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박정민 기자] 새누리당 최경환 ·윤상현 의원에 이어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지난 4. 13총선에 공천 개입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9일 한 매체는 현 전 수석이 정무수석으로 재임 중이던 지난 1월 말 서청원 의원 지역구인 경기 화성갑에 출마를 희망하던 김성회 전 의원에 전화를 걸어 지역구 변경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현 전 수석은 “가서 (서청원) 대표님한테 저한테 얘기했던 것과 똑같이 말씀하시라. ‘대표님 가는 데 안 가겠다’고”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저하고 약속한 건 대통령하고 약속한 것과 똑같은 것 아니냐”고도 했다. 김 전 의원이 “그게 진짜 VIP(대통령) 뜻이면 따르겠다”고 하자 현 전 수석은 “따르시고 ‘정해주시면 다른 지역 갑니다’라고 솔직히 말하라. 길어져 봐야 좋을 것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말씀드릴 때 그렇게 해라. 바로 조치하라. 그렇게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측은 ‘개인적으로 한 말’이라며 선을 그었다. 20일 정연국 대변인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 전 수석 발언은 개인이 한 말로 왜 그렇게 말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며 “본인이 스스로 적극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친박 핵심 멤버인 최경환 ·윤상현 의원도 공천 압박을 한 정황이 녹취를 통해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보다 더 앞서는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청와대 홍보수석 당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 전화를 걸어 세월호 관련 뉴스 보도를 제재한 관련 전화 통화를 김 전 보도국장이 녹취해 뒀다가 지난 6월 말에 터뜨렸다.
개인 간의 대화 내용이나 통화 내용을 필요에 의해 녹음하는 것은 일상 속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치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예민한 사안일 경우에는 법적으로 제재가 될까.
자신이 대화 당사자일 경우, 법적으로 문제없어
법률전문가들은 정치나 사회적 이슈가 되는 예민한 사안이든 아니든 그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정치인 등이 대화내용을 상대방 몰래 녹음하는 행위가 자신이 대화당사자일 경우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하면 누구든지 법적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여기서 타인간의 대화라 하면 대화참가자를 제외한 사람을 일컫는다. 강민구 형사사건 전문변호사는 “대화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대화하는 사람들 전부 혹은 대화자들 중 일방이 모르는 상태에서 대화내용을 녹음하거나 청취한 경우에는 처벌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최근 휴대폰으로 통화 후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은 상태에서, 그 휴대폰을 통해 상대방이 타인과 대화를 하는 내용을 듣고 녹음을 한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하지만 세 명이서 대화하는 도중 한 명이 다른 두 명의 대화내용을 몰래 녹음했다고 해도 대화참가자의 녹음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녹음된 내용물은 위법수집증거가 아니므로 당연히 증거로 사용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녹음 ‧ 녹화하는 방법 다양해져
요즘은 핸드폰에 녹음기능이 있어서 대화하면서 바로 녹음하는 것이 매우 편리해졌다. 따라서 민사나 형사소송을 대비한 증거 수집을 위해 핸드폰 대화내용을 녹음하는 것이 일반화 돼 있다. 이제는 핸드폰 통화의 경우 의례히 상대방이 녹음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예견하게 될 정도다.
뿐만 아니라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도 여러 장치를 통해 상대방 모르게 녹음이나 녹화를 하기도 한다. 보이스펜은 기본이고, 라이터, 넥타이핀, 손가방, 심지어는 안경에 부착된 소형장치를 통해 녹음, 녹화가 가능한 세상이다. 마치 과거 ‘007 스파이영화’ 속에 나오는 비밀장비가 이제는 일반화돼 버린 셈이다.
얼마 전 ‘내부자들’이라는 영화 속에서도 검사가 양주병 뚜껑에 소형 녹음 녹화장치를 설치해 비리를 파헤친 적이 있다. 최근에는 젊은 여자변호사가 나이든 사무장과 사무장의 자동차 안에서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어놓고 강간당했다고 허위고소를 하였다가 차 안에 설치된 블랙박스에 녹음된 음성을 통해 무고사실이 드러난 사례도 있었다.
만약 제3자가 몰래 녹음한 경우 증거로 사용될 수 있나?
위법수집증거의 경우 형사사건에서 증거능력이 배제됨은 당연하다. 그러나 민사소송에서는 공공연히 증거로 인정돼 왔다. 그러나 타인 간의 통신비밀을 침해한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통신비밀보호법 제4조에 의하면, 불법검열에 의하여 취득한 우편물이나 그 내용 및 불법감청에 의하여 지득 또는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재판은 형사는 물론 민사나 행정사건 등에도 적용된다. 통신비밀보호법에서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을 명시화한 것은 타인간의 대화내용을 강력하게 보호하겠다는 의지다.
정치인이 대화내용을 상대방 몰래 녹음하는 것 역시 자신이 대화당사자일 경우 법적인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국민 감정상 비겁하게 보일 수 있다. 여론과 국민들의 신뢰를 먹고 사는 정치인 등의 입장에서는 대화내용을 녹취하고 이를 공개하는 태도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정치적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정민 기자 vitamin@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