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선 오로지 승자만이 살아남는다. 승자는 파티분위기이고, 패자는 초상집 모습이다.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MB(이명박 전 서울시장)가 박근혜 전대표를 누르고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박 전대표 캠프 인사일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죽기 살기로 매달렸던 후보검증과 TV연설회, 합동토론회 등을 통해 네거티브 공세로 MB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던 박 전대표 캠프 진영은 더더욱 이번 패배가 쓰라린 아픔이었다. 특히 박 전대표 캠프에서 전략과 전술을 주도한 핵심인물 5인방의 향후 거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무성(조직총괄본부장), 최경환(종합상황실장), 유승민(정책메시지단장), 곽성문(총괄본부장), 이혜훈(대변인)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MB의 공격수 노릇을 톡톡히 한 핵심인사다.
“(패배에) 화가 났다”, “(당분간) 머리를 식히고 싶다”, “휴식이 필요하다.”
지난 8월 20일, 박근혜 전대표 캠프 핵심인사 5인방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결과가 발표되고 난 이후 일주일 동안 모두 서울을 떠나 있었다. 경선 패배에 따른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서다. 곽성문, 이혜훈 의원 등 일부 핵심인사들은 박 전대표 자택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착잡한 심경이 앞섰던 모양이다.
특히 박 전대표 캠프의 조직총괄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의원과 대구시총괄본부장이었던 곽성문 의원 등은 캠프내에서 MB의 저격수로 파상공세를 퍼부었던 인물.
이 때문에 이들 두 인사는 후보경선과정 중에 MB후보를 비방하는 등의 이유로 징계처분을 받기도 했다.
국회를 중심으로 여의도 정가에선 이들 5인방의 향후 거취에 대해 다양한 얘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박근혜 핵심이었다는 점 때문에 한나라당에 머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시각이다. 탈당가능성이 점쳐지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박 전대표 캠프에서 핵심 축이었다”며 “후보경선 기간 동안 MB를 맹공격했던 인물이다. 이들이 MB와 함께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이다”며 탈당가능성을 재차 시사했다. 하지만 5인방의 행보에 대해 막상 의원들과 의원실 보조관들은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쌓여있던 응어리가 쉽게 가시지 않은 탓도 있다.
최경환 의원의 측근은 이에 대해 “지금처럼 한나라당 탈당을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며 “물론 지금은 뭐라 할 말이 없다. 박 전대표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당의 개혁을 꾀하고 있는 MB측의 변화속도에 5인방이 적응할 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MB의 개혁 드라이브에 박 전대표 계열 인사들이 더욱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근혜 판단 기다린다’
하지만 최대 관심은 박근혜 전대표의 향후 동선이다. 그의 행보에 맞춰 이들 5인방의 거취도 결정될 공산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전대표는 한동안 칩거생활을 할 것이다”며 “조만간은 밑그림을 그릴 기미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정치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박 전대표가 한 집안에서 ‘죽느냐 사느냐’하며 네거티브 공방을 벌었던 후보였던 만큼 하루사이에 갑자기 MB를 돕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고 했다.
박 전대표가 적어도 9월 말까지는 조용한 행보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더불어 이들 5인방도 박 전대표의 입장을 듣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탓에 이들은 가급적이면 언론과의 접촉도 삼가하고 있다. 더불어 MB측 행보도 신중히 지켜보겠다는 의중이 읽혀진다.
하지만 5인방은 모두 후보경선결과가 나온 이후 일주일동안 머리를 식힐 겸 여행을 갔다 왔다. 혹은 지역구 관리를 위해 스케줄 일정을 지역구 ‘얼굴 내밀기’에 짜 맞췄다.
박 전대표의 좌장격이었던 김무성 의원(부산 남을)은 지역구인 부산지역을 한 일주동안 돌며 지난 8월 25일 서울로 돌아왔고, 최경환 의원(경북 경산 청도) 역시 지난 8월 23일 지역구에서 한 이틀 동안 휴식을 취하고 곽 의원과 같은 날 서울에 모습을 보였다. 이들 의원들은 휴식도 할 겸 지역구 관리가 급선무였기 때문.
이날 김 의원은 “당분간 쉬고 난 이후에야 밑그림이 그려질 것 같다”고만 했다.
핸드폰도 한동안 꺼놓은 상태였던 곽성문 의원(대구 중남)은 지난 8월 23일 오전 부부동반으로 역시 여행을 다녀왔다. 행선지는 밝히지 않고 떠났다. 곽 의원은 그 전날 밤까지 지역구인 대구를 방문하고 초췌한 얼굴로 상경했다. 곽 의원도 “독자행보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도 여행을 다녀온 건 마찬가지. 가족끼리 제주도 여행을 갔다 왔다고 했다. 더불어 보좌관 2명도 동시에 휴가를 냈다. 이혜훈 의원
(서울 서초갑)은 지난 8월 22일 이후 부부끼리 중국여행을 갔다고 했으나 알고 보니 지방스케줄을 잡았었다. 의원실 보좌관, 비서관까지 모두 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정치권 일각에선 MB를 정조준 한 5인방이 자의반타의반으로 탈당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18대 총선을 의식해서라도 이들 5인방이 탈당하기란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금은 더 우세하다. 이혜훈 의원측은 “‘집안싸움’ 하나로 가족을 버리고, 시베리아 벌판에 앉아있는 우매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며 탈당 가능성을 일축했다.
김현 rogos0119@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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