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인 ‘호갱’은 기업들이 말로만 ‘고객님’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각종 상품과 서비스를 밀어넣은 꼼수를 꼬집는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는 이런 면에서 글로벌 호갱으로 통한다. 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서다. 일요서울은 우리나라를 홀대하는 외국기업들의 실태를 조명해봤다. ① 글로벌 호갱, 누가 만들었나 ② 제2의 폭스바겐 사태 일어날까 ③ 코스트코, 꼼수마케팅 논란 ④ 사회공헌 나 몰라라 외국계기업들 등 총 4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먼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케아에 대해 들여다보자. 이케아는 2014년 12월 국내 시장에 진출할 때부터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TV 장식장, 킹사이즈 침대 등 일부 제품 가격이 미국과 일본과 비교해 최대 2배 차이가 났던 것은 물론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세계 지도를 판매해 공분을 샀다.
그러다가 최근 사망 사고가 난 서랍장의 리콜을 두고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이케아는 지난달 미국과 캐나다에서 말름서랍장 시리즈에 대한 리콜을 결정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이 서랍장이 넘어져 아이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케아는 미국 2900만개, 캐나다 660만개 등에 대해 자발적 리콜 및 판매를 중지했고 중국에서도 리콜을 결정했다.
이는 해당 서랍장 10만개가 팔린 한국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판매 중지는커녕 리콜을 거부한 채 여전히 해당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리콜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비난이 거세지자 뒤늦게 한국에서 환불정책을 펴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고객센터에 항의하는 소비자들에게만 환불이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호갱 등극
해외기업들의 국내 소비자 우롱은 이케아에서 그치지 않는다. 옥시부터 폭스바겐, 쓰리엠(3M) 등 한국 내 외국계 기업의 무책임한 영업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으로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147억달러(한화 약 16조7000억 원) 규모의 합의안을 제출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배출가스가 조작된 2000㏄급 디젤 차량 보유자 47만5000명은 차량 평가액에 따라 1인당 5000달러(570만 원)에서 1만달러(1140만 원)를 받을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엔진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는 ‘살인 가습기 살균제’를 한국에서만 팔았다. 옥시의 가습기살균제는 폐손상증후군(기도 손상 및 호흡 곤란·기침, 급속한 폐손상 등의 증상)을 일으켜 현재까지 239명이 사망하게 했음에도 피해 보상은커녕 실험결과 조작과 사건은폐에 급급해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미국에 본사를 둔 3M은 수년간 우리나라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에 독성물질인 OIT(옥틸이소티아졸론)가 함유된 필터를 공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OIT 향균필터의 판매는 한국에서만 이뤄졌다.
외국기업, 배짱부리는 이유는
외국기업의 국내 소비자 차별의 원인은 뭘까. 우선 국내기업들의 영업행태가 지적된다. 그간 국내기업들이 우리나라와 외국 소비자들을 차별해왔다는 논란이 이어져왔다. 대표적인 게 국내 제과업체와 자동차, 전자회사 등이다.
지난 2014년 ‘MBC 불만제로’를 통해 국내 과자업체들의 내수차별에 대한 내용이 전파를 탔다. 국내·외 제품의 양과 질, 가격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던 이 방송으로 ‘내수차별’이라는 단어가 유통업계에 급속도로 퍼졌다. 이후에도 제과업체는 용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리는 등의 꼼수로 국내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는 제과업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자제품은 물론 자동차에도 차별이 만연했다. 이에 따라 해외 상품을 직접 구매하는 ‘직구족’은 똑똑한 소비자로 지목된다. 한 때 국내 수출품을 다시 수입해오는 ‘역직구’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운송료와 보험료, 세금을 더해도 국내 소비자가격보다 저렴해서다.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국내기업의 TV도 외국이 더 싼 경우가 많다. 1000달러 이상의 해외직구 제품 중 가장 많이 수입되는 제품은 TV다. 해외직구를 통해 국내에 들어오는 TV 10대 중 3대가 삼성 또는 LG제품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삼성과 LG TV 해외직구 건수는 각각 5041건과 5010건으로, 해외직구 TV 전체의 32%를 차지한다.
현대기아차는 그간 부품과 A/S에서 국내외를 차별했다고 지적을 받아 왔다. 업계에 따르면 제네시스의 경우 유럽은 전 차종 5년간 품질보증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에쿠스와 제네시스 프라다 모델만 5년/12만㎞를 보증해주고, 그 이하 모델은 3년/6만㎞만 보증한다. 소나타는 미국의 경우 전 차종 하이브리드 배터리 품질관리 기간이 ‘평생’이지만 한국은 가장 고급 모델인 소나타 하이브리드 차종만 10년/20만㎞간 품질을 보증해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국내기업들의 영업행태가 외국기업들의 국내 소비자 우롱의 빌미를 만들어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외국기업이 한국에 진출하면서 국내기업들의 영업방식을 벤치마킹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를 판매하는 박모(33)씨는 “소비자들이 국내 차량에 대한 실망이 있는 건 사실이다”면서 “내수차별에 대해 모르는 소비자는 없다. 그래도 (국산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세금 등에서 아무래도 외제차보다는 저렴하기 때문에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국산 차량을 구입할 때 신뢰나 만족보다는 가격이 우선시 된다는 얘기다.
또 다른 내수차별의 원인이 기업이 아닌 소비자에게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해외직구를 자주 이용한다는 직장인 오모(32)씨는 “국내 소비자들이 이런 차별을 당하고 있음에도 ‘그래도 국산품을 애용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서 “국내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나라의 보호도 있었지만 애국심 마케팅에 동참해준 소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무조건적인 국산품 이용의 결과가 이렇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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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