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검찰과 경찰이 ‘셀프 수사·감찰’ 등을 벌인 데 대해 지탄이 쏟아지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 ‘꼬리 자르기’ 등 폐쇄적 조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검경엔 부실수사 및 부조리한 조직문화 등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검찰은 연이은 무죄 판결과 셀프 수사로 굴욕을 맛봤고 경찰은 성(性)과 관련된 물의를 빚으면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더구나 경찰의 적절치 못한 사후처리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게 했다.
검찰은 지난달 두 번에 걸쳐 검찰 손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사와 수사관들이 사건 청탁과 관련된 뒷돈을 받은 혐의가 잇달아 포착되면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는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 정운호(51)씨 측 브로커 이민희(56)씨 등 2명에게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수사관 김모씨를 지난달 23일 체포했다.
1992년 임용된 김 씨는 현재 서울중앙지검 소속으로, ‘정운호 게이트’ 수사가 검찰 내부 비리로 번지면서 검찰 관계자 중 처음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김 씨의 자택은 물론 서울중앙지검 8층에 있는 김 씨 사무실 책상도 압수수색했다. 10층에서 근무하는 특수1부 수사관들이 두 개 층을 내려가 수색을 벌이는 진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당시 검찰은 김 씨가 2012년쯤 이 씨 및 60억 원대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던 조모(59·여)씨로부터 수천만원씩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조 씨는 2011년 12월 검사장 출신 홍만표(57)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면서 이 씨에게 소개료 1000만 원을 줬던 인물이다. 수사관 김 씨는 그 이전부터 정운호 전 대표, 이 씨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지난 13일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뇌물수수 혐의로 김 씨를 구속기소했다.
공들인 수사, 줄줄이 무죄
검찰의 굴욕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들여 수사한 사건이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판사 현용선)는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민영진(58) 전 KT&G 사장에 대해 모조리 무죄를 선고했다. 민 전 사장이 받고 있던 5개 혐의의 입증이 부족했다는 취지였다.
민 전 사장은 지난 2009∼2012년 협력업체로부터 거래 유지 등 청탁과 함께 1억79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와 2010년 충북 청주 연초제조창 부지를 매각할 때 담당 공무원에게 6억6020만 원의 뇌물을 주도록 지시한 혐의 등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지난 1월 민 전 사장을 구속기소했다. 특수3부장이었던 김석우 부장검사는 올해 검찰 정기인사에서 특수2부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KT&G 비리 의혹 수사를 계속해 민 전 사장 후임자인 백복인(51) 현 사장까지 불구속기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검찰은 법원의 무죄선고에 체면을 구기게 됐다. 법원은 금품을 줬다고 말한 사람들의 진술을 믿을 수 없고 뇌물공여도 민 전 사장과 무관한 부하직원의 독단적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또 일부 금품공여 동기나 금융자료, 뇌물을 주도록 승인한 보고서의 입수 경로 등이 조사·제출되지 않은 점 등도 지적했다. 판결문에는 각 혐의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 ‘단정할 수 없다’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 “뇌물 공여자가 진술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허위진술을 부각시키면 사실상 부정부패 수사가 불가능하게 된다”며 반발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나서 의욕적으로 수사한 사건이 1심에서부터 무죄가 선고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이유로 ‘특수부의 굴욕’이란 평가가 나온다.
경관-여고생 성관계 은폐 드러나
검찰이 최근 잇달아 굴욕을 면치 못하고 있다면 경찰은 ‘도덕성’이 도마에 올라 거센 비판 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부산 지역 학교전담 경찰관과 여고생의 성관계 파문이 확산되자 경찰서장들이 주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청 특별조사단은 지난 12일 사하경찰서와 연제경찰서 서장들은 각각 지난 5월 9일과 6월 9일 학교전담 경찰관이 여고생과 성관계를 한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서장은 간부들과 회의를 통해 ‘강제성이 없고 사회적 파장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건을 무마하기로 했다.
문제를 일으킨 학교전담 경찰관들은 감찰조사 등의 조치를 받지 않고 사직서를 제출했고, 연제 5월 17일, 사하 6월 15일 각각 의원면직 처리됐다. 특히 연제경찰서장은 지난달 24일 ‘학교전담 경찰관 여고생 성관계’ 사실이 보도되자 ‘성비위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의원면직됐다’는 내용으로 부산경찰청에 허위 보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부산청 감찰계장은 관련 사실을 인지(연제, 사하 각 5월 25일, 6월 13일)했지만 직속 상사인 청문감사관 등 부산청 지휘부에 해당 사실에 대한 보고는 물론, 진상 확인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조단은 부산청 아동청소년계장이 지난 5월 26일 연제서의 관련 사실을 알았고, 6월 10일 사하서의 성비위 사실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지만 확인을 거치지 않는 등 업무를 태만히 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의 대응도 부적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감찰담당관과 감찰기획계장은 연제서 학교전담 경찰관의 성비위 사실을 보고 받았지만 ‘이미 사직했다’는 이유로 안이하게 판단해 경찰청 지휘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특조단은 강신명 경찰청장과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은 해당 사건에 대한 보고를 사전에 받지 못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부산청장은 지난 6월 24일 SNS에 학교전담 경찰관의 성비위 내용의 글이 게시된 이후에 관련 내용을 보고 받았고, 이후 감찰기능에 진상조사를 철저히 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청장이 해당 사건에 대한 사전 보고를 받았다고 의심할만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특조단은 강조했다. 부산청장은 같은 날 경찰청장에 관련 내용을 보고했고, 경찰청장은 다음날 회의 때 해당 경찰관에 대한 면직취소 가능여부 검토 등을 지시했다고 특조단은 전했다.
‘꼬리 자르기’ ‘셀프 감찰’ 지적
이번 특조단 감찰·조사에 대해 경찰 수뇌부에 면죄부를 주는 ‘셀프 감찰’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존 책임론이 불거졌던 강신명 경찰청장과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에 대해 별도의 휴대폰 내역조사 없이 진술만 확보하는 대면조사에 그쳐 ‘꼬리자르기’라는 비판마저 나온다.
앞서 특조단은 감찰 결과로 밝혀진 비위 대상자 17명 이외에 추가적으로 징계 처분을 받게 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밝혔다.
특조단 감찰결과 발표 당시 조종완 특조단장은 본청장의 부실한 관리감독 책임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상부 보고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행위인데 책임을 청장까지 묻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비약이 있다”면서 “개인의 책임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부산민중연대 전위봉 사무처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청 특조단 조사 결과를 살펴보니 고위직 책임자나 수뇌부의 책임은 전혀 없고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형적인 꼬리자르기, 고위공직자 위주의 제식구 감싸기식이었다”면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사건을 만든 것 자체만으로도 경찰청장이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사건을 폭로한 장신중 전 총경은 해당 사건을 검찰에 수사의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전 총경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강신명 청장에게 부산 학교전담 경찰관 사건 보고 묵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검찰에 수사의뢰할 것을 제안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을 통해 “경찰청장 친위조직인 감찰을 내세운 셀프감찰로 스스로의 혐의를 벗었다. 검찰의 셀프수사는 근처에도 오지 못할 기상천외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특별조사단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실상의 진상 왜곡단을 구성하고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동기생을 직접 선발해 임무를 맡겼기에 조사 착수 전부터 이 같은 결과는 예정돼 있었다. 국민과 언론을 기만하기 위해 실무 직원을 대거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사소한 불만까지 빠짐없이 보고해온 경찰이 언제부터 교육당국과 시민단체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건을 상급관청으로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변화됐는지 정말 궁금하다”면서 “백번을 양보해서 보고를 받지 못했다면 그 자체로 조직의 장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즉시 퇴진하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