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프리미엄 수제버거 ‘쉐이크쉑’, 스마트폰 ‘갤럭시S6’, SUV 차량 ‘모하비’, 맥주집 ‘데블스도어’…. 연관성 없어 보이는 브랜드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오너 후계자들의 이름이 별칭으로 붙은 상품이라는 것. 이들은 ‘허희수 버거’, ‘이재용 폰’, ‘정의선 차’, ‘정용진 펍’ 등으로도 불린다. 별명이 붙은 연유는 이들이 각 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한 데다, 심혈을 기울인 ‘회심의 역작’이라는 배경 때문이다. 이런 별칭이 붙은 브랜드는 기업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마케팅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사업성과에 따라 후계자의 경영능력이 평가된다는 점은 부담이다.
최근 햄버거 브랜드 하나가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까지 뜨겁게 달궜다.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대로에 첫 매장을 오픈한 쉐이크쉑이 그 주인공이다. 이날 폭염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대기행렬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온라인 포털사이트 등에는 실시간 검색 순위는 물론, 시식 후기를 올린 게시글로 도배가 됐다. 오픈 당시 처음 햄버거를 주문한 ‘1호 손님’은 매스컴에 오르기도 했다. 이 햄버거 브랜드가 주목을 받은 건 소비자들 사이에서 ‘맛이 훌륭하다’는 소문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SPC그룹 오너 후계자의 야심작이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쉐이크쉑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희수 전무(마케팅전략실장)가 직접 미국에서 수입해 왔다. 허 전무가 쉐이크쉑을 알게 된 건 지난 2011년이다. 그는 뉴욕 쉐이크쉑 매디슨스퀘어점을 방문했다가 뛰어난 맛과 매장 분위기에 반해 이 사업을 한국에서 해야겠다고 결심, 수소문 끝에 랜디 가루티 쉐이크쉑 최고경영자(CEO)를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무는 쉐이크쉑을 들여오기 위해 수년간 공을 들였다. 당시 국내에 쉐이크쉑을 도입하려는 기업이 30곳이나 돼 경쟁도 심했다. 하지만 허 전무는 물러서지 않았고 4년여간의 협상 끝에 지난해 말 독점사업권을 따냈다. 일부에서 쉐이크쉑 햄버거를 ‘허희수 버거’로 부르는 이유다.
제품 기획부터 출시까지
이처럼 기업의 오너 후계자가 제품 기획부터 시장 출시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오너 이름이 제품의 별칭으로 붙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 삼성전자 갤럭시S시리즈다. 지난해 4월 출시된 갤럭시S6는 당시 ‘이재용 폰’으로 불렸다. 개발단계부터 양산 과정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아이폰6로 고전하던 가운데 삼성전자가 내놓은 비장의 카드였다. 특히 지난 2014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지면서 이 부회장 체제에서 첫 선을 보인 스마트폰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를 상징하기도 했다.
오너 후계자의 별칭이 붙은 브랜드는 이뿐만이 아니다. 기아자동차의 SUV 모하비는 ‘정의선 차’로 불린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05년 기아차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당시 대형 SUV 개발을 목표로 2년5개월 동안 2300억 원의 비용을 투자해 모하비를 개발했다. 그는 개발과 출시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모하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차량 완성 후 정 부회장은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직접 모하비 신차발표회에 나섰고, 정 부회장의 조모 변중석 여사의 7주기 때 은색 모하비를 타고 나타나기도 했다.

롯데칠성음료가 2014년 출시한 클라우드 맥주는 ‘신동빈 맥주’로 불린다. 클라우드는 OB와 하이트로 양분된 국내 맥주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물론 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의지였다. 이에 유통 맞수인 신세계그룹도 맥주시장 공략에 나섰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 2014년 ‘데블스도어’라는 이름으로 수제맥주사업을 주도했다. 정 부회장은 직접 수제맥주 전문점의 아이디어를 내고 조선호텔 출신 식음료 전문가들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또 직접 이태원과 강남 맥주전문점들을 방문해 시장성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 상반기에는 부산 센텀시티몰에 2호점도 냈다. 데블스도어는 ‘정용진 펍’으로 통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동전의 양면
이런 오너 후계자들의 별명이 붙은 브랜드에 대해 해당 기업과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먼저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핵심제품이 오너 후계자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면 소비자들로부터 인지도를 올릴 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오너 입장에서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제품이 좋은 반응을 거둘 경우 오너 후계자의 이미지 개선은 물론 경영능력을 검증받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자칫 제품이 실패하면 실패의 이미지가 오너 후계자에게도 옮겨갈 수 있다. 또 시장에서 기대만큼 반응을 얻지 못하면 오너의 이미지와 자존심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없는 신제품이 오너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마냥 반길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기업이 먼저 나서 오너 후계자의 이름으로 제품을 홍보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오너 후계자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면 기업들이 곤란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재용 폰’은 둘 다 겪었다. 갤럭시S6가 국내외 언론 등에 큰 관심과 기대를 받자 이재용 폰으로 불렸다. 삼성전자 측은 이후 판매량이 시원치 않자 이재용 폰으로 불리기를 극구 사양했다. 나중에는 ‘신종균(삼성전자 사장) 폰’으로 둔갑되기도 했다. 제품 출시 전 이재용 폰으로 제목을 뽑던 언론들도 출시 후 판매 부진이 이어지자 신종균 폰으로 제목을 바꿔 달기 시작했다.
LG전자는 이런 별칭에 민감하게 반응한 케이스다. LG전자가 2012년 옵티머스G를 처음 내놨을 때 ‘구본무 폰’으로 불렸다. 이 제품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삼성과 애플에 주도권을 뺏긴 휴대폰사업에 기사회생의 각오로 스마트폰이다. 출시 전만해도 구본무 폰으로 불리는 데 대해 LG그룹 내부에서 민감한 반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옵티머스G가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LG전자 측은 언론 등에 구본무 폰이나 회장님 폰이라는 말을 가급적 사용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옵티머스G는 성공을 거두면서 구본무 폰이라는 용어는 지금도 가끔씩 회자된다. ‘G=구본무’라는 등식도 생겼다. 옵티머스G 시리즈인 G3이 출시됐을 때도 구본무 폰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처럼 신제품의 별칭이 기업에게는 동전의 양면처럼 작용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 이름이 붙은 제품의 성적표가 좋지 않으면 별칭은 사라지거나 다른 이름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면서 “기업은 오너 이름이 붙은 제품이 실패할 경우 그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후속모델에서도 그런 말이 쓰이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shh@ilyoseoul.co.kr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