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호남 민심 놓고 여야 쟁탈전, 왕관은 누가
[외고] 호남 민심 놓고 여야 쟁탈전, 왕관은 누가
  • 일요서울
  • 입력 2016-08-16 10:35
  • 승인 2016.08.16 10:35
  • 호수 1163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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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권 유력 후보 없는 ‘호남 ‘무주공산’
- 호남 민심 ‘얕은 수’로는 잡을 수 없다

 

 
 
 

새누리당 대표로 호남 출신의 이정현 의원이 선출되었다. 이변은 아니다. 이미 전당대회 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이정현 후보는 이주영, 주호영 등 다른 후보들을 한참 앞섰다. 그러나 무엇보다 TK 출신 대통령 옆에 호남 출신 여당 대표는 그림이 된다. 이미 언론에서 여당은 ‘서진’(西進)하는데 야당은 뭐하느냐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국회와 정치권 요직에 호남 출신들이 넘쳐난다. 정세균 국회의장, 심재철 국회부의장, 박주선 국회부의장,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등이 호남 출신이거나 호남에 연고가 있는 인사들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 후보로 뛰고 있는 광주 출신 김상곤 후보가 시댁이 호남인 추미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다면 또 다시 1, 2당 대표가 모두 호남 출신이라는 뉴스가 도배될 것이다. 그만큼 지금 호남은 ‘핫’하다. 

대선주자들의 호남 행보도 치열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 6일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아 전남 목포에서 있었던 ‘평화의 밤 콘서트’를 찾았으며 이 자리에서 손학규 고문과 조우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역시 호남 순방길에 올라 있다. 전남 하의도에 있는 고 김대중 대통령 생가와 기념관을 방문해 ‘DJ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으며, 동학농민혁명발상지 방문, 염전체험, 소시지 제조체험, 빨래체험 등 다양한 민생현장 탐방을 하면서도 ‘대표 시절 1년 9개월 동안 대통령을 만나기 힘들었다, 대통령을 만든 사람이 난데 왜 비박이냐’ 등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간간이 토로하고 있다.

새누리당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 내 기반이 취약했던 손학규 전 대표는 이보다 오래 전 호남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2년여간의 기나긴 칩거생활을 전남 강진에서 시작하면서 호남의 흙을 밟았다.  

도대체 왜 지금 호남이 정치의 한 복판에 있는 걸까. 빨갱이라 손가락질 받았고 독재정권에서 수십 년을 탄압받았던 DJ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호남은 ‘한’의 땅이었다. 그러나 5.18 민주항쟁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통해 호남인들의 정치 의식은 변화되었고, IMF 국가적 위기 속에서 걸출한 인물인 DJ가 구상하고 다듬었던 경제, 복지, 외교안보 정책들이 국정의 초석으로 놓여지면서 호남인들의 자존심은 고양되었다.

또한 노무현이란 시대의 인물을 만들어낸 출발점 역시 광주 경선이었으며, 이인제 대세론을 버리고 PK 출신의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을 자신들의 대통령 후보로 뽑은 호남인들의 ‘전략적 선택’ 또한 크게 박수받았다. 
 

하지만 걸출한 인물들이 사라진 이후 호남에서는 그들을 뛰어넘고자 하는 다음 세대의 리더가 나타나지 않았고 DJ가 씨를 뿌렸던 정책들 역시 발전적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공허함이 현재 호남인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빈구석다.

지난 4월 총선 결과는 호남의 국민의당 선택, PK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약진, TK지역의 진박 퇴조 등으로 요약될 수 있고 이는 우리나라 정치 역사를 얼룩지게 했던 지역주의가 퇴조하는 신호로 분석되었다. 하지만 정말 지역주의는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신지역주의가 부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기 대선 유력 후보들의 출신지를 살펴보면 PK는 문재인, 안철수, 김무성, 박원순 TK는 유승민, 김부겸, 충청은 반기문, 안희정, 경기는 손학규, 남경필 등이 버티고 있다. 결국 유력 후보가 없는 무주공산 지역이 호남이다 보니 구애 경쟁이 치열한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지금처럼 영토 확장의 시각 또는 지역을 분할하여 대선 표를 얻겠다는 정치공학적인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그 결과는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한 선심성 지원책들의 난무로 끝날 것이다. ‘예산 폭탄’ 공약은 대표적 사례이다. 

호남 출신 이정현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되자 박근혜 대통령이 전권으로 전기요금 누진제를 3개월간 완화하겠다고 확정한 것 역시 선심성 지원책이다. 더구나 이런 급작스런 방침은 전 국민의 성토로 이어지고 있다.
 전기요금 체계는 누진제를 어떻게 적용할지도 중요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이상고온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우리 자녀세대들이 살아갈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 전력 수급을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에서 출발해야 하는 문제다.

지금처럼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통해 전기를 공급받을 것인지 아니면 태양열, 풍력, 조력, 지열 등 전력에너지원 자체를 청정 에너지원으로 전환하고 이에 맞게 산업 지원과 요금 체계를 변화시킬 것인지를 독일이나 일본처럼 국민적 논의를 통해 차분하게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결정은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숙고없이 ‘툭’ 던져졌다. 당장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3개월의 인하분’은 ‘껌값에도 못 미친다’며 근본적으로 재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이런 즉흥적 발상은 어쩌면 대통령의 머릿속에 정치공학적 관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항간에 떠도는 TK출신 대통령이 호남 민심을 얻어서 충청 출신의 유엔사무총장을 밀겠다는 글로벌한 아이디어 말이다.

하지만 호남 민심은 ‘얕은 수’로는 잡을 수 없다. 이유는 ‘약무호남 시무국가(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의 정신이 임진왜란 이후 면면히 호남인들을 다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남 민심을 얻고 싶다면 정공법을 택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존엄함과 품격, 그리고 나라의 지속적 부강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손에 들고 호남을 찾아가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냥 표 좀 얻기 위해 덜렁덜렁 돌아다녀봐야 잠시 곁을 내줄지는 몰라도 마음은 절대 주지 않을 것이 호남 민심이기 때문이다.  <이은영 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일요서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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