문 vs 문재인, 반기문 vs 안철수 양자대결 구도에서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3자 대결에서 반 총장은 7월 대비 2.0%p 오른 40.0%를 기록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0.2%p 소폭 하락한 31.6%, 안철수 전 대표는 2.4%p 하락한 17.2%에 불과했다. 반·문 두 후보 간 격차는 7월(6.2%p) 대비 2.2%p 벌어진 8.4%p, 반·안 두 후보 간 격차는 7월(18.4%p) 대비 4.4%p 벌어진 22.8%p로 나타났다.
양자대결 역시 반 총장의 압승이었다. 반기문·문재인 양자대결에서는 반기문 총장이 지난달 7월 조사 대비 2.7%p 내린 47.0%, 문재인 전 대표는 2.5%p 상승한 40.6%로 나타났다. 반 총장이 문 전 대표를 오차범위 밖인 6.4%p 앞선 것. 반기문·안철수 양자대결에서는 반기문 총장이 2.7%p 내린 46.3%, 안철수 전 대표가 1.8%p 상승한 32.5%로 나타났다. 반 총장이 안 전 대표에 오차범위 밖인 13.8%p 앞서는 것.
반 총장의 유일한 걸림돌은 새누리당이 8.9 전당대회에서 친박이 압승한 것이라는 역설적 분석도 나온다. ‘도로친박당’이라는 새누리당의 이미지 때문에 내년 대선국면에서 외연확장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 아울러 한동안 잠잠했던 새누리당의 계파갈등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경우 새누리당의 분열 가능성도 반 총장이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비박계 대선주자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18일 친박계의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자꾸 국내 정치와 연결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분에 대해서도 어려움을 보태드린다고 생각한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연말연초 대선국면이 본격화되면 비박계 주자들의 반기문 때리기는 더욱 본격화될 수도 있다.
새누리당의 지역적 기반은 영남이다. 호남은 황무지와 다를 바 없다. 이 때문에 역대 대선에서는 사실상 호남을 포기한 채 선거전략을 구사했다. 대선 득표율은 형편 없었다.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흙수저는커녕 무수저로 일컬어지는 이정현 대표가 새누리당의 수장에 올랐기 때문. 이 대표는 “호남 출신인 제가 당 대표가 되면 대선에서 호남 20% 득표를 이끌겠다”고 장담했다.
‘호남 출신 與 대표’ 야권 초긴장 고조
새누리당의 호남 20% 득표가 현실화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다만 호남 정치지형이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요동을 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불가능한 상황도 아니다.
호남 20% 득표가 현실화되면 새누리당은 호남에도 거점을 마련하면서 사실상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이는 과거 지역주의 극복을 명분으로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영남공략을 위해 적극적인 동진전략을 채택한 것과 유사한 대목이다. 이 대표 역시 지역주의 극복과 정권재창출을 명문으로 적극적인 서진전략을 추진할 것은 분명하다.
이정현 체제의 새누리당은 과거 10% 안팎에 불과했던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호남 득표율을 두 배로 수직상승시킬 수 있을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미묘한 변화는 없지 않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호남에 2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전남 순천의 이정현 대표와 전북 전주을의 정운천 의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 돌풍에 밀려 호남에서 3석(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이개호, 전북 익산갑 이춘석, 전북 완주·진안·무주·장수 안호영 의원)밖에 건지지 못한 점과 비교하며 별 차이도 없다.
여권으로서는 황무지 호남에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이 때문에 2012년 대선보다 더 나은 호남 득표율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박 대통령은 문재인 후보가 광주, 전남북에서 90% 안팎의 지지율을 얻은 것과 달리 광주 7.76%, 전남 10.00%, 전북 13.22%에 불과한 저조한 득표율을 얻었다. 20대 총선에서 영남공략에 성공한 야권의 상황을 고려할 때 새누리당 역시 야권의 텃밭인 호남공략에 성공해야 대선승리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정현 체제의 등장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호남 출신 보수정당 대표의 등장에 환영을 보냈던 기조와 확 바뀌었다. 최근에는 견제와 비판으로 돌아섰다. 특히 8.27 전당대회가 진행 중인 더민주의 움직임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추미애 후보는 “이정현 대표는 생물학적인 호남인”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이종걸 후보는 “3자 필승론은 필패로 갈 수밖에 없다”며 야권통합을 강조했다. 김상곤 후보 역시 “새누리당이 호남 당대표 이정현 의원을 뽑고 충청권 대권후보에 영남 텃밭을 모두 모아서 우리를 포위하려고 한다”고 위기감을 나타냈다.
거대 여야 정당이 전당대회 국면을 이어가면서 존재감이 미미해진 국민의당 역시 호남민심 다지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야권통합 논의로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이 대표의 등장으로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기 때문. 호남에서 근거를 잃으면 국민의당은 존립기반 자체가 무너진다. 국민의당이 최근 전국 순회 첫 비대위회의 홀대론이 일고 있는 전북에서 연 것은 물론 각종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朴대통령, ‘레임덕’ 없이 국정동력 유지
역대 모든 대통령은 임기말 극심한 레임덕을 겪었다. 정치 9단으로 불리는 YS나 DJ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기말 레임덕은 5년 단임제 대통령제를 채택한 대한민국에서 거부할 수 없는 통과의례였다. 박 대통령 역시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힘든 구조다. 최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세가 거칠어지는 것 역시 레임덕의 징후로 볼 수 있다.
다만 박근혜·반기문·이정현이라는 드림팀을 바탕으로 차기 대선국면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박근혜·반기문 조합은 97년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 2007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후보처럼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 가능성도 낮다. 반 총장이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지원이 필요하고 박 대통령 역시 퇴임 이후를 고려할 때 새누리당 비박 주자들보다는 반 총장이 더 매력적이다. 실제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무엇보다 박근혜(영남) 반기문(충청) 이정현(호남) 구도는 강력한 지역연합이다. 야권의 입장에서는 문재인, 안철수로 호남이 분열된 채 사실상 포위되는 형국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거 3당합당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더구마 문재인·안철수라는 야권의 유력주자가 후보단일화에 실패할 경우 반 총장은 3자구도에서 어부지리를 누릴 가능성 또한 커지게 된다.
<김희민 언론인>
김희민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