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유니의 자살로 또다시 자살과 우울증이 신년 벽두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끊이지 않는 연예인들의 자살의 이면에는 우울증 또는 약물 중독, 대중예술 활동에 대한 부담감이나 환멸 등이 공통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과 대중들의 악의적 평가 등은 이들의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구체적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연예인들은 밖으로는 ‘인터넷 악플 공포’에 떨고, 안으로는 우울증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2003년 가수로 전향한 유니는 3집 앨범을 통해 복귀하기로 했던 하루 전날 자살해 충격을 주고 있다. 왜 유니는 스물여섯 살의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끊었을까?
어머니 이모씨는 우울증이 원인이 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씨는 기자회견에서 “우울증이 있었다. 이 때문에 약을 복용한 적이 있었지만 쾌활한 모습을 보여서 완치가 된 줄 알았다”면서 “아마 그게 자살 원인이 된 것 같다”고 울먹였다.
유니의 자살사건을 조사한 인천서부경찰서 폭력 4팀의 이병환 수사관도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애정 문제도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족들에 따르면 우울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유니와 친한 한 연예인은 “요즘 유니가 ‘우울하다’는 말을 부쩍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유니는 서울 강남구 반포동에 혼자 살면서 컴백을 준비했고, 외할머니가 사는 인천 아파트에 자주 오갔지만 항상 외로워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2년 만에 컴백하는 유니는 3집 활동을 앞두고 부담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인터넷 악성 댓글이 그녀를 뒤흔들었다. 유니는 과도한 노출 의상과 선정적인 춤, 예전과 달라진 외모 때문에 인신공격성 악플에 시달렸다고 한다.
우울증으로 인한 외로움
그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악플러들에게 직접 당부의 메시지를 남길 정도로 악플에 노이로제 증상을 보였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최근에는 여가수들에게 집중되는 성형에 대한 모욕적 악플과 성적인 악플이 정도를 넘어선 것들이 많아 주변 측근들이 “너무 신경쓰지 마라. 다 관심이 있으니 그런 거 아니냐”고 위안해도 그때뿐이다.
해당 연예인 당사자가 느끼는 정신적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우울증에 빠지거나 대인 기피증을 호소하고 수면제를 복용해야 잠을 잘 수 있는 경우도 빈번하다. 결국 이러한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도 몰고 올 수 있다.
유니 소속사인 아이디플러스의 한 관계자는 “음반까지 다 만들어놓고 이렇게 가니 허무하다. 유니가 불쌍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동안 유니를 괴롭혀온 안티팬들에게 그는 항상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고 밝혀 안티팬이 그의 죽음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음을 암시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유니가 탤런트로 활동하던 시절엔 안티팬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수로 전향한 후 ‘섹시여가수’로 컨셉트를 잡으면서 안티팬이 급증했다. 특히 ‘성형의혹’을 내세운 악플러들이 그를 공격할 때마다 소심한 그가 많이 의기소침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유니는 안티팬들의 공격에 ‘욱’하는 마음을 먹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악플러들의 공격에 따른 좌절감
자살시점에서 3집 컴백을 앞두고 유니 관련 기사와 이에 따른 리플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도 이같은 추측을 가능케 한다.
악플에 시달린 것은 비단 유니뿐만이 아니다. 최근 열애설에 휘말렸던 모 연예인은 “내 이름이 언론과 인터넷에 등장하면, 악플러들이 예전에 있었던 일들까지 끄집어내 인터넷에 악성 댓글을 단다”며 인터뷰조차 꺼렸다.
1월 23일 재혼한 개그우먼 이경실도 “인터넷 실명제를 하면 신고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왜 그렇게 악의적인 글들을 다는지 모르겠다”며 네티즌들의 악플에 안타까워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개그우먼 김형은도 사망 직후 악플러들의 댓글이 이어지며 가족들에게 상처를 안겼고, 네티즌들이 스스로 악플러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인터넷의 익명성과 속보성으로 인해 악플은 루머가 되고, 루머는 마치 사실처럼 철저하게 위장돼 온 국민에게 전달되는 것이 더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보다 성숙한 인터넷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좀 더 강력한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면 악플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아무리 익명성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연예인도 인간이니 기본적인 인권은 침해하지 말아야한다”고 밝혔다.
해외서도 비슷한 사례
국내외 연예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우울증으로 부심하다 자살한 이들의 사례가 적지 않다.
먼저 지난 2005년 2월에는 배우 이은주가 우울증에 시달리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세간에는 유작이 된 영화 ‘주홍글씨’에서의 노출 연기에 대한 부담감이 자살의 배경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96년 1월에는 가수 서지원이 2집 녹음을 끝낸 상태에서 ‘자신이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신경안정제를 과다복용해 생을 마감했다. 이어 며칠 후에는 가수 김광석 역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졌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이어져왔다.
지난 2003년에는 홍콩 배우 장궈룽이 우울증과 정신 질환에 시달려오던 끝에 호텔에서 투신해 자살했으며 94년에는 갑작스러운 성공이 가져온 부담감과 대중문화계에 대한 환멸 등을 이기지 못하던 미국 록밴드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자신의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95년에는 독일의 록밴드 헬로윈의 드러머였던 잉고 슈비흐텐베르크가 정신 질환을 앓아오다 달려오는 전철에 뛰어들어 숨졌
으며 87년에는 이집트 출신의 샹송 가수 달리다가 배우자와 연인의 잇단 자살 등 불운에 시달리다 결국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숨을 끊었다. 74년에는 영국의 포크록 가수 닉 드레이크가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아오다 항우울제 과다복용으로 생을 마쳤다.
#악플러 형사 고소 잇달아
가수 유니의 자살 원인 중 하나로 ‘악플’(악성 댓글)이 거론되면서 악플의 폐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의 악플문화는 위험수위를 넘어서 또 하나의 ‘얼굴없는 폭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연예계에서 악성루머나 악플의 고통을 느껴보지 않은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악플의 폐해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악플러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던 연예인들도 이제는 차라리 법에 호소하는 방편을 떠올리고 있다.
가수 하리수가 인터넷 상에 자신을 비방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린 30대 남성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하리수의 소속사 G&F측은 1월 23일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하리수의 개인 미니홈피에 악플을 올린 30대 남성 이모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G&F 측은 “이씨에게 몇 차례 경고를 하고 타이르기도 했지만 악플을 계속 올렸다”면서 “네티즌들의 무분별한 악플 문화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생각에서 고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KBS 2TV ‘미녀들의 수다’의 제작진도 악플러 선별에 나섰다.
`미녀들의 수다`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외국인 여성 출연진들에 대해 ‘조선족이다, 짱X다’고 오도하거나 비하하는 등 악플들로 곤혹스러워 한 바 있다.
‘미녀들의 수다’ 연출을 맡고 있는 이기원 PD는 1월 23일 시청자게시판을 통해 “프로그램에 애정을 가지고 의견을 올리시는 시청자 분들께는 감사하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을 비방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직접 글을 게시했다.
이 PD는 이어 “악플러를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본인과의 연락을 통해 반성의사를 표시하도록 설득할 것이다”며 “효력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로 경찰에 고발의뢰 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PD는 “건전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에서 개인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함으로써 다수의 네티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는 판단아래 이 글을 올리게 됐다”고 경위를 설명한 후 “앞으로도 미녀들의 수다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건전한 의견과 비평에는 귀기울이겠다”고 당부했다.
이정민 com42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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