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대책 마련 부심, 일단은 ‘눈치 보기’ 작전
“접대하는 측이 심하게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김영란법이 아직 시행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에요. 법에 저촉되지 않게 접대할 수 있는 방법을 아예 노골적으로 묻는 기업 홍보팀 관계자들도 있습니다.”
강남에서 고급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E씨는 김영란법이 합헌으로 판결나자 “올 것이 왔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아무리 머리를 써봐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고급 유흥업소, 음식점, 골프업계는 직격탄
김영란법으로 한국사회 접대문화의 ‘메카’로 손꼽히던 ‘룸살롱’ 등 유흥업계가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9월말부터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김영란법으로 술자리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E씨는 “이제 술로 접대하는 관행이 사라질 판이 됐다”며 “앞으로 추이를 지켜는 보겠지만 아무래도 업종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고 속상해했다.
그러면서 E씨는 “다만 카드 대신 현금으로 결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문제는 접대하는 측에서 어떻게 할지가 관건이다”고 전망했다.
유흥업계가 문을 닫을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곳은 주류업계. 그렇지 않아도 산업 규모가 매년 위축되고 출고량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김영란법 합헌 결정으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위스키 업계는 이미 참여정부 당시 시행됐던 접대비 실명제 이후 법인카드 사용 축소 등으로 인해 6년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던 바가 있어 위기감은 더 크다.
E씨는 “우리도 그동안 위스키 판매가 상당했는데 김영란법 여파로 판매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며 “사실 위스키를 대체할 술도 마땅하지 않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외식업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국내 외식업 연간 매출이 4조1500억 원 감소한다. 이에 따라 외식업계는 단가를 낮추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임대료와 인건비, 재료비 등 투입하는 생산비가 높아 섣불리 단가를 낮추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속을 태우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단가를 3만 원 이하로 낮춰보려고 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다른 업종으로 바꾸거나 사업을 아예 접는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영란법 합헌 판결로 아예 문을 닫고 한정식에서 다른 메뉴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또다른 접대문화의 ‘꽃’으로 불리는 골프업계는 ‘초비상’이다. 골프장을 이용하는 주요 고객이 주로 접대용으로 골프를 치고 있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접대골프는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되기 때문. 최근 일부 골프장에서는 벌써부터 부킹 미달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골프장의 경우 한 달 전에는 부킹이 100% 이루어졌었으나 김영란법 합헌 판결 후 20~30% 부킹 여분이 남았다.
현재 그린피 등 골프장 이용비용을 모두 합치면 1인당 최소 15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가 드는데 이는 김영란법이 허용하는 음식 3만 원 이하, 선물 5만 원 이하, 경조사비 10만 원 접대 상한액을 초과하게 된다. 따라서 골프로 접대할 수가 없다. 업계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내장객 수가 3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장 관계자는 “안 그래도 골프장이 너무 많이 생겨 업계가 심각한 불황인데, 여기에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골프장 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일부 골프장들은 현재의 회원제 시스템을 대중제 골프장으로 전환하는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만만하지가 않다. 기존 회원들이 반발할 것이 뻔하기 때문. 또 다른 골프장은 그린피와 회원가를 내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주중과 주말 그린피를 할인하고 시간대별로 나눠 가격을 할인하거나 주말과 공휴일 3부제 운영도 검토 대상이다. 주말 그린피를 10만 원 안팎으로 낮추면 법 테두리 내에서 접대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관망하고 있다.
기업 홍보팀 “사례 지켜본 후 대책 마련할 터”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기업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아직까지 상부로부터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 어떤 기업에서는 홍보팀 자체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 등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유력 기업에 다니는 H씨는 “현재로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위에서 내려온 가이드라인도 전혀 없다”며 “시행 시간은 다가오는데 그저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H씨는 이어 “그러나 큰 줄기는 있는 것 같다”며 ‘눈치 보기’가 그것이라고 귀띔했다. 즉, 먼저 나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로서는 어떤 것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은 법을 지키되 적발되는 사례를 지켜본 후 매뉴얼을 작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H씨는 전망했다.
나름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대기업 홍보팀에 근무하는 L씨는 “시나리오대로 상황 설정을 한 후 거기에 대처하기는 하는데 김영란법의 적용 범위가 너무 광범위한 데다 세부적인 시행령이 정해지지 않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직원이 식사대접을 할 때 내는 3만 원에는 부가세가 포함되어 있는 금액인지가 확실하지 않고, 한 고객에게 점심과 저녁 두 끼를 대접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국내 굴지의 건설사에 다니는 K 차장은 H씨와는 다소 달랐다.
그는 “내부적으로 이미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개할 수는 없지만 법망을 합법적으로 피해갈 수 있는 일종의 편법들도 상당수 매뉴얼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내부적인 시뮬레이션을 마쳤다는 말이다.
K 차장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먼저 이런 편법들을 사용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역시 ‘눈치 보기’를 할 것임을 시사했다.
사내 직원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H씨는 “솔직히 법대로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편법 또는 애매한 방법으로 접대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과연 그대로 할 직원이 얼마나 있겠냐”며 “자신에게 접대 지시가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소들, 편법으로 고객 유치할 수도
예상되는 편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수증 날짜를 조정하거나 여러 업소로 나눠 따로 계산하는 방법이다. 또 회사의 법인카드를 여러 장 가져가 업소 주인이 갖고 있는 여러 사업자 명의별로 나눠 계산하는 방식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업소 주인과의 관계 설정이 급선무다. 아무 주인이나 그렇게 해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 그러나 업소 주인들도 이러한 편법으로 고객 유치를 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고객들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다.
일단 더치페이로 계산한 뒤에 접대하는 측에서 현금 또는 상품권으로 식사비를 돌려주는 편법도 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H씨는 “요즘은 거의 모든 기업들의 돈 흐름이 투명하다. 돈의 출처가 확실하게 기록된다는 말이다. 만약 현금으로 경비를 돌려주려면 비자금을 조성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는 또다른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계열사나 관계사끼리 카드를 빌려주는 이른바 ‘품앗이 결제’도 김영란법을 피해갈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역시 업소의 협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인근 유흥업소나 식당에서 영수증을 나눠 발행한 뒤 사후 정산하면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H씨는 “경찰이 모든 식사자리와 모임을 조사하겠는가. 사실상 현장 적발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결국에는 누가 신고하거나 제보하는 수밖에 없는 데다 위법의 기준을 사법당국이 판단하게 될 텐데, 이 역시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경찰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영란법을 5 번이나 보았는데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동안 논란을 빚었던 기자들의 해외 취재경비의 경우 접대하는 측은 취재 후 기업 광고 및 협찬을 하는 편법을 쓸 것이 예상된다.
H씨는 “이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장 깔끔한 편법”이라고 말했다. 기업 광고 및 협찬은 위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직무 관련성을 밝히기가 애매해서 문제가 될 소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자와 기업 모두 광고 및 협찬이 직무와 관련이 없다고 하면 사법당국으로서도 이 점을 밝혀내기가 매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김영란법 시행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동안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접대문화를 없애고 부패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이 지난 2004년 도입됐다가 부작용만 키운다는 여론 속에 5년 만에 폐지된 접대비 실명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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