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도전이다. 본선은커녕 매번 예선에서 ‘물’먹었다. 계파 정치를 뛰어넘기엔 대중성이 약했다. 그렇게 ‘저평가 우량주’로 불렸다.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얘기다. 그런 그가 또 다시 도전장을 예고했다. 조바심을 억제한 채 강진 토굴에서 와신상담, 때를 기다렸다. 의지는 단단해졌고, 구상은 한결 촘촘해졌다. 선택지는 많지 않다. 잔류냐 탈당이냐, 정공법이냐 기습법이냐를 두고 고민이다. 마지막 정치생명을 걸어야 하는 손 전 고문에게 어느 것 하나 녹록치 않은 문제다.
- ‘통합전도사’ 孫…“더민주 잔류한 채 외연 확장”
- ‘정치 신사’의 변화…‘정공법으로 대결하되 기습으로 승리’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하산 채비가 빨라지고 있다. 정계복귀 선언이 임박했다는 관측이다. 손 전 고문은 지난달 29일 지지자들과의 만남에서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아울러 “여러분께서 저에게 필요한 용기를 주셨다. 그 용기를 국민께 꿈과 희망으로 되돌려 드리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선언만 안 했을 뿐 사실상 정계 복귀라고 입을 모은다.
손 전 고문 핵심 측근들은 하나같이 “9월 중순”이라고 시점을 못 박았다. 추석 전후가 유력할 것이란 전망이다. 8·27전당대회 이후 새 지도부가 구성된 뒤 복귀를 노린다는 분석이다. 손학규계 한 인사는 기자와 통화에서 “전당대회 결과를 보고 난 뒤 판단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9월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정계 복귀의 명분이 약한 것은 여전히 지적되는 부분이다. 손 전 고문 측은 “명분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궁색한 부분이 없지 않다”면서도 “어쨌든 복귀 시점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GO’란 얘기다.
“정치이벤트 마련 사실상 대선출정식”
손 전 고문은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 대개조’(가칭) 출간 시점을 기해 복귀를 공식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10주년 행사 등을 통해 정치 이벤트를 마련할 것으로 전해졌다. 본격적인 대선 출정식이 이뤄지는 셈이다.
재단 측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지금은 아니다. 뭘 해도 가을에 나온다”고 전한 뒤 “지난 2년간 칩거하며 구상했던 계획들을 출판기념회나 재단 10주년 행사를 통해 대중 앞에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지난 7월 10주년을 맞이했지만 특별한 행사를 갖지 않았다. 정계 복귀와 함께 별도의 기념식을 갖는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다만 “아직 손 전 고문 싸인이 없다”며 “현재는 대기상태”라고 말했다.
손 전 고문의 가장 큰 고민은 정계 복귀 후 탈당이냐 잔류냐의 문제다. 당초 제3지대를 통한 야권 재통합 구상 계획은 ‘어렵다’는 자체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무게추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에 놓여 있다는 설명이다.
손 전 고문 측 핵심 인사는 “더민주는 ‘문재인당’이고, 국민의당은 ‘안철수당’ 아니냐”며 “사당화를 깨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번 정면승부를 걸든지 제대로 치고 나오든지 결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孫의 고민 탈당이냐 잔류냐
손 전 고문이 국민의당을 택할 경우 함께 탈당할 유력 인사가 없다는 점도 고민이다. 손 전 고문 측 핵심 관계자는 “탈당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더민주 내 손학규계 인사들이 손 전 고문과 얼마나 함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동반 탈당 인사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찬열 의원(수원시갑·3선) 외에는 특별히 손꼽기 힘들다”며 “그런 부분이 손 전 고문 입장에선 딜레마”라고 말했다. 앞서 또 다른 인사도 기자와 통화에서 “손학규계가 쉽게 손 전 고문을 따라나서진 못할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손 전 고문의 제3지대행도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한 바 있다.
손 전 고문은 통합론자다.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시절 동교동계 민주당과 통합을 이뤄냈고, 2012년 대표 시절에는 민주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진보진영까지 한 틀에 묶어내기 위한 ‘혁신과 통합’ 모임과 통합을 이끌어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기성 정치권에 온전히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당시 통합에 기인한다.
과거 손학규계 한 인사는 기자에게 “손 전 고문이 통합된 야당에서 정치를 하길 바란다”고 했다. 또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 대한 고민이 크다”며 “이를 하나로 묶는 작업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손 전 고문의 정무특보를 지낸 더민주 강훈식 의원도 최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국민의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정권교체를 바라는 분들이 확장성이나 통합의 역할 때문에 손 전 고문을 찾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정계복귀를 하더라도 그런 역할들을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한다”고 밝혔다. 결국 통합을 내세우면서 탈당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더민주 최대 계파인 친노·친문계는 문재인 전 대표 대선주자 굳히기에 돌입한 상태다. 손학규계 인사들이 하나같이 “더민주 내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 기인한다. 그렇다고 당장 국민의당을 택하기도 어렵다. ‘사실상 호남당’만으로 대선을 치르기가 쉽지 않은 데다, ‘안철수당’ 이미지를 깨는 것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 밀려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전 고문이 또 다시 친노에 밀려 탈당할 경우 그에 따른 비판과 실망감이 상당할 것이란 지적이다. 물론 탈당의 명분이 없다는 점에서 대중적 지지를 얻는 것도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손 전 고문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당 잔류 후 외연 확대의 길을 택하는 방법이다.
손학규계 핵심 인사도 기자와 통화에서 “당적을 유지한 채 외연을 확장하고 이벤트를 만들어 가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했다. 그는 “‘문재인당’ 코스로 가고 있어 앞으로도 쉽진 않을 것”이라며 “일단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잔류한들 무슨 득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탈당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뒀다.
손학규계는 내년 대선 경선이 2012년 예비경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자체 분석을 내놓고 있다. 손 전 고문은 당시 당원 투표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었지만 대중적 인기를 앞세운 친노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점에서 탈당은 여전히 열려 있는 카드다. 다만, 싸우다 쓰러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국민적 지지와 동정심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탈당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 측근의 설명이다.
“물러설 데가 없다”는 손 전 고문의 발언은 여러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정공법을 택하겠다는 의지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정공법만으로는 ‘어게인 2012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손 전 고문을 지지하는 한 지지자는 ‘정공법으로 대결하되 기습으로써 승리한다’는 손자병법 병세편을 언급, “정치 신사는 이제 잊으라”고 조언했다.
<정유담 언론인>
정유담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