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흉기’ 대형버스…졸고, 폰 만지고, 술까지
도로 위 ‘흉기’ 대형버스…졸고, 폰 만지고, 술까지
  • 권녕찬 기자
  • 입력 2016-07-22 21:54
  • 승인 2016.07.22 21:54
  • 호수 1160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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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안드로메다’로?
▲ 뉴시스

운전 중 딴짓하는 버스기사…승객은 ‘아찔’

안전 의식 수준↑…제도적 환경 뒷받침돼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최근 한 대형버스 운전기사가 영동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내 20대 여성 4명이 숨진 가운데 음주, 휴대폰 사용 등으로 적발되는 버스기사들이 늘면서 대형버스 기사들의 안전불감증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형버스 특성상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가 크기 때문에 도로 위의 ‘흉기’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전문가들은 버스운전 기사들의 안전 의식 수준과 함께 운전시간 제한 등 제도적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7일 오후 6시경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로 진입하던 대형버스 한 대가 체증으로 정차해 있던 승용차 5대를 잇달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K5 승용차에 타고 있던 최모(21)씨 등 20대 초반 여성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고등학교 동창생인 이들은 강원도로 여행 갔다 귀가길에 변을 당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졸음운전으로 밝혀졌다. 1차 조사에서 졸음운전을 부인했던 버스기사 방 씨(57)는 최근 조사에서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다”고 말해 졸음운전을 사실상 시인했다.

특히 방 씨는 과거 ‘음주운전 삼진아웃’ 전력까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음주운전 삼진아웃은 음주운전으로 세 번 이상 적발되면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법이다. 방 씨는 2014년 세 번째 음주운전으로 면허취소와 벌금형을 받은 뒤 일용직 노동으로 생활하다가 2년이 지난 올 3월 면허를 재취득해 대형버스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대형버스 사고 치사율 승용차 2배

대형버스는 특성상 단 한 번의 사고로도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킨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차량의 교통사고 치사율은 100건당 3.4명으로 승용차 1.5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았다.

문제는 대형버스 사고 발생 건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2013년 47건이었던 관광버스 사고 발생숫자는 지난해 78건으로 2년 전 대비 66% 수준으로 급증했고, 사상자 숫자 역시 같은 기간 212명에서 362명으로 41% 이상 증가했다. 시내버스도 마찬가지다. 2009년 6000건을 넘어선 이후 2014년 6415건으로 매해 평균 80여 건씩 늘어가고 있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대형버스 사고엔 공통점이 나타난다. 졸음운전, 음주운전, 운전 중 휴대폰 사용 등 운전자의 안전불감증에 따른 과실이 첫 번째로 꼽힌다. 이번 영동고속도로 사고의 경우 졸음운전이 주요 원인이었다. 4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37명을 다치게 했다.

버스기사들의 음주 행위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지난 5월 충북 A초등학교 수학여행 버스를 운전하던 운전기사 1명이 경주의 숙소를 떠나기 전 현지 경찰의 음주측정에 적발됐다. 이 운전기사는 핸들을 잡지 못했지만 만약 운전을 했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2011년 경기지역에서도 학교 버스 기사 A씨가 혈중 알코올농도 0.108%의 만취상태에서 현장 체험학습을 가려다 출발 직전 음주단속에 적발됐다.

운전 중에 딴짓을 하는 버스기사도 있다.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계기판 앞에 휴대폰을 켜놓고 TV를 보는 식이다. 지난 4월 강남과 파주를 오가는 한 대형버스 안에서는 무려 3시간 동안 통화를 한 기사도 있었다. 핸즈프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단속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승객들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수십 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버스기사이기 때문에 휴대전화에 손을 대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협이기 때문이다. 등·하굣길에 버스를 타고 다닌다는 최승욱(18)군은 “가끔씩 기사님들이 휴대폰을 사용할 때가 있는데 이 때마다 아찔한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구조적 문제도 있어

이러한 상황에 대해 버스기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전세 관광버스에 만연한 ‘지입제’ 관행이 바로 그것이다. 지입제란 기사가 차량을 구입해 회사와 계약을 맺고 운행을 하는 시스템으로, 지입업체는 차량할부, 관리비용, 보험료 징수 등의 경영부담이 적어 지입제를 선호한다.

문제는 지입제 기사들의 수입 정도가 얼마나 많이 운행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다 보니 기사들은 늘 수면이 부족하고 피로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하루 최대 18시간 운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위성수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정책부장은 “버스가 업종이 다양하지만 경기도나 강원도 지역의 시내버스는 하루 17~18시간 일하고, 시외버스는 보통 12~14시간, 농어촌도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하루에 14시간에서 18시간 정도 운전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지입업체의 안전점검과 안전교육은 직영업체보다 소홀한 것으로 드러나 승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 따르면 버스 1대 당 안전관련 지출은 직영업체의 경우 8만 원대인데 반해 지입업체는 5만 원대에 불과했다.

과도한 운전시간 제한해야

전문가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외국처럼 운전시간을 제한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 등 EU는 9시간, 호주는 10시간 등 보통 9~10시간 정도로 운전시간을 제한하고 있다”며 “연속 운전시간도 EU, 호주, 미국, 일본 등 4~5시간으로 제한을 둬 초과운전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17~18시간 근무 시 7시간 정도 연속 운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음주운전 삼진아웃’ 처벌 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삼진아웃을 당해도 2년이 지나면 면허 재취득이 가능해 제2의 방 씨가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주요 선진국은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이 엄격하다. 영국의 경우 10년 내 2회 이상 걸리면 음주운전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면허를 영구적으로 취소하고 있다.

무엇보다 운전자의 ‘방어운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충분한 안전거리 확보, 양보운전, 예측운전 등 방어운전을 통해 사고 위험성을 최대한 낮추자는 얘기다. 임재경 연구원은 대형차에 대해서는 되도록 양보하고 적재물이 떨어질 위험이 있는 화물차로부터는 멀리 떨어져서 운행할 것을 당부했다. 또 대형차가 다가올 때는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서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것도 현명한 운전법이라고 밝혔다.

kwoness7738@ilyoseoul.co.kr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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