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대한민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지면서 오히려 반사이익을 보는 인물이 있다. 바로 2017년 대선 출마설이 나도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다. 반 총장은 10년 동안 국제 분쟁을 중재하는 심판자로서 역할을 해왔다.
한반도 국제정세가 어지러울수록 반 총장이 주목받는 이유다. 하지만 반 총장은 넘어야 할 산이 수두룩하다. 그중 1순위로 꼽는 것이 ‘과연 내년 대선에서 제기될 수많은 검증을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다. 반 총장은 국내 선출직에 나선 적이 없고 임명직만 해왔다.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장·차관을 지냈지만 제대로 된 검증을 받은 적이 없다. 여의도에 나도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을 알아봤다.

-참여정부 청와대 근무자 “반총장 x파일 터진다”
-인사 청문회 없었지만 자체 검증 철저하게 진행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에 한-미 간 강력한 대응책을 내놓았다. 한미가 한반도에 사드 배치를 전격 선언한 것이다. 이미 오바마 미 대통령은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인권범죄자로 낙인찍는 강수를 둬 북미간 관계가 악화일로를 겪고 있었다. 동시에 미국은 중국과 남중국해 영토 분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과 필리핀의 영유권 분쟁이지만 최근 국제중재재판소에서 친미국가인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면서 중국은 ‘배후에 미국이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설사가상으로 사드까지 배치되면서 북중러-한미일 전선이 명확하게 그어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 승리로 개헌 가능 의석수를 확보, ‘전쟁 가능국’으로 탈바꿈을 시도하면서 신냉전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유럽연합에서 영국이 탈퇴한 이른바 ‘브렉시트’(Britan+Exit)로 세계 경제도 불안한 상황이다.
국제정세 혼란할수록 주가 ‘급상승’
국제정세가 국내 정국을 좌지우지하면서 여권 내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강대강으로 전개되면서 국내 이슈인 통일, 경제, 복지, 개헌 이슈를 대신해 국제적인 이슈가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반 총장의 외교력과 리더십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 총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1944년생인 반 총장은 서울대 외교학 학사와 하버드 케네디스쿨 석사를 취득해 외시 합격 이후 외무부 1차관보, 유엔총회 의장비서실 실장,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비서관과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 외교통상부 차관과 장관을 거쳐 유엔사무총장에 오를 정도로 제대로 된 외교 역량을 키워왔다.
하지만 관료로서 승승장구한 반 총장이지만 여권 내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 차기 대선에서 권력을 잡는 것은 별개라는 게 여야를 막론한 공통된 시각이다. 과연 제2의 고건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위기 요소이자 최대 약점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반 총장이 ‘세계대통령’이 되기까지 혹독한 인사검증과 치열한 경쟁속에 만들어졌다고 보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참여정부 시절 인사비서관을 지낸 최광웅씨는 저서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에서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에 오르기까지 운명을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이 칠십 프로고 실력은 삼십 프로라는 의미)으로 평가할 정도다.
참여정부 첫 외교보좌관 인선 당시 추천은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내정자의 처남인 김수동 외교부 아.중동국장이 ‘보수적이지만 일 욕심 많은 사람’이라며 반 총장을 추천했다. 첫 번째 행운이다. 두 번째 행운은 2004년 1월 이라크 파병 문제로 국가안전보장회의와 외교부가 충돌했던 무렵 한 외교부 간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반미적’이라고 한 발언이 드러나면서 장관부터 과장까지 줄줄이 옷을 벗었다. 이 와중에 반 총장은 장관으로 영전됐다.
세 번째는 반 총장이 현재의 자리에 오르게 된 행운으로 2005년 터진 국가안전기획부 X파일 사건이다. 1997년 삼성그룹이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에게 불법 대선자금을 전달했다는 X파일이 터지면서 정권 차원에서 유엔사무총장직을 밀고 있던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낙마했다. 홍 전 대사는 삼성 자금을 정치권에 배달해줬다는 의혹을 받아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홍 전 대사가 낙마한 이후 반 총장은 2006년 2월 14일 출마를 선언해 10년간 연임을 해오고 있다. 물론 반 총장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중이던 2004년 6월 ‘김선일 피납사건’이 터졌다. 이슬람 무장세력에게 납치된 김 씨는 결국 잔인하게 살해당해 반 장관 책임론이 일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사태까지 겹치면서 문책에 시달렸다. 최 씨는 저서에서 “노 전 대통령은 ‘욕은 내가 먹겠다’며 끝까지 반 총장을 지켰다”고 회고했다.
그런 반 총장이 집권 여당 유력한 대권 주자로 부상하면서 당시 집권 세력으로 정권차원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만들기’에 앞장섰던 친노.친문 인사들은 발끈하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인사는 “반 총장이 외교부 장관에 임명될 당시 검증한 X파일을 갖고 있다”며 “출마선언하면 봇물처럼 터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때 가서 보자”며 함구했다.
반 총장이 장관에 오를 당시에는 장관 인사청문회가 없던 시기였다. 반 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에 된 시기는 2004년 1월16일이다. 당시 국회차원에서 허용된 인사청문회는 4대 사정기관인 검찰총장, 국가정보원장, 경찰총장, 국세청장뿐이었다. 전체 국무위원으로 확대된 때는 그로부터 2년 뒤인 2005년 7월 부터였다. 반 총장의 관운이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행운이 이번 대선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MB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인사청문회가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청와대에는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가 있어 차관급 이상은 인사검증을 철저하게 한다”며 “인사검증 내역이 인사청문회를 통해 외부에 알려지느냐 안 알려지느냐의 차이지 검증은 똑같다”고 설명했다.
즉, 민정수석실 산하 민정비서관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3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에 대해서 경찰과 국정원을 통해 검증 자료를 받는다. 그리고 취합된 자료는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결국 반 총장이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참여정부 인사들은 반 총장에 대한 密파일을 갖고 있을 공산이 높다.
반 ‘불출마’시킬 핵폭탄급 X파일은…
반 총장 관련 세간에 알려진 의혹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 아들의 SK 텔레콤 취업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한 마디로 SK가 미래권력을 위해 보험차원에서 반 총장의 아들을 아버지가 있는 뉴욕 사무실에 특별 채용했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반 총장 아들은 2011년 1월부터 SK텔레콤 뉴욕 사무소에 입사해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SK텔레콤 측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입사할 당시 아버지는 유엔사무총장으로 뉴욕에 근무하고 있는데 공개채용이 아닌 현지 채용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도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자살하기 직전 “내가 반기문하고 가까운 건 사실이고 동생(반기상)이 우리 회사에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한 반 총장은 성 전 회장이 만든 충청포럼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 총장은 이런 의혹에 대해 지난해 5월 방한 당시 “성완종 회장님을 포함한 어느 누구와도 국내 정치에 대해서 제가 이렇게 협의를 한 일이 없다. 그런 면에서 제가 성완종 회장하고 특별한 관계가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충청포럼을 중심으로 ‘반기문 대망론’을 설파해왔다는 사실은 충청도 출신 정치인.기업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얘기다. 이뿐만 아니라 조카 반주현씨도 검증 도마 위에 올랐다. 반 씨는 성 전 회장이 추진했던 베트남의 ‘랜드마크72’ 사업에 참여해 이 빌딩의 매각을 도와주겠다며 허위문서를 제시했고, 경남기업이 6억 원이 넘는 돈을 선급금으로 지급했다. 반 씨는 사기 의혹으로 현재 소송 중이다.
성 전 회장은 자살 전 이 빌딩 매각에 나섰고, 매각 업무를 반 총장의 조카 주현 씨에게 맡겼다. 랜드마크72는 경남기업이 1조 원 넘는 돈을 들여 지은 건물로 이 건물이 매각될 경우 경남기업의 자금난은 상당부문 해소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반 씨가 최근 채권에 제출된 카타르 투자청 명의의 투자의향서격인 공식 문서를 위조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 미국 유학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 동향을 상급기관에 보고했다는 의혹▲ 헌법67조 대선후보의 자격 ‘선거일 기준 5년 이상 국내거주 국민’으로 부적격자라는 주장 ▲ 대선 출마는 유엔 결의안 위반이라는 주장 등이 있다.
그러나 DJ 동향 보고 관련해서 반 총장은 지난 5월 말 방한해 “말도 안 된다”고 직접 일축한 바 있다. 헌법 67조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는데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은 국내 거주로 인정한다고 해 유엔 사무총장직을 공무로 인정할지 말지가 논란거리다. 또한 유엔결의안 위반은 과거 쿠르트 발트하임 전 사무총장이 퇴임 후 본국 오스트리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 전례가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까지 여의도에서 돌고 있는 반 총장 관련 의혹은 ‘중도 사퇴’나 ‘불출마’할 정도 핵폭탄급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친노 진영에서 ‘반기문 불가론’을 흘리고 있는 이상 드러나지 않은 X파일은 좀 더 강력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야권의 한 인사는 “예를 들어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 선거 2월에 참여해 그해 10월13일에 경쟁자들을 다 물리치고 만장일치로 추대됐다”며 “치열한 선거운동을 통해 여러 나라 경쟁자들과 경선을 치렀는 데 8개월간 소요된 선거자금 관련 문제가 터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과거 DJ ‘노벨상 로비설’과 유사한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潘 저격수’ 친노 좌장 이해찬 ‘주목’
특히 이 인사는 친노 좌장격인 이해찬 의원을 주목하고 있다. 이 의원은 반 총장이 외교통상부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책임 총리였다. 이 의원은 올해 5월 말 방한했다가 출국한 반 총장과 6월 뉴욕에서 면담을 가질 계획이었지만 반 총장 측에서 비공개를 공개로 전환하자 면담을 취소했다.
이 과정에서 5년 전 2011년 반 총장이 국내 귀국해 노 전 대통령 참배를 위해 봉하마을을 방문하고도 재단 측에 ‘비밀로 해달라’는 앙금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반 총장은 올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7주기 기간에 방한했지만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찾지 않았다.
이에 친노 진영에서는 “누가 유엔사무총장을 만들어줬는데 참배도 안 하느냐”, “유리할 땐 공개하고 불리하면 비공개하느냐”며 발끈해 면담 취소로 이어졌다는 얘기가 여의도에 광범위하게 퍼지기도 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