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새누리당의 ‘8·9 전당대회’가 친박의 압승으로 끝났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아이러니하게도 김무성·주호영 두 비박계 인사였다. ▲ ‘비박 단일화’ 방아쇠 당겨 친박의 ‘전략적 투표’ 명분을 제공한 점 ▲ 박근혜 대통령의 TK의원 면담을 공개적으로 비판, TK 민심을 자극한 점 ▲ 김 전 대표의 잇따른 ‘야권 행보’ ▲ 당 대표 후보로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친박 책임론’만을 고수한 점 등으로 인해 본인들의 발등이 찍힌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인물은 김무성 전 대표다. ‘민생’은 뒤로한 채 나 홀로 ‘대권’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김 전 대표에게 ‘총선 참패’와 ‘비박 참패’ 이중 낙인이 찍히게 됐다는 분석이다.
- 두 개의 심장 金 “주호영 당 대표돼야…” “내가 언제부터 비박이었나?”
- 金 TK(대구·경북) ‘계산 착오’ 이유 살펴보니…
새누리당의 ‘8·9 전대’가 친박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계파 조직력과 무관한 국민여론조사에서조차 비박은 참패했다. 비박계가 늘 외쳐대던 ‘친박 심판’이 아니라 ‘비박 심판’ 나아가 ‘김무성 심판’이 된 모양새다.
후보 단일화까지 이뤄가며 여론에 호소했던 비박계는 이번 전대에서 거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이면에는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김무성 전 대표와 비박계 단일 후보였던 주호영 후보가 있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김무성의 주호영 공개지지, ‘친박 결집’ 역풍 맞아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달 14일 대규모 지지자 모임을 열고 사실상 ‘대선 출정 선언’을 했다. 나아가 선거 직전인 지난 8일에는 “주호영 후보가 당대표 되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며 노골적으로 비박 표 결집에 나섰다. 김 전 대표 스스로 전대 막판 ‘친박-비박 세 대결 국면’을 만든 것이다. 김 전 대표의 이 같은 행보는 친박계가 ‘전략적 투표’ 명분을 얻는 결과를 야기했다는 전언이다.
결국 김 전 대표의 ‘뒷골목 정치’는 오히려 친박의 결속을 가속화하는 역효과를 초래했고 그 결과 비박은 참패했다. 나아가 김 전 대표의 당내 장악력 부족을 확인하는 계기만 됐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 전 대표는 급히 ‘태세 전환’에 들어간 모양새다. 그는 “내가 언제부터 비박이었나?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이편, 저편 가르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을 비박이라고 몰아세운 친박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를 본 한 정치권 관계자는 “참 얼굴이 두꺼운 것 같다”며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말을 바꾼다”고 쏘아댔다.
이어 그는 “주호영을 노골적으로 지지 할 땐 언제고 이제 와 비박이 아니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앞서 전당대회 판세가 친박에 넘어가는 듯하니 급히 ‘전대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승복할 것’이라고 배수진을 친 김 전 대표가 아닌가. 참 대단한 사람”이라며 조소했다.
이처럼 필요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김 전 대표의 모습과는 반대로 이정현 대표는 솔직했다는 평가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 정견발표 자리에서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뒤에서 손가락질할 때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준 박 대통령에게 감사함을 갖고 있다”며 대통령의 복심(腹心) 임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 대표의 이 같은 ‘솔직함’이 김 전 대표의 이중적인 모습에 실망한 국민과 당원의 표심을 얻었다는 평이다.

金, 朱의 ‘TK 민심 자극’ 비박계 ‘자폭’ 초례
당초 TK 민심은 주호영 의원을 향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정현 의원 역시 친박으로 분류되지만, 지역구가 전남 순천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TK와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대표는 전대를 앞두고 ‘계파 청산’을 외치며 친박의 핵심이자 실세로 거론돼 온 최경환 의원과 서청원 의원과도 거리를 뒀다. 이에 김 전 대표는 TK 표심이 주 의원을 향할 것이란 계산 하에 공개적으로 주호영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나아가 비박계 단일화를 주호영으로 조종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번 전대 뚜껑을 열어보니 TK 민심은 이정현 대표를 향했다. TK의 민심과 당심이 이 지역 출신 주호영 후보보다 박근혜의 복심 이정현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 7일 진행된 전당대회 선거인단 투표에서 호남의 투표자 수는 1741명으로 이는 전체의 2.5%에 불과했다. 호남 당원들이 이 대표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고 해도 자력으로 당선될 수 없는 구도였다. TK 민심을 얻은 것이 이 대표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정치권은 TK 민심이 급변한 이유로 김 전 대표와 주 의원의 친박, 나아가 박 대통령을 향한 농도 짙은 발언을 꼽았다. TK 지역은 ‘미우나 고우나 박심(朴心)’이 깔려 있다. 박 대통령을 향해 연일 날을 세우는 김 전 대표와 주호영 의원의 발언이 TK 민심을 이정현으로 돌리는 공(功)(?)을 세웠다는 평가다. 더욱이 김무성 전 대표가 전대 직전 박 대통령의 TK의원 면담을 공개리에 비판한 것은 TK 민심이 주 의원을 완전히 떠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 전 대표와 주 의원의 ‘계산 착오’가 비박의 ‘자폭’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김 전 대표의 진정성 없는 야권 행보
설상가상으로 김무성 전 대표가 ‘민생투어’의 일환으로 진도 팽목항과 5·18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 또한 비박 참패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더민주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무성, 참 안됐다”라는 글을 올렸다. 정 전 의원은 “김무성 ‘주호영 당 대표 되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 공개지지”라는 기사를 링크한 뒤 “김무성, 이래저래 되는 일이 없네요”라고 했다. 이어 그는 “수염 기르고 손빨래하고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고 서민 코스프레 열심히 하는데. 쯧쯧~”이라며 조소하기도 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김 전 대표가 민생투어 도중 손빨래를 하는 사진을 SNS에 올린 것을 두고 ‘서민 코스프레’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고(고)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 앞 마을회관에서 묵으면서 빨래하는 사진이다. ‘나 보통사람이에요.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는 건데 사실 이러면 안 된다”며 “지금 습도가 높아서 저녁에 빨면 아침까지 안 마른다. 틀림없이 널어놨다가 비서진이 비닐봉지에 담아 갔을 것”이라고 비웃었다.
이에 일각에선 김 전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2년 전, 여당 대표였을 당시 세월호에 대한 그의 태도와는 180도 달랐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아들을 잃은 한 유가족이 김 전 대표에게 무릎을 꿇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애원했지만, 차갑게 외면했다. 그랬던 그가 고인과 유가족의 한이 서린 팽목항을 찾아 “가슴이 먹먹하다”며 애도하는 모습은 이 같은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뿐만 아니라 김 전 대표는 전남 여수 수협을 방문해서 “5년 단임 대통령제 실패”를 외치며 대통령의 힘을 빼놓는 개헌 필요성을 주장했다. 전 여당 대표가 임기 19개월이나 남은 대통령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못 박은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의 관계자는 “대통령을 적극 지원해야 하는 여당의 당대표였던 사람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약 2년간 당대표 직을 수행했으니 당이 어찌 잘 돌아갔겠나”며 “현재는 열심히 뛴 의원들이 친박으로 분류돼 계파 갈등의 주범으로 매도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필요에 따라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두 개의 심장’을 지켜본 민심과 당심이 김 전 대표를 외면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주호영 “친박 거세하겠다?”
한편 주호영 의원은 전대 기간 내내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인 발언만을 내놓았다. 희망을 제시해야 하는 정당에서 대안적인 혁신 콘텐츠를 보여주지 못하고, 친박 깎아내리기에 급급했다는 평가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정현 후보는 독보적인 수준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전당대회 TV토론만 보더라도 미래 콘텐츠 측면에서 누가 봐도 이정현 의원이 발군이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야당의 시각으로 경청하고 여당의 책임감으로 풀어내겠다”는 민생 해법은 물론 당청 관계를 여당의 이중적 지위 즉 ‘여권의 일부로서의 지위’와 ‘입법부의 일원으로서의 지위’로 나누어 설명한 것 또한 논리적이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이정현 의원의 참신한 발언이 입만 열면 계파 싸움 문제로 지새우는 TV토론에 답답함을 느낀 국민과 당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전언이다. 더욱이 주 후보의 “당 대표되면 친박 거세하겠다” 등의 농도 짙은 발언 또한 친박 세력 결집에 촉매제가 됐다. ‘분당’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친박을 똘똘 뭉치게 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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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