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져야 산다!”
“망가져야 산다!”
  • 김민주 
  • 입력 2006-01-24 09:00
  • 승인 2006.01.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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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여자 배우들의 파격적인 변신이 많아졌다. 현재 KBS 드라마 ‘서울 1945’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은 한은정, KBS 수목드라마 ‘황금 사과’의 박솔미, 개봉 한달째 관객 200만명을 가뿐하게 넘으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 ‘작업의 정석’의 손예진,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사랑을 놓치다’의 송윤아와 이휘향, 오는 4월 개봉하는 영화 ‘국경의 남쪽’에서의 조이진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배우들의 공통점은 모두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에서 과감하게 망가지거나 촌스럽게 변하는 역을 맡아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배우들의 이런 노력에 관객과 시청자들은 “연기가 자연스럽다”,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난 것 같다”는 등의 매우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여배우들이 예쁘게 보이길 포기했다!” 최근 들어 영화와 드라마에는 과거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가졌던 여배우들이 망가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면서 연기변신을 시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있다.

세련된 도시미녀들의 ‘억척녀’ 변신

우선, 탤런트 한은정이 지난 7일 첫 방송된 KBS 1TV 대하드라마 ‘서울1945’에서 김해경 역을 맡으면서 연기 변신을 선언했다. 그동안 세련되고 도회적인 당당함을 풍겼던 그녀가‘서울 1945’에서 가난한 억척녀로 시청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머리, 더 이상 예쁜척 하지 않는 진지한 얼굴의 한은정은 확실히 변했다.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한은정은 기존의 ‘원더풀 라이프’ ‘풀하우스’ 등에서 보여줬던 건강한 섹시미와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진 것. 또한 그녀는 극중에서 예쁘게 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메이크업도 직접 한다고 한다. 탤런트 겸 영화배우 송윤아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세련된 도시미인이다.

하지만 최근 영화 ‘사랑을 놓치다’에서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관객들의 이런 기대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구세대적인 답답한 사랑을 보여주는 송윤아. 기존에 그녀가 가졌던 당찬 커리어 우먼 이미지에서 수수하고 소탈한 여인의 짝사랑을 아련하게 그려낸다. 송윤아는 이 역할을 위해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 ‘노메이크업’을 강행했고, 고무줄 치마에 너덜너덜한 티셔츠, 질끈 묵은 머리 등으로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이 영화를 통해서야 거울을 멀리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는 송윤아. 하지만 노메이크업으로 예쁜척 하지 않은 이 영화에서 송윤아는 스태프와 영화를 먼저 본 기자들로부터 어느 때보다 “예쁘다”는 칭찬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방송경력 20년이 넘은 베테랑 탤런트 이휘향 역시 영화 ‘사랑을 놓치다’에서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도도하고 당찬 이미지였던 이휘향은 영화에서 까맣게 탄 얼굴, 뽀글뽀글한 퍼머 머리, 고무줄 치마, 노브라까지 감수하면서 완벽하게 시골 촌부 역을 소화해내 호평을 받았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클래식’, ‘외출’ 등을 통해 청순가련 멜로의 여왕의 대명사였던 손예진의 변신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내숭 100단의 뻔뻔하고 대담한 연애 선수 역을 맡은 손예진. 그녀는 극중 연애 선수 송일국에 맞서 보는 이들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 표정을 만들어 내는데 주저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관능적인 나이트 물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손예진의 노력은 개봉 한달만에 가뿐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230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동원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드라마 ‘올인’ 이후 3년만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박솔미 역시 KBS 2TV 드라마 ‘황금사과’를 통해 기존에 올인 등에서 보여줬던 도회적인 아름다움을 버리고, 40년대 촌스러운 코트와 목도리를 몸에 걸쳤다. 극중 박솔미는 어릴적에 부모를 잃고 동생들과 억척스럽게 인생을 살아가는 시골처녀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3년만에 촌스러운 억척녀로 변신을 시도한 박솔미의 열연과 함께 안정적인 시청률을 보이며, 순항을 예고하고 있다.

맥주 CF 모델과 드라마 ‘유리화’와 영화 ‘태풍태양’ 등에 출연해 당차고 세련된 이미지를 과시했던 탤런트 조이진 역시 순박한 북한처녀 역으로 완벽한 변신을 선언했다. 오는 4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국경의 남쪽’에서 차승원과 함께 주연으로 캐스팅된 조이진은 탈북자 차승원이 첫눈에 반한 첫사랑의 연인이다. 조이진을 캐스팅한 안판석 감독 역시 “신선하고 개성있는 마스크의 조이진이 이 역할에 적격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망가져도 예쁘게 보이는 이유

기존에 세련된 이미지를 가졌던 여배우들이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과 관객들의 반응은 대부분 호의적이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서울 1945’의 시청자 게시판에 한 시청자는 “솔직히 한은정씨가 사극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1회 방송의 연기가 기대 이상이었다”면서 “우려와 달리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한은정씨에게 앞으로도 좋은 연기 부탁한다”는 격려의 글을 남겼다. 드라마 ‘황금사과’의 시청자 게시판에도 ‘경숙’ 역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박솔미에 대한 칭찬이 많다.

한 시청자는 “지금까지 도도한 부잣집 딸로만 보아왔던 박솔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극중 사투리 연기를 위해 외국어 공부하듯 사투리를 공부했다는 억척녀 연기자 박솔미가 ‘경숙’ 역에 제격”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네티즌들 역시 “배우들이 이제야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난 것 같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평소에 돈많은 부잣집 딸로 나오던 여배우들이 순박한 시골처녀로 등장하니까 더욱 친근하다”면서 “또한 예쁜 외모를 포기하니까 그들의 진솔한 연기가 보인다”며 여배우들의 파격적인 변신에 대해 ‘연기 잘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반면, 한 연예관련 전문가는 “지난해 전국을 강타했던 ‘삼순이, 맹순이, 금순이’의 열풍이 여배우들의 변신에 적지 않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내이름 김삼순’에서 통통한 노처녀 삼순이를 표현하기 위해 6kg이나 살을 찌우며 열연했던 김선아는 시청률 50%의 벽을 넘으며 MBC의 히로인이 됐고, 사생활의 적나라한 노출로 연기자로서의 생명까지 위협을 받았던 최진실 역시 ‘장밋빛 인생’의 열연을 통해 예쁜 미시족 연기자에서 진정한 국민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연예 관계자는 “삼순이와 맹순이 열풍 때문인지 최근에는 여배우들이 망가질수록 드라마와 영화가 산다는 루머도 돌고 있다”고 귀띔하면서도 “어쨌든 여배우들이 예쁜 척하지 않고 연기한다는 건 좋은 일”이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민주  kimm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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