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새누리당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이 19일 당 대표 경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8·9 전당대회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이에 새누리당 내 강성 친박계 인사들은 서청원 의원 대타로 홍문종 의원을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친박 당권 주자로 나선 이정현·이주영·한선교 의원이 모두 탈계파를 선언한 가운데 믿을 수 있는 건 홍 전 의원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친박계 내부에선 ‘계파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계파색이 짙은 홍 의원은 부담스럽다는 게 중론이다. 오히려 호남에 지지 기반을 둔 이정현 의원이 ‘탈계파’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 “홍문종 계파색 짙어 부담스럽다”
- ‘갈 곳 잃은’ 친박 표 획득이 관건
새누리당 친박계의 두 맏형 최경환 의원과 서청원 의원이 모두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 의원 출마의 종속변수였던 4선(選)의 나경원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새누리당 대표 경선은 거물급이 사라진 신인왕전(戰)이 된 형국이다. 절대 강자가 없는 만큼 계파를 떠나 후보들 간 합종연횡 양상을 띠며 범(汎) 친박계 당권 주자들도 계파 청산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정현 의원은 자신을 친박 핵심 실세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친박이다 진박이다 비박이다 이런 얘기로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다”며 “주권 여당으로서, 여권의 한 축으로서 정말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 힘을 합쳐 두 바퀴 수레처럼 공조체계를 잘 유지해 성공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고 정치를 하는 이유다” 며 계파 청산 의지를 피력했다.
그 일환으로 이 의원은 17일 비박계 당권 주자인 정병국 의원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연극 ‘햄릿’을 함께 관람하며 친박·비박 공동전선 구축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번 당 대표는 화합·통합·상생의 중심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전대가 또 다른 파벌·계파의 진원지가 돼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나아가 “이번 당 대표 경선은 국민·당원이 후보들의 비전을 모르는 깜깜이 경선”이라며 공동 토론회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비박계 김용태 의원은 즉각 수용 의사를 밝혔다. 연이은 친박계 후보와 비박계 후보의 합종연횡은 최근 불거진 녹취록 파문으로 당내 갈등 구도가 극으로 치닫자 자칫 여권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연이은 녹취록 파문에 ‘음모론’ 대두
실제로 새누리당 내에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연이어 친박계 녹취록 파문이 터져 나왔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둔 시점이기에 ‘이정현 KBS 녹취록’,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 사건’ 그리고 ‘김성회 전 의원 녹취록 파문’은 두 계파 간 갈등이 최고점을 찍는 도화선이 됐다.
결국 친박계에선 ‘음모론’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친박계 이우현 의원은 전화통화를 녹음한 김성회 전 의원을 겨냥해 “남자의 세계에서 인간쓰레기같은 행동을 했다. 출당시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태흠 의원 또한 “전당대회 직전에 폭로된 것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며 의혹을 표했다.
더욱이 서청원 의원도 불출마 선언 마지막에 “당내 경선은 당의 화합과 치유의 장이 돼야 한다”며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심는 경선이라면 정권 재창출은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박계 의원들은 마치 미끼를 문 것처럼 연일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두 계파가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사이 국내 경제는 영국의 ‘브렉시트’ 여파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또한 ‘사드 배치’와 관련해 전자파 논란, 지역감정 악화 등 여러모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강성 친박계 내부에선 최경환·서청원 의원의 대타이자 믿을 만한(?) 후보로 계파색이 짙은 홍문종 의원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후보자 등록을 마친 친박계 후보 중 한 사람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지만 강성 친박계에서 이들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않는 탓이다. 홍문종 의원도 당 대표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51대 49 정도 되는 것 같다. 주말 전에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출마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후보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탈계파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계파색 짙은 홍 의원이 강선 친박계의 지지를 등에 업고 출마한다면 또다시 전대는 ‘친박 대 비박’ 계파 전 양상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허수아비 당 대표 앞세운 세도정치 막아야...
더욱이 현시점에서 강성 친박계가 미는 주자가 당 대표에 추대된다면 또다시 허수아비 당 대표를 앞세운 일부 친박계 인사가 주도하는 세도 정치가 판을 치게 될 것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당내 붕당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임기말 여당과의 공조를 통해 국정을 운영해야 할 정부의 동력도 자연히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 세도정치와 붕당정치가 나은 폐단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반면 홍 의원이 출마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그가 출마하더라도 친박계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친박계 후보 모두 단일화와 선을 긋고 ‘완주’ 의사를 피력한 상황에서 기대만큼 성과는 없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갈 곳 잃은’ 친박 표를 누가 얻느냐가 친박계 당권주자들의 명운을 가를 최대 변수가 됐다. 한 친박계 인사는 “이 같은 상황에서 전대에 반드시 강성 친박계 후보가 나서야 하는 건 아니다”며 “온건 친박계를 중심으로 친박계가 수적 우위를 차지하는 만큼 ‘캐스팅 보트’ 역할을 통해 친박계의 당내 영향력을 지켜내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친박 수뇌부는 20대 총선 참패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경환·윤상현 의원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핵심 3인방의 녹취록 파문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친박계 내부에선 ‘결자해지’의 적임자로 이정현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친박계가 잇따른 악재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지만 결국 여당이 할 일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조력하는 것이다.
이에 박 대통령 정권 시절 홍보수석을 지냈으며 탈계파를 피력하고 있는 이 의원이 물망에 오른 것이다.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서 여당과 정부의 메신저 역할을 함과 동시에 계파 청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최초의 호남 출신 당 대표로 일거양득할까
무엇보다 이 의원이 호남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는 것에 정치권은 주목한다. 당초 이 의원의 당권 레이스 최대 약점은 당세가 미미한 호남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호남 지역의 책임당원 숫자를 모두 합해도 대구·경북 지역의 하나의 당협위원회 수준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은 ‘호남 출신’ 타이틀이 최대 강점이 됐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부산 출신으로 당 대표직에 오르며 야당의 불모지인 영남 출신 당 대표로서 지역주의를 타개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새누리당과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통틀어 호남 출신 당대표가 선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집권 여당의 당 대표가 호남에서 나오면 그 정치적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무엇보다 전통적으로 새누리당의 당세(黨勢)가 약한 호남에서 당 대표가 선출되면, 경우에 따라 내년 12월에 치러질 대선 판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정현 의원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새누리당의 가장 큰 문제는 주류, 비주류 또는 친박, 비박 이런 문제다”며 “그런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자신이 있다. 23년 동안 호남에서 출마를 해서 최근에 그 지역주의 벽을 깼다. 아무렴 당내에서 하는 계파 갈등 문제가 이보다 어렵겠는가”며 호남 지역구 재선의 상징성을 내세웠다.
한편 서청원 후보 저지에 주력해온 비박계는 맥이 빠지는 모양새다. 서 의원이 불출마하면서 그간 단일화에 힘써온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비박계의 한 인사는 “친박 내부의 위기감이 작동해 친박 주자에게는 몰표가 나오는 반면,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진 비박계는 오히려 표가 분산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김무성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비박계 수뇌부는 정병국·김용태 의원 지원사격에 나서는 모습이다. 주호영 의원도 여권의지지 기반인 TK(대구·경북) 출신인 데다 지난 총선 때 무소속으로 당선된 점 등을 들어 “영남 지역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상황이 낙관적이진 않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주 의원의 발언을 두고 “여전히 지역주의에 얽매여 있다. 당 내에서 ‘친박 대 비박’, ‘TK 대 PK’ 역학구도를 심화시키는 언사”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당내 계파 갈등과 지역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갈 여당의 당 대표직은 지역과 당을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jh0704@ilyoseoul.co.kr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