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김영란법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핵심 조항인 ‘이해충돌방지’조항이 빠졌고 법 적용 대상에 국회의원이 슬그머니 제외됐다는 논란마저 나온다. 여기에 김영란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 기소할 수 있는 유일 집단인 검찰의 권한이 너무 막강해졌다. 이에 여야는 뒤늦게 김영란법 보완 의지를 피력하고 있으나 이는 국회의원이 현재 김영란법의 테두리 밖에 있고, 법안 자체에 흠결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반증하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김영란법이 국회의원에겐 ‘부정청탁 면허증’을, 검찰에겐 ‘칼자루’를 쥐여준 모양새다.
- 이해충돌방지 조항 삭제는 ‘셀프 입법’ 위한 묘수?
- 농어민, 축산업자, 소상공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국회의원이 김영란법에서 빠졌다는 주장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김영란법’ 5조2항3에 명시된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정책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한 제안과 건의는 허용하다’는 조항이 논란의 씨앗이다.
국회사무처는 “부정청탁 금지로 인해 국민대표성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고충민원 전달 창구로서 역할을 하는 데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해명했지만 이를 보는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 개별적 민원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국회사무처의 지역구 민원이나 각종 알선이 의원의 본업이라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유의동 정무위 새누리당 간사는 “고충이 있는 일반 국민을 행정부나 전문가 집단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게 국회의원의 역할인데, 공익적 목적의 민원 전달도 못 하게 된다면 국회의원은 행정기관을 상대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논란의 불씨를 키우기만 할 뿐이었다. 한 정치권 인사는 “국회의원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며 “공익 목적의 제 3자 민원 전달이 꼭 필요하다면 국회의원 개인이 아니라 소관 상임위에 공개적으로 제기하도록 하면 될 문제다”고 비판했다.
김영란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시행령에서 설정한 1회 식사비 3만 원, 선물값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이라는 비현실적인 상한선 잣대로 인해 경제손실이 11조 6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 소속 김선동 의원은 “정부가 제출한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 자료인 245만 8302명 외에도 최소 50만 명이 증가하는데 전 국민이 범죄자가 돼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매년 물가 상승률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존재하는데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일상생활 불편과 거래상 위축 효과 등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뿐만 아니라 농어민, 축산업자, 소상공인들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들은 부정청탁을 할 대상도 없고 금품 수수의 위치에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들이 만드는 상품과 서비스가 부정 금품 수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피해가 예상된다.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림청은 시행령 안이 2003년 만들어진 공무원 행동 강령을 기초로 한 것으로 현실 반영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며 민간에 대한 파급 효과, 내수 경기 침체 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해충돌방지’조항 삭제 위해 엉뚱한 사람 포함시켜
상황이 이러한데 김영란법의 핵심인 ‘이해충돌방지’조항마저 빠지게 됐다. 이해충돌방지 조항은 공직자가 자신과 4촌 이내의 친족과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없도록 직무에서 배제하는 조항이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원안을 제출했을 당시 포함돼 있었지만 지난해 4월 임시국회에서 여야의 합의에 따라 삭제됐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여야가 이때만큼은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초기 김영란법의 핵심은 이해충돌방지법이었다. 국회의원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엉뚱하게 언론인, 사립학교 교사, 유치원 교사까지 넣었다”며 꼬집었다. 부패 고리를 끊기 위한 핵심인 ‘이해충돌방지’조항을 삭제하기 위해 엉뚱한 사람을 포함시켰다. 나아가 입법 과정에선 국회의원이 자신들을 슬그머니 제외하는 ‘셀프 입법’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해충돌방지와 정면으로 어긋나는 셈이다.
결국 정치권은 끊임없는 김영란법 논란에, 제정 취지를 살리기 위한 보완 입법을 할 것으로 입을 맞춘 듯하다. 그러나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면서도 적용 대상에 어떻게든 자신들을 제외하려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국회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국회의원 예외’에 찬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아가 김영란법 대상 범위가 400만 명 정도까지 확대되면서 이해관계자들 본인에게 유리한 내용의 법안들로 중구난방 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법안 자체에 애매한 부분 있어 ‘표적 기소’ ‘봐주기 수사’ 우려 확산
한편 김영란법의 칼자루를 쥐게 된 검찰에서 이를 이용해 ‘표적 기소’, ‘봐주기 수사’의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영란법 처벌 대상 행위나 적용 대상이 광범위한 만큼 수사기관이 정치적 목적으로 김영란법을 악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현행 뇌물죄와 달리 김영란법은 누구에게서 얼마의 금품을 받았는지만 입증하면 처벌이 된다. 수사기관의 법 적용이 쉬워진 셈이다.
게다가 이 법은 제재 대상과 예외 규정 등에서 애매한 부분이 적지 않아 수사기관의 재량권도 상당하다. 설상가상으로 권력기관을 감시해야 할 언론마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되면서 검찰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에 검사 출신으로 새누리당 소속인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적용 대상이 뚜렷하지 않아 수사기관이 하고 싶은 수사만 할 수도 있다”며 “자칫하면 이 나라가 검찰과 경찰 공화국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경준 검사장, 홍만표 변호사 사건 이후 야권에서는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개혁안에 검찰의 김영란법 악용을 방지할 대책도 포함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법을 시행하기도 전에 이처럼 많은 논란을 야기한 법안은 여태껏 없었다. 더욱이 시행도 되기 전에 재개정 논의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는 김영란법이 그만큼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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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