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물의를 빚었던 일부 총수들이 가석방되거나 특별사면을 통해 업무 복귀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해당기업들의 움직임도 발 빠르다.
이미 지난달 29일 재계 총수로는 처음으로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이 가석방되면서 SK는 최 부회장을 맡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또한 김승연 회장의 경우는 이번 사면을 기대하면서 그동안 발목 잡았던 해외사업 재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반대로 소액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혀 구속된 일부 총수의 사면 소식에는 해당 투자자들의 반발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투자자들이 해당기업 총수가 사면되면 시위도 불사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최재원 복귀 시 유정준과 손발 맞출까…에너지사업 성장 주목
경제 살리자고 무리한 사면은 오히려 독…감시 눈빛도 여전해
최 부회장은 친형인 최태원 회장과 함께 SK그룹 계열사에서 펀드 출자한 465억 원을 개인적으로 선물옵션에 투자해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2014년 2월 징역 3년 6개월 형이 확정됐다. 7월 들어 형기의 90% 이상을 채우면서 가석방 요건을 충족했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 입장에서는 이번 가석방에 이어 최 부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에도 포함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며 “최재원 부회장의 가세로 SK그룹은 보다 공격적인 투자와 다양한 경영 전략을 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사면을 받지 못하면 최 부회장은 가석방 이후 2년간 등기이사 등재가 불가능하다.
목숨 건 동료애 발휘될까
최 부회장이 가석방되고 사면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함께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유정준 SKE&S 사장이다.
유 사장과 최 부회장은 2009년 기업인들이 방문을 꺼리는 이라크 출장에 방탄조끼를 입고 다녀오기도 했다. 테러 발생으로 이라크에서 하루 5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위험이 고조됐을 때다.
유 사장은 최 부회장이 2010년 수석부회장에 올라 그룹 부회장단을 이끌 당시 부회장단 산하에 실무조직으로 신설된 글로벌성장(G&G)추진단을 맡아 최 부회장을 수행하기도 했다.
부회장단과 G&G추진단이 구성된 직후인 2011년 초 최 부회장과 유 사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전시회(CES)에 참석해 미래 먹을거리 발굴에 나선 일화도 있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도 한살밖에 나지 않는다. 또 최 부회장은 구속수감되기 전에 SKE&S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다. 때문에 복귀도 SKE&S로 할 때가 가장 자연스럽다는 관측이다.
정·재계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이번 사면 대상으로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광복절 특사’ 1순위로 거론됐으나 막판에 제외됐다. 이 같은 사실은 그의 사면 확률을 더 높게 만들어줬다.
올해는 한화에게도 중요한 해다. 한화 김승연 회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국외투자가 많은 회사의 오너가 해외출장이 제한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뼈아프다.
현행법상 횡령과 배임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을 시, 등기 이사직 수행을 하거나 주요 계약상 지위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배임 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회장은 2014년 2월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된 상황이다.
김 회장의 집행유예 기간은 2019년 2월까지다. 현재 한화그룹은 잇따른 대규모 인수합병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김승연 회장의 복권은 경영정상화에 필요한 동력이다. 김승연 회장은 해외 출장 시에도 법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그룹의 글로벌 사업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김승연 회장의 경우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회장직을 맡고는 있으나, (주)한화를 비롯한 7개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 상황이다. 경영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번 사면 대상자들 모두에게 기대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강덕수 전 STX 회장은 무리한 경영으로 조선업 구조조정의 발단을 제공했다는 이유에서 이번 사면 심사에서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LIG넥스원의 구본상 전 부회장은 2014년 7월 사기로 징역 4년이 확정됐고 10월 29일이면 형기가 만료되지만 현재현 전 동양 회장과 함께 CP(기업어음) 사기 등 개인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혀 죄질이 나쁘기 때문에 사면에 이름을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들이 사면에 포함되다면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들에 대해 사면이 이뤄질 경우 시위도 불사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인다.
무슨 의도로 만들어졌나
한편 국회 의사국이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특별사면 경과 및 절차 등’ 제하의 문건이 유출되면서 사면 대상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의사국 자료에 따르면 주요 특별사면 대상자 예상 명단에 구본상 전 LIG낵스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담철곤 오리온 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현재현 전 동양회장,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 전현직 대기업 총수급 기업인 10명이 거론돼 눈길을 끈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이상득 전 국회의원 등 여야 정치인 4명도 포함됐다. 국회 의사국은 언론에 나온 사면 대상자를 취합해 국회의장에게 보고한 ‘내부 문서’라고 해명했다.
국회의장 측은 “어떤 사람이 거론되느냐 정도를 보고한 것이지 정부 측하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명단을 만들었던 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국회 측이 정치권과 재계 인사 특사를 정부에 부탁하기 위해 만든 문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