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곤충이 범인 색출에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중국에서부터다. 송나라 시대 한 농촌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살해당한 남자의 아내에 따르면 남편에게는 원한 살 만한 사람은 전혀 없고, 다만 남편이 어떤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사건을 수사한 법관은 살인사건 현장에서 쓸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심증은 있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은 뒤 낫을 꺼내보라고 했다. 살인에 사용된 무기가 낫이 틀림없다고 단정했기 때문.
그러자 그 중 한 자루의 낫에 유독 파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록 피는 이미 닦여 없었지만 예민한 후각으로 낫에 남아 있던 혈흔의 냄새를 맡고 파리들이 몰려든 것. 결국 범인은 그 낫의 주인임이 밝혀졌다. 그는 죽은 사람에게 돈을 빌렸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피가 범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고 파리는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결정적인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 사건이 곤충을 이용하여 범인을 잡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최초의 기록이다.
곤충이 증거 제공
곤충은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범죄수사에 도움을 주게 된다. 1849년 프랑스에서 한 미장공이 벽난로를 수리하다가 발견한 어린아이의 시체에서 몇 가지 곤충이 발견됐는데, 쉬파리는 1848년에 애벌레를 시체에 낳았고, 진드기는 1849년에 알을 낳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결국 시체 발견 1년 전인 1848년에 거주했던 집주인이 살인혐의로 체포되었다.
또 1935년 스코틀랜드 경찰은 에딘버러 근처에 있는 강에서 손발이 잘린 두 명의 시체에서 검정파리 유충 3마리를 발견해 분석한 결과 시체가 버려진 날이 12~14일 전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이에 경찰은 2주일 전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한 남성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2005년 미국 시카고에서 남자친구와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던 한 여성이 괴한에게 납치되어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유력한 용의자를 붙잡았으나 그는 범죄 사실을 완강히 부인해 수사는 미궁 속에 빠지는 듯했다. 그러나 용의자의 스키 마스크에서 찾아낸 도꼬마리(국화과의 한해살이 풀) 안에서 자라고 있던 바구미 유충이 유력한 ‘목격자’가 됐다. 발견된 바구미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만 특별히 서식하는 종이었고, 더욱이 중요한 것은 한해살이란 점이었다. 용의자는 결국 한 곤충의 유충 때문에 강간범으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곤충, 노출된 부위에 알 낳아
곤충은 또한 피해자의 사망 시간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사망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시체는 체온 등을 통해서 사망시간을 추정한다. 그러나 오래된 시신의 경우 체온으로 사망시간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곤충들이다.
시체가 부패할 때 냄새를 맡고 날아온 검정파리나 쉬파리는 죽은 몸 속에 알을 낳는다. 이어 갓 태어난 구더기들은 살을 파먹으며 성장한 뒤 빠른 속도로 시체를 해체한다. 이때 구더기의 크기로 사망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사망 시기를 추정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은 눈이 녹은 봄에 발견된 시체의 경우다. 그러나 법곤충학자들은 기상기록을 분석하여 곤충의 사망 시기를 추정한 뒤 피해자의 사망 시기를 밝혀낸다.
곤충은 이 밖에 수사를 할 때 피해자가 어떻게 사망했는지도 밝혀낸다. 위장이나 혈액에서 채취한 독이 미량이라서 확인을 못할 경우, 시체의 입 근처에서 채취한 구더기를 조사해 희생자가 어떤 약을 먹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검정파리는 시체의 상처 부위에 많이 모이는 습성을 갖고 있는데, 만약 가슴과 팔 아래쪽에 검정파리가 모이면 칼을 맞고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범인이 칼로 가슴이나 머리를 공격하면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팔을 들기 때문.
곤충은 또한 얼굴처럼 노출된 부위에 알을 낳는데, 검정파리가 생식기 근처에 알을 낳을 경우 죽기 전에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곤충학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곤충들이 이렇듯 범인 색출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창궐하고 있는 지카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가 있는가 하면 뇌염을 유발하는 모기도 있다. 또 말벌은 날카로운 침으로 독을 주입하는데, 민감한 사람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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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