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의 ‘흡혈모기’가 범인 DNA의 강력한 증언자
범죄 현장의 ‘흡혈모기’가 범인 DNA의 강력한 증언자
  • 장휘경 기자
  • 입력 2016-07-15 20:45
  • 승인 2016.07.15 20:45
  • 호수 1159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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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모기 혈흔으로 국내 ‘첫 범인 DNA 분석’ 성공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앞으로 모기퇴치 용품이 범죄 모의자들에게 필수품이 될 전망이다. 모기가 완전범죄를 무색하게 할 결정적인 ‘목격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흡혈모기의 피에서 인간 유전자(DNA)를 채취, 분석해 범인을 색출하는 수사 기법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특히 폐쇄된 현장에서 벌어진 살인과 같은 강력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돼 국내 과학수사계가 이룩한 쾌거라 할 수 있다. 이런 기법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주인공은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 김영삼(48) 검시관. 일요서울이 그의 논문을 분석, 국내 과학수사의 ‘범죄 현장 수사(CSI) 기법’의 현주소를 진단해보았다.

 

2008년 핀란드 라푸아에서 경찰은 도난당해 버려진 차 안에서 모기를 발견, 이를 실험실에 보냈다. 그리고는 모기의 혈흔에 있는 인간 DNA를 추출, 용의자를 확보했다.

2005년 이탈리아에서는 경찰이 해안가에서 여성을 살해한 용의자의 유전자를 흡혈 모기의 혈액을 통해 밝혀냈다. 흡혈 모기가 범인 색출에 성공적으로 이용된 사례들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2014년 경기도 파주의 한 모텔에서 이혼 소송과 위자료 문제로 다툼이 있던 부부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남편이 부인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경찰은 현장 문틀에 있던 모기 혈흔을 닦은 면봉 2점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해 남성의 DNA를 추출했다. 비록 이 DNA가 피의자의 것이 아니라 이전에 투숙했던 남성의 것으로 밝혀지긴 했으나 과학수사기법의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선례가 되었다.

그랬던 이 기법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다. 김영삼 검시관이 ‘흡혈 모기로부터 분리한 인간유전자형 분석’이라는 논문을 통해 “흡혈 곤충인 모기의 몸 속에 들어 있는 혈흔 물질에서 인체 유전자를 찾는 연구를 시도한 결과, 흡혈 모기 6마리의 몸으로부터 얻은 혈액 성분을 통해 개인 유전자를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모기, 혈액 흡입하면 몸 무거워져 현장서 못 벗어나

유전자와 관련한 증거는 증거물에서 혈흔을 찾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데, 일단 혈흔을 찾게 되면 혈청학적 분석은 물론 유전자분석을 통해 혈흔의 유래와 사건과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김영삼 검시관은 이러한 사실에 착안, 기온 변화 및 따뜻한 온열기구의 발전으로 집이나 야외에서 계절에 관계없이 모기가 발견되는 우리나라에서도 모기를 이용한 범인 색출 기법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해 실험에 착수했다.

실험은 경기북부지방과 서울 및 제주도에서 흡혈모기의 몸으로부터 얻은 혈액성분으로 인체유전자를 확안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또한 범죄 현장에서 모기혈흔을 통해 인체의 유전자를 확인했다.

김 검시관에 따르면, 모기는 혈액을 흡입하면 몸이 무거워져 현장에서 106.7m 안팎에 존재하고, 170m 이상은 날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범죄가 발생한 폐쇄된 현장에서 발견된 흡혈 모기는 용의자 추적의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

실험 결과 6마리 흡혈모기로부터 개인프로필을 모두 얻을 수 있었고, 살인사건 현장에서 채집한 모기에서는 한 사람의 개인프로필을 얻을 수 있었다고 김 검시관은 밝혔다.

김 검시관은 “흡혈곤충인 모기의 혈흔에서 인간유전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이 실행되어 강력사건에서 흡혈모기가 발견된다면 채집을 통해 사건 해결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따라서, 범죄가 발생한 폐쇄된 곳 또는 방안이나 야외의 텐트 등에 존재하는 모기를 채집해 분석하면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기가 흡혈한 혈액에 용의자의 혈액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과학수사요원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검시관, “범인색출에 다양한 곤충 이용할 터”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이학박사인 김 검시관은 2006년 검시관 특채로 과학수사계에 입문한 뒤 2009년부터 이 연구에 매진해왔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실험에 성공했다.

김 검시관은 “앞으로 다양한 흡혈곤충을 비롯해 이, 진드기, 벼룩, 파리 등도 연구하여 인체유전자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장담했다.

한편 국내 과학 수사의 비중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10여 년 전만 해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사건은 전체 범죄의 10% 이하였으나 최근에는 전체의 20%에 육박하고 있다. 5건 당 1건이 과학수사로 해결되는 셈이다.

그러나 국내 과학수사 인력들은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규모이고 수사의 수준 역시 선진국에 비해 낙후됐다.

특히 사건 현장에서 나온 섬유나 유리조각, 흙 등을 가져와 기존에 구축된 DB에 대조시켜 그것이 어느 회사의 제품에서 나온 것인지, 어느 지역에서 온 것인지 역추적해 수사망을 좁히는 방법인 미세증거물 분석기법은 아직 우리에게는 미개척 분야다.

얼굴뿐 아니라 다른 신체부위, 걸음걸이 등의 생체인식 정보를 반영하는 영상 판독 역시 국내에선 역부족이다. 영상을 감정하는 연구원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과학수사와 관련된 교육, 연구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역민들의 반대가 우려돼 사체의 부패과정을 탐구할 수 있는 ‘시체농장’(Body farm)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예산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국과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학수사 R&D(연구개발) 예산은 주요국들 중 하위권에 속한다. 미국에 비해 무려 수십 배나 적다. 인력도 마찬가지다. 국과수에 따르면 법의관 한 명이 무려 수백 건의 부검을 하는 경우도 있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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